감사
각오하고 시작한 새 학기였다. 그러나 늘 그렇듯, 언제나 각오를 넘어서는 일들이 팡팡 터진다.
개학하자마자 밤 열 시, 한 선생님께 학부모가 학폭 일정 관련하여 문의를 해 왔고 그 선생님은 학폭 담당교사인 내게 질문을 전달했다.
밤 열 시에 문의하는 학부모나 그것을 그대로 교사 톡 방에 전달하는 동료교사나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성심껏 대답했고 그 과정에서 같은 학폭팀 선생님과 마찰이 일어났다.
사회생활 이후 처음으로 직장 동료와 싸웠다. 그것도 그 밤에 단톡방에서. 함께 알아봤던 자문 내용, 만들었던 절차가 뒤집힌다 생각하니 그간의 고생이 모두 허사로 느껴졌다. 밤 열 시에, 학부모 문의로, 다음 날 그 학부모를 만나야 한다는 사실도 어이없었고 내가 시간이 되지 않는다 하니 학부모 만남 없이, 학생 진술 없이 진행하자는 의견도 기가 막혔다. 대안학교 교사는 사생활이 없단 말인가.
진저리가 났다. 늘어난 수업 시수로 나는 계속 바빴고 공강 시간에는 회의와 학폭 절차로 빼곡했다. 시작하자마자 이래도 되는 거니. 아직 삼 월도 아니란 말이다. 한바탕 싸움을 하고 친한 교사에게 하소연을 하고 거실로 나가서,
"더는 안 되겠어! 사표 쓸 거야!"
남편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마음이 육신을 지배했던가. 나는 그날, 밤새 오한을 앓았다. 사표 쓸 결의를 뒤로 한 채 미열을 느끼고 타이레놀 한 알 삼키고 출근했다. 수업을 마치고 나온 후 톡방에서 싸운 선생님과 얼굴을 마주하고 나는 그에게 또 퍼부었다. 학부모 항의 한 번에 자문 내용이 바뀌냐고~ 쏼라쏼라.
그분은 그분대로 본인의 생각을 설명하셨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어서 그게 더 싫었고 이상한 아집이 당신 말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다시 절차를 조정하고 그분께 성질을 사과드리고 그분이 받아주시면서 훈훈하게 갈등을 마무리하고 그날, 타이레놀로 버티며 수업과 학부모 만남까지 진행했다.
퇴근 후 오래오래 잠을 잤다.
이틀 후, 또다시 두 팀의 부모를 차례로 만났다. 혼자 만난 것은 아니었다. 잘 짜인 팀과 함께였는데 어질어질했다. 감정은 넘나들었고 서로의 입장 차만 확인하였으며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고 기운이 쭉 빠지기도 했다. 퇴근하여 집에 들어왔더니 밤 열한 시 반. 내가 무슨 말을 듣고 뭘 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냥 집안의 따뜻한 공기가 좋았다. 옷을 갈아입으러 안방에 들어갔다가 주저앉아 수건에 얼굴을 파묻고 오래오래 울었다. 도대체 내가 왜 우는지도 모른 채 나는 계속 어깨를 들썩이며 숨죽여 울었다. 모든 기운이 눈물과 함께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남편은 내일 출근하지 말라 한다. 그래야 정신을 차릴 거란다. 아니, 내가 사표를 써도 정신 차릴 인물들이 아니다. 그냥 일개 교사 한 명이 사라졌을 뿐 또 다른 담당을 들들 볶으면 될 일이다. 펑펑 울다 진정을 하고 씻고 잠이 들었다. 기억나지 않는 꿈에 시달리며 새벽 세 시, 네 시, 다섯 시. 계속 깼다.
출근하며 계속 마음을 진정시켰다. 내 아이의 일이었어도 나도 저랬을 거야.라고 생각해 보고 싶지만 동의가 되지 않는다. 사람은 모두 자기 자신만 본다. 자기 아이의 안위만 있을 뿐이다. 함께하는 친구들, 가르치는 교사, 학교의 입장 따위는 안중에 없다. 의견을 강하게 어필하고자 함임을 알면서도 야속하다.
학교에 도착해서 진정하고 물을 뜨는데,
"아이고 진이 다 빠지셨네."
하는 동료 교사의 말에 다시 한번 울컥했고,
"선생님 어제 고생하셨죠?"
라는 옆 선생님의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다시 울음이 터졌다. 나는 또 꺼이꺼이 울 수밖에 없었다. 보건실로 숨어 들어가 펑펑 울면서 나를 진정시켰다. 나는 곧 수업에 들어가야 한다. 하필 그 부모의 아이를 봐야 한다. 나는 프로다. 괜찮다. 할 수 있다.
퉁퉁 부은 눈을 안경으로 가리고 수업을 했다. 마지막 수업이 끝날 때쯤에는 온몸에 땀이 쭉 났다. 밀린 과제 검사와 수업 준비로 나는 퇴근조차 일찍 할 수 없었다. 멍한 정신을 부여잡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러고 또 일주일이 지났다. 여전히 감정이 널을 뛴다. 어떤 날은 수업이 너무 좋아서,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다행이고 어떤 날은 너무 힘들어서, 체력조차 받쳐주지 않아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벌써 삼 월이라고 말들을 하는데 내겐 이제 삼 월이다. 일반 학교에서는 삼 월이 제일 시간이 가지 않는 시기였는데 이 학교에선 이 월이 그러하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욕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친구가 아이 셋을 키우며 욕을 하게 되었다고 했는데도 아이 하나를 키우는 나는 공감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요즘 혼잣말로 쌍욕을 한다.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입에서 욕이 흘러나온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감히 내가 사람을 진상이라고 욕했었다. 나는 진상이 아니던가. 내가 누굴 평가한단 말인가.
이제 교사를 그만하자는 쪽으로 생각을 굳히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부족한 사람이고 너무나 부족해서 교단에 설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에 빠져 지내는 중에 전학 간 학생의 어머니이신 동료 교사가 메시지를 주셨다. 딸이 전학 가서 가장 아쉬운 한 가지는 문영샘 수업을 듣지 못하는 거라고 했단다. 내가 그렇게 잘 가르친다고 했단다. 그래서 내 수업 한 번 참관하시겠다는 메시지였다. 나는 또 소리 없이 울었다.
교사는 내게 사명이었다. 가르치는 일이 좋았고 아이들의 성장을 보는 것이 좋았으며 함께하는 모든 게 행복했다. 그런데 나를 지키기 위해, 더 너덜너덜해지기 전에 현장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어느 책에서 본, '되어가는 존재'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내가 감히 진상이라 말한 사람들도, 나도, 이 세상 모두도 다 부족한 사람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되어가는 존재이다.
이틀 잘 쉬고 났더니 다시 현실을 마주할 힘이 조금은 충전되었다. 한 번도 실천해 보지 못한 매사 감사하기를 도전해 봐야겠다. 출근할 직장이, 내가 좋아하는 일임에 감사하고, 만나는 사람에게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다시 나의 역할의 무게감을 떠올리며 하루하루 집중해 봐야겠다. 나도 그도, 여전히 되어가는 존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