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반 아이가 우리 반 아이와 놀다가 욕을 했대요. 사과의 자리를 마련해야 할 것 같아요."
집 앞 놀이터에서 같이 배드민턴을 치다가 발생한 일로 룰이 다르게 적용되는 느낌이 들자, 우리 반 아이가 상대 아이에게 욕을 한 것 같았다. 그 자리에서 우리 반 아이는 욕을 한 부분에 대해서 상대 아이에게 사과를 했다.
"내가 욕해서 미안해."
"괜찮아."
집 앞 놀이터에서 아이들끼리 티격태격 한 일도 학교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씁쓸할 때가 있다. 모든 것을 학교로 떠넘기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때로 학원 선생님의 전화를 받는 경우도 있다.
"학원에서 둘이 싸웠는데 학교폭력 사안이죠? 학교에서 해결해 주셔야 할 것 같아요."
학교폭력의 범주가 '학교'가 아니라 '아이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내 집에서 친구와 놀다가 다쳤어도 학교폭력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작은 싸움이 더 이상 번지지 않고 잘 마무리되도록 교사들은 참 애를 쓴다. 사과의 자리를 마련하고 사과해야 할 부분은 사과를 시킨다. 이런 경우 대부분 일이 잘 마무리된다. 근데 학부모님이 끼면 일이 커진다. 학부모님들은 이런 일로도 민원을 하신다. "왜 우리 아이를 사과시키냐, 사과시키는 것 하지 말아 달라."라고 하시며 상당히 불쾌해하신다. 흔하게 있는 사례다.
우리 반 아이가 두 번 정도 글쓰기장에 그 아이 이야기를 쓴 적이 있었다. 우리 반 아이가 상처받은 내용이었는데, "같이 이야기해 볼까?" 하니까 싫다고 하고 이제 서로 안 놀게 되었다고 해서 그냥 넘어갔다. 아이들끼리 서로 놀다가 마음에 안 맞으면 안 노는 일은 흔하게 있을 수 있는 일이니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오히려 우리 반 아이가 그 아이에게 사과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조금 씁쓸한 마음도 있었으나 그렇게 사과하고 잘 넘어가나 보다 했다. 그런데 우리 반 아이 어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엊그제 우리 아이 관련하여 특이사항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선생님과 대면해서 꼭 상담하고 싶습니다.
이 문자를 보는 순간 목구멍부터 답답해옴을 느꼈다. 어떤 상담인지 짐작이 됐다. 왜 내 아이만 그 아이에게 사과를 해야 하나 그 아이가 내 아이에게 잘못한 것도 많은데 하는 내용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내 추측이 맞았다. 오후 출장이 잡혀서 전화로 상담해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 교담시간 잠깐 통화를 했더니 전에 그 아이가 우리 아이를 따돌리고 그랬는데 그 건에 대해서도 다루어달라는 말씀을 하셨고 그 아이에게도 꼭 사과를 받아야겠다는 말씀을 전하셨다.
사과를 하고 나서 당장 다음날 서로 입장을 바꾸어 사과를 주고받아달라는 말씀이 뭔가 보복성 같고 내키지 않았지만, 우리 반 아이도 그 아이들과 다시 만나서 사과받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쳐서 할 수 없이 또 자리를 만들었다.
"네가 소망이 있는 데서 귓속말하고 소망이만 따돌리고 그런 상황이 있었다고 했는데 맞아?"
"아니오 그런 적 없는데요?"
그러자, 소망이가 말했다.
"네가 그랬잖아. 그리고 학교 갈 때 같이 가기로 약속했는데 너희들끼리만 가고."
"근데 그건 그때 사과했어요."
"아, 소망아 그때 사과받았어?"
"네. 근데 저도 어제 사과한 거, 문자로 했어요."
"저는 문자 못 받았어요."
상황을 정리해 보니 소망이는 문자로 사과를 했는데 그 친구가 소망이 번호를 수신거부해 놓은 상태여서 문자를 못 받았고 어제 다시 사과를 한 상황이었다. 이 친구가 소망이와의 약속을 어긴 부분은 사과를 했고, 소망이도 받았다. 그리고 따돌린 일은 그런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상황에서 억지로 사과를 받아내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또 네가 문자를 수신거부해서 사과 못 받은 건데 나도 다시 말로도 사과했으니까 너도 말로 다시 사과하라고 하는 것이 과연 맞는 지도일까. 어제 한 사과가 진정한 사과가 아닌 것만 분명해 보였다.
순간 머리가 복잡했다. 아이들끼리 생채기만 더 날 뿐이라 여겨졌다. 사과가 이렇게 서로를 굴복시키는 용도였던가? 이렇게 여기서 사과를 받은들 저 아이들이 또 소망이에게 사과받을 일을 찾아서 사과해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뭔가 이 고리를 끊는 것이 필요해 보였다. 또, 이 사안을 잘못 다루었다간 상대 어머니들에게 그 반 담임선생님이 민원을 받을 게 뻔해 보였다.
"그랬구나. 너희들 셋이 친하게 지냈는데 뭔가 어떤 일에 의해 사이가 틀어진 모양이네. 그래. 알았어. 소망이는 어제 사과를 다 한 거고 너희들은 잘못이 없고 소망이한테 사과도 이미 했다고 하니까 이것으로 이 일은 마무리짓자. 하지만, 조금 거리를 두고 서로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할 것 같아. 또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서 서로를 조심스럽게 대하자."
그러자, 상대 아이가 입을 열었다.
"엄마가 이제 소망이랑 놀지 말래서 저는 안 놀 거예요. 그러니 조심스럽게 대하고 말고도 없어요."
"그래. 그렇지만 너희들도 소망이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어때? 너희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너희들끼리 귓속말하고 그러면 소망이 입장에서는 기분이 상할 수도 있겠지? 그렇게 서로의 입장을 생각해 보자는 뜻이었어."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의 마음을 헤아려서 조심하자고 하고 연구실을 나왔다.
소망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저는 문자로도 사과하고 말로도 했는데, 쟤네도 저한테 사과해야죠."
모기만 한 소리로 소망이가 내게 말을 건넸다.
"그런 마음이 들만 해. 억울할 수 있어. 근데 소망아, 네가 사과를 받고 나면 저 친구들이 또 옛날에 이랬다면서 소망이한테 사과받으려 하고 그럼 또 사과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걸? 그렇게 되면 서로 마음만 상하고 끝나지 않을 거 같아. 그런 관계가 좋아? 그렇게 되길 원해?"
소망이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표정을 풀고 나를 바라봤다.
뭔가 답을 내린 듯 내가 말을 이어나갔다.
"소망아, 이번 기회에 저 친구들을 그냥 확 용서해 버리면 어때? 그리고 소망이는 용서 다이아몬드를 갖는 거야. 이 용서 다이아몬드는 사과받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어. 이 보석은 소망이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는 좋은 보석이야.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소망이가 친구들을 용서한다면 용서 미덕을 깨우고 용서보석을 갖게 돼. 소망이는 저 친구들한테 억지로 사과받을래? 아님 그냥 다 용서해 버리고 이 용서 보석 가질래?"
소망이는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그냥 용서보석 가질래요."라고 말했다.
소망이가 너무 고맙고 예뻐서 소망이를 가만히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토닥였다.
"소망이가 용서보석을 선택한다고 하니 선생님 마음이 참 기쁘다. 소망이가 미덕부자라 용서보석을 알아봤네. 그리고 소망이 마음은 선생님이 충분히 이해해. 그간 속상한 일 많았지? 대신에 선생님 사랑을 가득 소망이에게 줄게. 선생님이 소망이를 정말 많이 사랑해. "
그렇게 소망이를 꼭 안아주었다. 소망이는 마음이 풀린 듯 조금 편안해진 얼굴로 5교시 체육을 하러 갔다. 하지만 나에게는 무거운 과제 한 개가 남았다. 소망이 어머니와의 상담이다. 5교시 아이들이 체육 하러 갔을 때, 소망이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전화 기다리셨죠? 소망이와 아이들 간의 일은 잘 마무리지었어요."
"그 아이들도 소망이한테 사과했나요?"
"아니오. 소망이가 사과받는 대신에 용서보석을 갖기로 했어요."
"네?"
"어머니, 아이들과 다시 이야기를 해 보니 서로 관계가 얽혀있어서 아마 이번에 소망이가 사과를 받고 나면 또다시 그 아이들이 전에 일로 소망이에게 사과를 받으려 할 거 같더라고요. 아이들은 이미 사과했다고 하고, 따돌린 적도 없다고 해서 더 이야기하기가 어려웠어요. 대신에 소망이 안아주고 그 마음을 제가 충분히 위로해 줬어요. 또 소망이가 그 친구들을 용서하고 용서 보석을 갖기로 했어요. 소망이는 약하지 않아요. 상처받고 무너지는 아이가 아니라 용서하고 다시 일어서는 선택을 한 거예요. 이 일을 잘 뛰어넘을 거라 생각해요. 어머니께서도 오늘 소망이 만나면 잘했다고 격려해 주시겠어요?"
어머니는 머뭇거리시더니 "선생님,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렇게 전화 상담을 마무리했다. 나의 진심이 닿았다. 내가 가장 기쁜 순간은 이렇게 나의 진심이 누군가에게 닿는 순간이다. 어머니와의 전화상담까지 마무리짓자, 이제야 할 일을 끝낸 듯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소망이는 이제 그 아이들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우리 반 안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고 계속해서 좋은 친구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훨씬 가치있고 빛나는 것을 아이들이 알기바란다.
상대의 마음을 헤이리는 사려와 미안한 것에 대해 마음을 굽혀 손을 내미는 사과의 소중함을 알아주는 마음들이 너무나 희소해 그 가치가 더 높아지는 요즘이다. 소망이가 용서보석을 선택한 건 소망이 안에 이미 많은 다른 보석들이 그 보석을 끌어당겼기 때문일 것이다. 소망이는 아마 지금쯤 느끼고 있을 것이다. 용서 다이아몬드의 힘을 말이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값비싼 보석을 선택한 것인지 그 가치를 제대로 셈하게 될 그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