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고등학생 때 가끔씩, 살아가는 것조차 버거워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 순간들 마다 나는, 모든 것에서 도망쳤다. 인간관계도, 학업도, 심지어 죽음에서도 도망쳤다. 내일이 두려워 도망쳤지만, 죽음 역시 나에겐 겁나긴 마찬가지였다. 눈을 질끈 감고 울면서 달리는 아이처럼, 나는 어디로 도망쳐야 하는지도 모르고,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계속 도망만 다녔다. 때론 내 방 침대 속으로, 때론 밤 길거리의 벤치로, 도망쳐 헐떡이며 앉아 숨 쉬는 것마저 버거워하며 생각하곤 했다. 내가 세상에 맞서는 모습을, 절대 그럴 수 없었지만 상상 속 나는 멋있고 당당하게 세상과 싸우곤 했다. 아빠에게 당당하게 당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엄마와 형에게 나는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을, 세상에게 그냥 엿이나 먹으라고, 맞서는 모습을 상상하며 잠시 미소 짓곤 했다.
그러곤 내가 도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잊기 위해 학교에선 미친 듯이 축구만 했고, 집에 와선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붙잡고 살았다. 귀에는 가을방학의 “이브나”가 자주 들려오곤 했었다. 그냥 그 노래의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그 속삭이는 목소리가 슬프면서도 어렸던 나에겐 큰 위로가 되었다. 그러면서 난,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면 난 당당히 세상에 맞서게 될 수 있을 것 같았고, 지금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고 아프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지금 난, 20보단 30이 가까운 나이가 되었다. 사실 낼모레 30이 된다고 봐도 뭐 전혀 문제없다. 나름의 어른이 된 지금의 나는… 여전히 어른이 되고 싶다. 내가 상상한 어른의 모습은 전혀 없고 여전히 버거운 삶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 버거운 삶이 약간은 익숙해져 건조해졌다? 정도인 것 같기도 하다. 난 여전히 겁쟁이고 도망치는 게 익숙한 어린 아이다. 다른 사람들 역시 나처럼 생각할까? 아님 나만 여전히 성장하지 못하고 포류하고 있는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성숙해졌다고 당당히 말하곤 하는데 그 말이 진짜든 아니든 부러워 지곤 한다. 적어도 자신은 성장을 느꼈으니 그렇게 말하는 것일 테니. 난 나 자신이 때론 중고등학생 때와 다르지 않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여전히 아빠 앞에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리고, 형은 좋아하지만 무섭다. 세상에게 엿 먹으라고 할 정도의 용기는 없고, 그냥 몰래 한숨 한번 쉬곤 한다.
나는 언제쯤 싸울 수 있을까. 여전히 나에게 세상은 두려움이 가득하고, 두려움을 보면 도망부터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던 어른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모두 내가 꿈꾸던 30대와는 다른 30대가 되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세상에게 엿 먹으라며 소리치는 나 자신을 상상하면 옅은 미소가 나오곤 한다. 언젠가 이 말을 내뱉고 큰소리 내 웃으며 만족할 날이 오길 진심으로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