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교회는 왜 약자를 버리고 권력에만 아부하는가?
오늘날 많은 기독교 교회는 동성애와 낙태를 신앙의 가장 본질적 문제처럼 다룬다. 설교단에서는 반복적으로 이 주제가 강조되고, 교단 차원의 성명서와 정치적 행동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낙태와 동성애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규모와 강도로 자행되는 부자들의 구조적 탐욕, 금융 자본의 약탈적 운영, 노동 착취, 환경 파괴,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 권력자의 거짓과 기만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훨씬 조심스럽거나 모호한 태도를 보인다. 물론 모든 교회가 그렇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일부 진보 성향의 목사나 신부는 권력에 맞서 투쟁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교회 안에서 극소수에 불과하고 교회 권력자들은 그들을 멀리하거나 비난하기 일쑤다. 그래서 기독교 교회에서 동성애와 낙태 같은 개인, 특히 자신을 방어할 힘이 없는 사회적 소수자의 성윤리 문제는 과잉 대표되고, 돈과 권력을 쥐고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는 자들이 저지르는 구조적 불의는 과소 대표된다는 인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 불균형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하나의 방향성을 드러낸다. 곧 교회가 이미 오랜 세월에 걸려 ‘권력의 종교’로 기울어 왔다는 엄연한 진실 말이다.
여기에서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의 메시지를 떠올려 보자. 마태복음 5~7장에서 장대하게 전개되는 이른바 ‘산상수훈’에서 예수는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되다고 선언한다. 또 마태복음 25장에서는 굶주린 자, 헐벗은 자, 감옥에 갇힌 자를 돌본 행위를 신이 주재하는 최후의 심판의 결정적 기준으로 제시한다. 예수의 핵심 메시지가 나오는 성경 구절 어디에도 동성애나 낙태에 대한 직접적 언급이 없다. 예수의 윤리는 특정한 성적 정체성을 중심으로 설계되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사회적 주변부, 배제된 자, 죄인으로 낙인찍힌 자들에게 향했다. 예수는 그 당시 죄인이라고 꺼리는 계층인 세리와 창기와 기꺼이 식탁에 함께 앉아 음식을 나누었고, 간음한 여자를 죽이려고 돌을 들고 있는 군중 앞에서 타인의 정죄 대신 각자의 죄에 대한 성찰을 요구했다. 그리고 예수의 가장 강력한 비판은 개인 윤리적으로 취약한 자들이 아니라 권력을 독점한 종교 지도자들을 향했다. 그들의 위선을 폭로하고, 위선과 탐욕을 꾸짖으며, 율법의 이름으로 사람을 짓누르는 태도를 비판했다. 예수의 분노는 언제나 사회적 하위 계층이 아니라 상위 계층을 향해 있었다.
그렇다면 왜 오늘날 교회의 권력을 점유하거나 그들의 편에 선 대다수의 ‘분노’는 아래로 향하는가? 왜 교회는 사회적 소수자와 힘없는 개인에게는 단호하면서도, 그들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악하고 사회적으로 더 큰 해악을 끼치는 자본과 권력의 구조적 죄에는 상대적으로 침묵하는가? 그것은 결국 권력과 돈의 문제다.
기독교가 예수를 버리고 권력과 돈에 물들기 시작한 역사적 전환점은 4세기였다. 콘스탄티누스 1세의 기독교 공인은 교회를 제국의 ‘제도’ 속으로 편입시켰다. 박해받던 공동체가 하루아침에 권력과 동맹을 맺는 공동체로 변모한 것이다. 구약에서 예언자는 체제를 향해 “아니요”라고 말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제도 안에 편입된 교회는 비판보다 생존과 안정을 우선하게 되었다. 더구나 최고 권력과 결합한 교회는 권력 비판 능력을 스스로 버렸다. 이렇게 제국 권력과 결합한 이후 교회는 점차 제국 질서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러한 교회의 모순적 태도는 근대 이후 더욱 복잡해졌다. 특히 20세기 후반 미국에서 성윤리는 기독교 교회의 정치적 정체성의 중심으로 재구성되었다. Moral Majority와 같은 운동은 낙태와 동성애를 마치 기독교의 유일 무이한 가치 수호의 상징으로 내세웠고, 1973년 Roe v. Wade 판결 이후 낙태는 교회가 벌이기 시작한 문화 전쟁의 핵심 의제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복음은 점차 극우 보수 계층의 정치적 깃발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특정 낙태와 동성애와 관련된 성윤리 입장을 취하는 것이 곧 신앙의 충실함을 의미하는 것처럼 여겨졌고, 기독교는 문화 투쟁이 벌어지는 최전선의 한 진영으로 배치되었다.
그런데 왜 하필 동성애와 낙태인가? 한 가지 이유는 비용의 문제다. 자본의 탐욕과 기업의 노동 착취를 강하게 비판하면 교회는 재정적 기반을 흔들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교회에 엄청난 헌금을 하는 부자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신성모독죄보다 더 한 죄다. 게다가 정치권력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것도 정치적 압박을 초래할 수 있다. 반면 성소수자나 낙태 경험 여성은 교회의 재정 구조를 전혀 위협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회적 약자이고 발 벗고 나서서 옹호해 주는 이들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들을 향한 강경한 도덕적 언어는 상당히 안전하다. 동성애자와 낙태한 여자를 아무리 욕해도 교회의 재정에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에 동성애와 낙태를 주제로 한 성윤리 차원의 문화투쟁은 전혀 손해 볼 것 없는 그리고 위험이 가장 적은 전장이다. 그러면서 사회적 이슈로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도 최적의 주제다.
게다가 낙태와 동성애를 둘러싼 성윤리 논쟁은 단순하다. 복잡한 경제 구조나 기후 위기 문제와 달리, 성윤리 논쟁은 단순한 도덕적 이분법으로 정리되기 쉽다. 반면에 대자본가와 정치 권력자가 결탁하여 조작하는 글로벌 금융 구조나 자본가의 고삐 풀린 이윤 추구 욕망으로 야기된 기후 위기의 책임 문제는 복잡한 분석을 필요로 한다. 반면에 인간의 성과 관련된 동성애와 낙태는 개인 차원에서 “옳다” “그르다”로 이분법적인 입장을 정하기 쉽다. 이런 단순한 도덕은 군중 심리를 이용한 대중 동원에 매우 유리하다. 집단 심리의 차원에서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전통적 질서에 대한 불안을 상징적 대상으로 투사하기 쉽다. 성적 소수자는 불안한 더 나아가 부도덕한 사회적 변화의 표지로 간주되며, 그들을 비판하는 행위는 고귀하고 전통 있는 질서 수호의 상징이 된다. 그 과정에서 구체적 인간은 교리의 상징으로 소비된다.
이 지점에서 미국 텍사스주의 의원이자 신학을 공부한 정치인인 James Talarico의 발언은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그는 여러 공개 연설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지적해 왔다. 많은 정치인과 종교 지도자들이 “가장 작은 자”를 보호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예수가 반복적으로 언급한 가난한 자, 병든 자, 이방인, 감옥에 갇힌 자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성소수자와 낙태 문제만을 신앙의 본질처럼 다룬다는 것이다. 그는 마태복음 25장을 인용하며, 예수가 심판의 기준으로 제시한 것은 성적 지향이 아니라 굶주린 자와 헐벗은 자를 돌보았는지 여부라고 강조한다. 또한 그는 “예수는 단 한 번도 동성애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가난한 자에 대해서는 수백 번 언급했다.”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오늘날 교회가 보이는 선택적인 도덕적 분노가 복음의 우선순위와 일치하는지 질문한다.
이러한 Talarico의 주장은 단순한 진보적 정치인의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복음서 텍스트에 근거한 신학적 도전이다. 만약 교회가 예수가 가장 자주 말한 주제, 곧 가난한 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치와 종교 권력자의 불의에는 침묵하고, 예수가 직접 언급하지 않은 주제인 낙태와 동성애에 기독교 신앙의 전부를 건다면, 그것은 대단한 신학적 불균형이다. 그의 지적은 교회를 향한 외부의 공격이라기보다 내부에서 제기되는 예언자적 질문에 가깝다.
물론 교회 안에는 기독교 근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극우 세력과 다른 흐름도 존재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의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에서 갈파한 대로 자본주의의 무제한적 탐욕과 환경 파괴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개신교의 몇몇 교단에서 경제 정의와 기후 위기를 신학적으로 다루는 움직임도 있다. 바울 서신의 성윤리 본문들에 대한 해석 역시 활발히 논쟁 중이다. 교회는 단일한 목소리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전체적 인상과 구조적 방향성이다. 오늘날 기독교 교회는 근본주의에 물들어 있고 극우 정치세력과 결탁된 모습으로 사회에 비치고 있다.
권력과 돈에 아부하는 종교는 질서를 유지하고 체제를 정당화한다. 도덕을 통치의 언어로 사용하며, 내부 결속을 위해 외부를, 특히 사회적 소수자, 예를 들어 유대인과 마녀로 단죄된 여성을 신앙의 적으로 설정한다. 로마 제국에서 국교화된 이후 보여준 기독교 교회의 모습은 이를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구약에 나오는 예언자들의 신앙은 권력 체제를 흔들고, 목숨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며, 늘 약자의 편에 섰다. 예수의 길은 분명히 이런 전통적 예언자에 가까웠다. 그는 권력과 결탁하지 않았고, 약자를 향한 정죄 대신 회복을 선택했다.
동성애와 낙태에 대해 어떤 신학적 입장을 취하느냐는 여전히 중요한 논쟁이다. 그러나 그 논쟁이 교회의 도덕적 에너지를 거의 독점하고 있는 가운데, 정작 커다란 악인 자본과 권력의 구조적 불의에 대한 교회의 목소리가 미약하다면, 그러한 불균형이 과연 예수의 메시지에 비추어 합당한 것인지 많은 이들이 의심하게 만든다. 약자인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추상같은 도덕적 잣대와 자본과 권력을 향한 공손한 태도가 교회 안에 공존한다면, 이는 위선을 넘어서 예수의 가르침을 거스르는 신성모독의 위험을 내포한다. 이러한 위선은 목사나 신부 개인의 도덕적 실패라기보다 교회의 제도적 생존 전략이 낳는 산물일 수 있다.
결국 질문은 이것이다. 교회는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안락하고 돈이 되는 자리에서 사회적 약자를 마녀사냥하는 도덕 아닌 도덕을 선언하는 공동체인가? 아니면 위험을 감수하며 정의를 말하는 공동체인가? 예수가 보여준 길은 분명히 사회적 약자를 향해 아래를 향했다. Talarico가 상기시키듯, 예수가 강조한 “가장 작은 자”는 오늘날의 문화 전쟁에서 표적이 된 소수자를 포함한 굶주리고 소외된 이들이었다. 자본가와 정치 권력자는 돌보아야 할 가장 작은 이의 자리에 없었다. 그런데 교회는 지금 거꾸로 가고 있다. 예수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가 그 우선순위를 회복하지 않는다면, 기독교가 권력의 편에만 서는 종교라는 비판은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될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역사적으로 교회는 위기에 처하거나 권력을 공고히 해야 할 때, 늘 ‘비용이 적게 드는 적’을 설정해 왔다. 중세의 마녀사냥이 대표적이다. 흑사병과 기근으로 사회적 불안이 극에 달했을 때, 교회와 국가는 그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사회적 보호망이 없는 여성들을 ‘마녀’로 지목했다. 이는 봉건제의 붕괴와 교회의 부패라는 구조적 모순을 은폐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는 정치적 도구였다. 오늘날의 ‘혐오 정치’와 놀랍도록 유사한 패러다임을 보여준다. 나치 독일 시대 독일 기독교가 보여준 ‘적극적 기독교’가 보여준 모습도 마찬가지다. 1930년대 독일의 주류 기독교 교회는 히틀러의 민족주의에 열광했다. 그들은 성경의 ‘순종’ 메시지를 권력 찬양에 사용했고, 유대인과 소수자를 탄압하는 것을 ‘전통적 가치 수호’로 포장했다. 당시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같은 소수의 예언자만이 ‘미친 운전자가 운전하는 차에 올라타 제동을 걸어야 한다.’며 구조적 악에 저항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는 이미 히틀러 광기로 물든 교회 안에서 아무런 메아리를 듣지 못했다.
오늘날에도 다시 한번 묻지 않을 수 없다. 동성애와 낙태만을 신앙의 핵심처럼 다루는 태도가 과연 복음의 중심과 일치하는가? 아니면 그것은 교회의 맹목적인 생존을 위한 전략인가? 교회가 다시 예수의 길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교회에서 복음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단지 권력의 종교만을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