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예수는 '백인 미남'이 되었나?

그리고 그 미남에게조차 현대인의 관심이 줄어들고 있다

by Francis Lee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예수의 얼굴은 대체로 비슷하다. 긴 머리, 단정한 수염, 밝은 피부 톤, 그리고 온화한 표정의 서구적 얼굴이다. 이 이미지는 교회 벽화, 성경 삽화, 영화, 심지어 가정에 걸린 성화까지 통해 반복적으로 재생산되어 왔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이러한 모습은 1세기 갈릴리 유대인이었던 실제 예수의 외모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예수는 언제, 어떻게 “백인 미남”이 되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기독교 미술과 권력, 문화가 얽힌 긴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흥미롭게도 가장 초기의 기독교 문헌인 신약성경은 예수의 외모를 거의 전혀 묘사하지 않는다. 키나 체형, 피부색, 머리 모양 같은 구체적인 정보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고대 전기문학이 종종 인물의 외모를 묘사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는 다소 특이한 현상이다.


예를 들어 구약 성서에는 몇몇 인물의 외모가 간단하게나마 등장한다. 다윗은 사무엘상권 16장에서 붉은빛이 있고 눈이 아름다우며 용모가 준수한 인물로 묘사된다. 다윗과 경쟁했던 사울도 같은 책 9장 2절에서 매우 준수하며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 더 큰 키를 가진 인물로 소개된다. 다윗의 아들로 반란을 일으킨 압살롬은 사무엘하권 14장에서 이스라엘에서 가장 잘생긴 사람으로 묘사된다. 또한 이들의 조상인 요셉은 창세기 39장 6절에서 용모가 아름답고 잘생긴 인물로 언급된다. 이처럼 구약 성서에는 외모에 대한 묘사가 존재한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예수의 외모에 대해서는 성경 어디에서도 구체적인 설명이 등장하지 않는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예수의 외모를 강조하지 않았던 이유는 여러 가지로 설명된다. 무엇보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유대교 문화권에 속해 있었고, 유대교 전통에는 형상 제작에 대한 강한 경계가 존재했다. 십계명 가운데 하나인 출애굽기 20장 4절에는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계명이 등장한다. 이러한 종교적 배경 때문에 초기 기독교인들은 인물 초상을 제작하는 일을 조심스럽게 대했을 가능성이 크다. 고고학적 증거도 이를 뒷받침한다. 2세기까지의 기독교 유물에서는 예수의 초상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대신 물고기, 목자, 어린양과 같은 상징이 사용되었다. 이 시기의 기독교는 인물의 외모를 재현하기보다는 예수의 가르침과 상징적 의미를 표현하는 데 더 큰 관심을 두고 있었다.


상황이 크게 변한 것은 4세기였다.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가 합법화되면서 교회는 공적인 종교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의 상징적 사건이 바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발표한 밀라노 칙령(313년)이다. 이후 기독교는 점차 제국의 중심 종교로 자리 잡았고, 결국 380년 테살로니키 칙령을 통해 로마 제국의 공식 종교가 되었다. 기독교가 제국의 공적 종교가 되면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교회 건축이 활발해졌고, 모자이크와 성화 같은 시각 예술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그 과정에서 예수의 얼굴 역시 처음으로 구체적인 형태를 갖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이미지 가운데 하나가 6세기 아이콘인 Christ Pantocrato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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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화에서 예수는 긴 머리와 수염을 가진 채 정면을 바라보는 엄숙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도상은 이후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미술에서 반복되며 ‘예수의 전형적인 얼굴’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이 모습은 실제 역사적 초상이라기보다 당시 지중해 세계에서 권위와 지혜를 상징하던 철학자나 신적 통치자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었다. 예수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형태로 굳어지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 시기였다. 이 시기 유럽의 화가들은 성경 장면을 대규모로 제작했고, 그 과정에서 예수 역시 자연스럽게 유럽인의 얼굴을 갖게 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탈리아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1495~149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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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예수는 명백히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인의 얼굴과 체형을 가진 인물로 묘사된다. 당시 화가들은 고대 유대인의 외모를 재현하려 하기보다는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사람들을 모델로 삼았다.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성경 이야기를 인간 중심의 역사적 장면으로 재해석했고, 그 과정에서 예수 역시 유럽 문화 속 인물처럼 표현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형성된 서구적 예수의 얼굴은 이후 수세기 동안 기독교 미술의 표준이 되었다.


19세기 이후 유럽과 북미의 선교 운동이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서구적 예수 이미지도 함께 퍼졌다. 성경 삽화와 선교 교재, 교회 그림 속 예수는 대부분 서구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이미지들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교회에도 그대로 전달되었다. 20세기에는 이러한 흐름이 더욱 강화된다. 특히 미국 화가 워너 살먼이 1940년에 그린 Head of Christ는 역사상 가장 널리 복제된 예수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수억 장 이상 인쇄되어 교회와 학교, 가정에 걸렸고,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의 얼굴’로 인식되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예수의 이미지 역시 상당 부분 이 그림의 영향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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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예수는 분명 1세기 갈릴리 지방의 유대인이었다. 영국의 법의학 인류학자 리처드 니브는 고대 갈릴리 지역에서 발견된 1세기 유대인 두개골 자료를 바탕으로 당시 남성의 평균적인 얼굴을 복원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당시 사람들의 모습은 짧은 머리와 짙은 피부색, 넓은 코를 가진 중동 지역의 전형적인 외모에 가까웠다. 물론 이것이 예수의 실제 얼굴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전통적인 서구 그림 속 모습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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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예수는 처음부터 백인 남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1~3세기에는 그의 얼굴 자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4세기 이후 기독교가 제국의 종교로 자리 잡으면서 예수의 이미지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치며 그 모습은 점점 유럽인의 얼굴로 변해 갔다. 근대의 선교와 대중 이미지 산업은 이 얼굴을 전 세계로 확산시켰다. 이 역사는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보여 준다. 종교적 이미지는 단순히 과거의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문화와 권력 구조 속에서 형성된다는 점이다. 우리가 오늘날 익숙하게 보는 예수의 얼굴 역시 그러한 역사적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문화적 산물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백인 예수’의 이미지는 오늘날 서구 사회에서조차 점점 영향력을 잃어 가고 있다. 뉴욕 한 복판에 선 예수의 모습이 매우 어색한 세상이 된 것이다. 종교적 권위와 제도에 대한 회의가 커지는 시대에, 수세기 동안 형성된 그 얼굴도 오래된 그러나 여전히 새로운 질문 앞에 놓여 있다. “과연 오늘날 예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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