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서울대 법대 출신이 왜 바보짓이냐고?

한반도 엘리트의 유구한 전통을 따를 뿐이다.

by Francis Lee

“서울대 법대도 별수가 없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사회 여러 곳에서 들리는 말이다.

사실 한국 최고 대학교의 최고 학부를 나와 그 어렵다는 사시도 패스한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이 정치계다. 21대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 가운데 서울대 출신이 62명이다. 그 가운데 서울대 법대 출신이 21명이다. 그다음이 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 순이다. 그런데 나머지 4위까지 대학교 출신을 다 합쳐봐야 67명으로 서울대 출신과 비슷하다. 이른바 SKY 출신이 110명으로 전체의 36.7%를 차지한다. SKY 대학원 출신까지 포함하면 129명으로 무려 43%에 이른다. 그리고 더 확대해서 ‘인서울’ 대학 출신으로 따지면 238명으로 79%다. 결국 서울에서 공부한 사람이 이 나라 권력을 쥐고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그 정점에는 서울대 출신 그것도 서울대 법대 출신이 자리 잡고 있다. 정부 기관의 주요 요직도 사실 SKY 출신이 장악하고 있고, 그 가운데 서울대 출신이 정점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그동안 서울대 법대 출신이 대선에 도전해서 성공한 경우는 없었다. 그러다가 대한민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었다.


서울대 법대는 말하자면 한국의 천재만이 갈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에 대해 거는 기대가 있었다. ‘천재’가 나라를 다스리면 어찌 되는지 궁금한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지 1년이 훨씬 넘은 이 시점에서 나라는 혼란 그 자체다. 물론 윤석열 후보를 찍은 사람 대부분은 윤석열이라는 인물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분노와 좌절 때문이었다는 여론 조사가 말해주듯이 그의 ‘능력’을 믿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더구나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때부터 지속적으로 말한 대로 경험이 없는 사람이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올랐으니 처음에는 쉽지 않을 것이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 정도’ 일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경제는 문재인 정부 시절에 비해 더 나빠지고 있고, 외교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거둔 것이 없고, 여론은 더욱 분열되어 있다. 그 결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30%대 초반에서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도 갑자기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 당선 때의 48.56%는 환영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 지혜다. 일반적으로 한국 사회에서는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여 무사히 졸업하고 사시에 합격하면 자타가 공인하는 ‘수재’의 자격이 부여된다. 그래서 주변에서 그런 사람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그 좋은 머리로 사회와 나라에 좋은 일을 해서 모두가 잘 사는 그런 세상이 오기를 꿈꾸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얼마나 머리가 좋아야 서울대 법대에 들어갈까? 이제는 법과대학원으로 바뀌어 정확히 가늠하기 어렵다. 그래서 일단 SKY 대학과 인서울 대학의 입학 정원을 살펴보기로 한다. 2023년 수능 응시생의 숫자가 44만 7천 명이다. SKY 대학 입학 정원은 약 11,000명이다. 곧 2.5%라는 말이다. 곧 500명 정원인 학교 전체에서는 10등 정도 하고, 30명 정원의 반에서는 1등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인서울로 확대해도 72,000명으로 전체 응시생의 15% 정도다. 이 정도면 500명 정원의 학교 전체에서는 50~60등을 하고, 30명 정원의 한 반에서 4등 안에 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서울대는 2023학년도 기준으로 3,233명이다. 전체 수능 응시생의 0.7%다. 500명 정원의 학교에서 3명 정도만 서울대를 보낼 수 있다는 말이다. 그 가운데 서울대 법대는? 상상을 초월하는 극소수의 천재만이 서울대 법대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는 것 자체가 천재를 증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만이 아니라, 그동안 서울대 법대 출신도 모자라 사시를 비롯한 국가시험에 여러 번 합격한 사람들이 주요 관리나 정치가로 활동해 왔지만, 지금과 마찬가지로 국민에게 큰 실망을 안겨준 경우가 많았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두 사람을 보자.


먼저 김기춘을 보자. 1939년 경남 거제 출신으로 경남고를 나와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여 대학 3학년 때 사시에 합격한 ‘천재’다. 게다가 서울대 법대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검찰에 들어가 검찰총장까지 역임하고 고향인 거제시에서 내리 3선을 한 국회의원이 된 다음 법무부 장관을 거쳐 박근혜 밑에서 비서실장까지 했다. 최고의 대학과 최고의 관직을 다 거쳤다. 그런데 그러다가 그는 결국 여러 범죄 혐의로 추레한 몰골을 보이고 말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말에 따르면 김기춘은 법마(法魔), 곧 법을 이용한 마귀였다. 김기춘은 자기를 감옥으로 보냈던 학교와 검찰 후배인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특별 사면을 받아 이제는 범죄자가 아닌 시민이 되었다.


그다음으로 우병우도 있다. 1966년 경북 봉화 출신으로 영주고를 나와 학력고사 전국 53등으로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그리고 김기춘과 마찬가지로 대학교 3학년 때 20세의 최연소 나이로 사시에 합격한 천재다. 역시 검찰에 들어가 똑똑한 검사로 활약하고 결국 박근혜 밑에서 비서가 된다. 그러나 우병우도 서울대 법대와 검찰, 청와대 선배인 김기춘을 따라 수갑을 차는 치욕을 맛보게 되었다. 2023년 역시 나이는 자기보다 많지만 사시는 4기나 후배인 윤석열 정부의 신년 특사로 복권되어 이제는 더 이상 범죄자가 아닌 신분으로 살고 있다.


이 두 사람은 단순히 서울대 법대 출신이 아니라 대학 재학 시절 사시에 합격한 천재였다. 그런데 그 말로가 추하기 이를 데 없었다. 80을 넘긴 김기춘이나 아직 환갑이 안 된 우병우나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1960년생으로 그 중간 어디쯤인 윤석열 대통령도 현재로서는 국민에게 커다란 실망을 주는 일을 더 많이 하고 있다. 대학교 3학년 때 사시에 합격해서 천재 중의 천재임을 뽐내든, 9수를 하여 간신히 사시에 합격하든 결국 결론은 같아 보인다. 도대체 원인이 무엇일까?


일단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천재적인 머리와 훌륭한 국가 지도자는 아무런 논리적 연계가 없다는 사실이다. 조선시대에도 공부 잘하고 과거에 합격한 ‘수재’가 많았다. 그리고 그들이 관리가 되어 나라를 잘 다스리기를 모두가 바랐다. 그러나 역사가 말해주는 대로 조선시대의 ‘천재들’도 나라를 잘 다스리고 백성을 기쁘게 하기보다는 당파 싸움과 이권 다툼에 열을 더 올린 것처럼 보인다. 조선 건국 100년 정도 흐른 다음 벌어지기 시작한 사화가 그런 사실을 잘 보여준다. 무오사화(1498), 갑자사화(1504), 기묘사화(1519), 을사사화(1545)로 숱한 천재들이 죽어 나갔다. 기득권층인 훈구파와 신흥 엘리트인 사림파의 이권을 놓고 벌이는 피비린내 나는 싸움으로 나라는 피폐해졌고, 결국 사화가 마무리된 지 50년 정도 지난 1592년의 임진왜란을 시작으로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을 거쳐 1910년 조선이 일본제국에 넘어가는 치욕스러운 역사가 이어졌다. ‘천재’들끼리 죽자고 싸운 결과였다. 한반도의 역사에서 왕권이 다른 성씨로 넘겨지는 예는 있었어도 나라가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천재’들끼리 그 좋은 머리로 나라와 백성에게 도움이 되는 일은 안 하고 돈과 권력을 놓고 한바탕 싸움에만 골몰하던 결과였다. 그것도 모자라 엘리트인 정적을 몰살시키는, 문자 그대로 삼족을 멸하는 것에 심혈을 기울인 것이 한반도의 엘리트였다. 다시 말해서 자기가 살기 위해서는 자기와 자기 패거리 엘리트 이외에는 살면 안 되었다. 강력한 경쟁자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한반도의 엘리트가 다 죽어 나가고 결국 생존에만 최적화된 상황에 잘 적응한 엘리트만 살아남으니 막상 외적이 침입하자 당해낼 재간이 없게 된 것이다. 진짜로 나라를 망하게 하는 적은 외부에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도 모자라 이완용 같은 엘리트는 아예 나라를 외적에 넘기고 자기와 자기 자식의 호의호식만을 추구했다. 이런 한반도에 최적화된 엘리트의 전통을 돌아보면 왜 지금 서울대 법대 나와도 별 볼 일 없는 현상이 발생하는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이제는 나라를 아예 친일과 반일로 나누어 반일은 빨갱이로 척결해야 한다는 말도 서슴지 않고 나오는 세상이 되었다. 100여 년 전에 이완용이 내세운 논리와 비슷한 변명으로 이런 주장을 합리화하기까지 한다.


한마디로 한국의 엘리트는 나라 걱정이 없는 것이다. 어차피 나라가 망하든 말든 자기와 자기 패거리만 호의호식할 수 있으면 그만이고, 정적인 엘리트는 그런 호의호식에 방해만 되는 존재이니 가차 없이 처단해 버리는 것이 좋은 일이다. 그런 전통이 오늘에도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왜 서울대 법대씩이나 나와서 저 모양이지?’라고 한탄할 필요가 없다. 원래 그 모양이니 말이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그런 타락한 엘리트 때문에 고생한 백성은 어찌했나? 결국 ‘민란’을 일으켰다. 사실 민란은 조선시대만이 아니라 신라 시대부터 지속적으로 있었다. 그 가운데 두드러지고 결국 정권을 무너뜨린 것이 신라 말기인 진성여왕 8년, 곧 894년에 일어난 궁예와 견훤이 농민군을 이끌고 일으킨 민란이다. 고려 때에는 중앙에서 무신이 반란을 일으켰고, 지방에서는 농민이 수많은 민란을 일으켰다. 조선시대에도 지도자가 부패하고 무능하여 국가 권위가 무너지고 민생이 피폐해지면서 민란이 자주 발생하였다. 1862년 철종 때 시작된 민란은 1894년 동학혁명까지 이어졌다.

이 모든 민란은 오늘날의 사시인 과거시험에 합격한 엘리트들이 권력다툼을 하는 가운데 먹고사는 것이 극도로 어려워져서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인 한계 상황에 몰린 농민이 일으킨 것이다. 이는 결국 나라가 외적에게 넘어가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해방이 되고 나서도 그런 잘난 천재들의 돈과 권력을 놓고 벌이는 이권 다툼의 현상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승만에서 전두환에 이어지는 독재 정권 시절은 물론 그 이후 문민정부가 들어서도 한국의 이권 다툼에 이골이 나고 국내에서의 파벌 싸움에만 골몰하는 엘리트가 변함없이 이 나라를 이끄는 것이다. 그러니 서울대 법대가 잘못한 것이 아니다. 그냥 이 나라 엘리트의 DNA가 다 그 모양뿐이다.


그렇다면 그런 나라에서 사는 백성, 아니 국민의 정신이 깨어 있어야 하는데 국민도 그 권력자의 갈라 치기 놀음에 오히려 변죽을 울리면서 갈가리 찢어지기를 즐긴다. 그래서 늘 말하는 대로 토착 왜구와 빨갱이, 진보와 보수, 경상도와 전라도, 한남과 된장녀, 시엄마와 며느리, MZ와 꼰대로 나뉘어 서로를 헐뜯고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인가? 이것도 DNA인가? 아니면 유구한 한반도 엘리트들을 어느 사이 모방하게 된 것인가? 미워하면서 닮아간다더니 결국 그 사달이 난 것인가? 그런 국민을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엘리트는 오늘도 저 위에 앉아서 돈과 권력을 가지고 놀면서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다.


서양에서는 이런 경우 민중이 프랑스 대혁명, 농민전쟁, 68 혁명과 같은 모순된 질곡의 역사를 뒤집는 변혁을 일으켰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그런 ‘민중’도 사라져 버린 것 같다. 아마도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멸사봉공하는 참된 엘리트는 사화로 다 죽고, 권력자의 부당한 억압에 맞서 국민 모두 다 같이 더불어 잘 살자는 사회정의를 위해 싸우는 참된 민중도 민란 과정에 다 죽은 모양이다. 그러고 나서 한반도에 겨우 남은 씨는 나라가 어찌 돌아가든 나, 내 가족, 내 패거리만 호의호식하면 그만이라는 적자생존에 달인이 된 이들의 DNA만 넘치는 나라가 된 모양이다. 그런데 어쩌나? 이제 한국은 경제가 파탄 지경이고, 한반도 주변 정세가 매우 불리하게만 돌아가고, 인구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줄어드는 나라가 되었다. 현재의 저출산 추세가 이어지면 2050년이면 대한민국 인구가 4천만 명대로 줄고, 2070년에는 3천만 명 대로 줄어든다. 그 뒤에는? 1등을 좋아하는 나라답게 이제 인구 소멸 속도 1위국으로 등극하였다. 참으로 희망을 품고 싶은데 희망이 없다. 어찌해야 할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왜 한국의 극우는 독일의 극우와 다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