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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지금 의대 정원 확대인가?

국민 건강마저도 당리당략의 도구로만 사용하는 정부를 탄핵하고 싶다.

by Francis Lee

강서구 보선 참패 이후 모든 여론조사에서 궁지에 몰리고 있는 윤석열 정부가 문자 그대로 마지막 카드로 이재명 대표 죽이기와 더불어 의대 정원 확대를 내놓는 모양새다. 명분은 확실하다. 한동훈의 말에 따르자면 이재명 대표는 그냥 놔두면 ‘잡범’이 기뻐할 만한 범죄자이고 의대 정원은 OECD 회원국 수준 이상이 되도록 늘려야 체통이 선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300~500명 선의 단계적인 '의대 정원 확대 방안'을 보고하자 윤 대통령은 1,000명에 이르는 ‘통 큰’ 인상을 주문했단다. 문재인 정부 때 400명 증원도 의협의 격렬한 반대에 막혀 좌절된 것을 뻔히 알 텐데 왜 이런 무리한 요구를 했을까? 그것도 할 일이 너무 많은 이 상황에서 말이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의사 인력 양성에는 10년 이상이 걸리는 만큼 10년 후 의사 인력 수급을 위해서는 지금 결단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장 내년 총선 때 박살이 날 가능성이 큰 정권이 10년 후를 내다보다니 ‘대다나다.’


위의 답변에 이어 대통령실은 추가 설명을 다음과 같이 했다고 한다.


“로스쿨 출범, 변호사시험 합격자 증원, 그리고 그 이후 펼쳐진 법률 시장 변화를 윤 대통령 자신이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시 평통 수석 부의장 김관용이 찬미한 대로 윤석열 대통령은 10년을 내다보고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필요한 수요와 공급 방안을 꿰뚫어 보는 혜안을 지닌 “먹구름을 걷어내고 혼란 속에서 나라를 지켜내신 구국의 지도자”가 분명한 것 같다. 과연 문재인 정부에서 내놓은 의대 정원 400명 증원 계획을 놓고 국가 의료 체계 붕괴 직전까지 갔던 의협이 이번 정권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너무 궁금하다.


2020년 문재인 정부는 의대 정원을 2021년 3,058명에서 2022년부터 2031년까지 3,458명으로 늘리고 2032년부터 다시 3,058명으로 줄이는 계획을 세웠다. 매년 증원되는 400명은 지역 의사 300명과 특수 전문 분야 50명, 의과학자 50명으로 나눠 선발하기로 했다. 지역 의사는 지역 내 중증 및 필수 의료분야에 의무적으로 종사하고, 특수 전문 분야는 역학조사관과 중증 외상을 다루고, 의과학자는 기초의학과 제약과 바이오 분야에 종사해야 하는 의무 조항이 있었다. 지역의사제로 선발된 300명은 정부와 지자체가 50%씩 부담하는 전액 장학금이 지급되는 좋은 조건이었다. 그러자 의협에서 의사면허 반납이라는 초강수를 두고 의대생들도 거의 반정부 투쟁을 하듯이 난리를 피웠다. 그 당시 환자가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리로 뛰쳐나와 밥그릇 지키기 운동에 나섰다. 하도 난리를 쳐서 결국 정부는 의대 정원 계획을 포기하고 말았다. 한국에서 왜 의대를 미친 듯이 들어가고 의사가 되는지 근본적인 이유를 이 당시 의사들과 의대생들이 잘 보여주었다. 모두 돈 귀신에 들린 자들이라는 사실 말이다.


한국은 OECD 회원국의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의사를 보유한 나라다. 그러나 의사 수가 늘어나면 지금 변호사들처럼 수입이 줄어들 것을 두려워한 자들이 ‘돈 귀신’에 빙의된 본질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런 자들이 지금도 뻔뻔하게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며 직업 전선에 나서고 있겠지?


실제로 한국의 월급의의 평균 연봉은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OECD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20년 기준 한국 월급의의 평균 연봉은 구매력평가(PPP) 환율 기준 192,749달러(2억 7천만 원)로 자료를 제출한 28개 회원국 중 가장 높았다. 한국의 뒤를 이어 네덜란드(191,482달러), 독일(187,715달러), 아일랜드(167,912달러)가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한국 개원의의 평균 연봉도 2020년 기준 298,800달러(4억 2천만 원)로 관련 통계가 있는 7개국 중 벨기에(301,814달러) 다음으로 2등을 차지했다. 캐나다(233,325달러), 스위스(210,614달러), 오스트레일리아(196,377달러)가 그 뒤를 이었다. 한국의 임금 노동자 소득 대비 개원의 소득은 6.8배로 OECD 회원국 중 최대다. 월급의 소득은 임금 노동자 평균의 4.4배로 칠레(4.7배) 다음으로 2등을 차지했다.

한 마디로 세계 어느 나라에 비해도 한국 의사가 떼돈을 벌고 있다. 그렇게 의사 1인당 소득이 높은 이유는 당연히 수요에 비해 공급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2021년 기준 한국 인구 1,000명당 임상의는 2.6명(한의사 포함)으로 OECD 회원국 30개 국가 가운데 멕시코(2.5명) 다음으로 적다. 여기서 한의사를 제외하면 2.1명으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다, 이는 회원국 평균(3.7명)의 절반 정도가 되는 숫자다. 그 잘난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수요·공급 시장원리 아닌가? 그러니 그 돈맛을 알아버린 의사가 행여 돈을 뺏길 리가 있나? 죽어도 못 놓을 돈이다. Bravo, your life! 한국 의사들!


그런데 윤석열 정부에서 의사 정원 문제를 두고 드디어 칼을 빼 들 태세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의사 정원 증원은 사형집행, 동성애자 혼인 반대와 더불어 사회적으로 가장 찬성 비율이 높은 안건이다. 그런데 이른바 보수 정권을 자처하는 윤석열 정부에 사형집행과 동성애자 혼인 반대는 코드가 맞는 사안이지만 의사 정원 증원은 강력한 보수층인 의사를 상대로 하는 것이기에 솔직히 코드가 안 맞는다. 총선도 가까운 마당에 그들과 척질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위의 세 가지 안건 가운데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것을 가장 먼저 들고 나온 이유는 뻔하다. 현재 돌아선 민심을 이 카드로 돌려보겠다는 뜻이다. 2022년 기준 한국의 의사 수는 112,321명이다. 의사 한 명에 딸린 식구가 4명이라고 계산해 봐도 40~50만 명 남짓이다. 게다가 그들 대부분은 어차피 ‘강남 끕’에서 살고 있는 보수층이다. 의사들이 선택할 당은 국민의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밀어붙여! 그런 명령이 떨어졌을 것이다. 의사들이 집단 반발을 해도 내년 총선의 대세에 아무런 임팩트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의사들의 집단 이기주의에 치를 떠는 국민은 70% 이상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을 국민의힘 지지층으로 흡수할 수 있다면 의사들의 반발쯤이야 ‘가비얍게’ 무시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과연 윤석열 정부의 계산대로 일이 흘러갈까?


로스쿨이 세워진 이후의 변화를 보면 긍정적인 전망이 가능하다. 제1회 변호사시험이 실시된 2012년 3조 6,096억 원이던 법률 시장 규모가 2021년 7조 7,051억 원으로 두 배 이상 커졌다. 그러나 변호사 1인당 연간 매출은 같은 기간 2억 4,886만 원에서 2억 4,632만 원으로 줄었다. 변호사 수가 14,534명에서 31,281명으로 2배 이상 는 것이 결정적 원인이었다. 파이는 커졌지만 나누어 먹자고 덤비는 변호사가 많으니 당연히 수입은 늘지 않은 것이다. 의사의 경우도 마찬가지 효과를 보게 될 것으로 많은 사람이 전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머리 좋은 의사들이 이런 꼴을 두고 볼 수 없다고 난리를 칠 것이 뻔하지만 문재인 정부 때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권력자와 맞서 싸우는 꼴이 되었으니 상당히 난감할 것이다. 싸우자니 ‘같은 편’이라 찜찜하고 안 싸우자니 돈이 날아갈 판 아닌가? 그래도 의리보다는 돈이 중요하니 분명히 의협이 총대 메고 앞장설 것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 400명 증원을 놓고 나라를 뒤흔든 의협이니 통이 크게 1,000명을 증원한다면 경천동지라도 해야 할 판 아닌가? 그런데 일부 언론에서는 3,000명까지도 말이 나온다. 말도 안 되는 이런 말이 나오는 이유는 당연히 윤석열 정부에서 흘렸거나 그 언론사가 알아서 기는 것이겠다. 문재인 정부에서 400명도 실패했는데 그 몇 배의 정원을 갑자기 늘리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일인데도 왜 이러는 것일까? 뻔히 그 속이 보이는 일이다. 일단 거래를 할 때 크게 불러 놓고 협상하는 척하면서 최종적으로 400명 정도 늘릴 심산 아닌가? 그리고 400명 늘리는 계획은 문재인 정부에서 정밀하게 수립한 계획이 있으니, 그것을 거저 가져다 쓰면 그만이다.


이런 소동에서 깊은 속을 알 길 없는 국민은 그저 언론에서 나오는 숫자에만 휘둘릴 것이고 그러면 정말 뭔가 변화가 올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반가워할 것이고. 그렇게 분위기 띄우면서 총선을 맞이하면 국민에게 공이 던져질 것이다. 국민의힘을 뽑아야 의대 정원이 늘어날 것이라고. 이재명 대표 불구속 기소와 의대 정원 증원의 두 카드가 약발이 안 먹히면 사형집행 카드도 남아있다. 마구 카드를 던져 보고 하나라도 걸려 총선에서 좋은 결과만 나오면 되겠지. 그리고 총선에서 지면? 국민 책임이다. 총선에서 이기면 그때 가서 의협과 ‘쇼부’를 보면 그만 아닌가? 어차피 같은 보수 세력끼리 얼굴 붉힐 일이 뭐가 있겠는가? 적당히 타협해서 의약분업 때처럼 실질적으로는 의사들이 이익을 보면서 결과적으로 한의사와 약사만 유탄을 맞도록 한 것처럼 이번에도 의사들이 최대한 이익을 보되 양보하는 모양새만 갖추면 그만이다. '선수들'끼리 다 알아서 하는 것 아닌가? 그저 총선에서 국민만 선전·선동으로 유혹해서 이기든지 아니면 지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국민의힘의 목표인 것이 훤히 보인다.


사실 의대 정원 증원은 정치적 책략의 수단으로 사용하기에는 국민의 안녕을 위해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그러나 모리배들이 설치는 현재 한국의 정치판에서는 이마저도 노름판의 카드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금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강서구 보선 참패를 기점으로 바닥을 향해 추락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당연히 희생양이 필요하다. 그런데 김기현 체제를 그대로 끌고 가기로 작심한 이상 당이 아니라 당 밖의 그것도 정치적으로 적대적이고 가장 먼 집단이 필요하다. 게다가 무엇보다 국민이 관심이 많고 싫어하는 대상이어야 한다. 그런 먹잇감으로 이재명 대표와 의사 집단 만 한 것이 어디 있을까? 이 두 대상을 가지고 놀면 국민의 관심은 자연스레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에서 멀어질 것이다. 그렇게 총선까지만 이재명 대표와 의사 집단을 꽃놀이 패로 이용하다 뜻대로 안 되면 버리면 그만이다. 이런 기가 막힌 현실에서 결국 국민만 놀림감이 되고 말 것이다. 사실 깨어있는 백성만 안 당할 뿐이다. 그런데 과연 이토록 갈가리 분열된 나라에서 누가 깨어있을까? 정치가의 꼭두각시가 되지 않으려면 정신 차려야 하는데 혼자만 깨어 있으면 오히려 더 막막해질 뿐이다. 국민 건강마저도 당리당략의 도구로만 사용하는 정부를 탄핵하고 싶다. 정치가의 눈에는 정말로 국민은 그들의 손바닥에서 놀아나는 '개돼지'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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