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ancis Lee Jun 24. 2024

‘세김여사’와 노소영 그리고 민희진의 존재 이유는?

이 나라를 구할 진정한 여장부가 보인다.

며칠 전 저녁 무렵 남산 터널을 빠져나와 한남대교를 향해 차를 몰고 가는 데 반대편 차선이 텅 비어 있는 것을 보았다. 늘 막히기 일쑤인 한남대교 북단 도로가 이리 한가한 경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운전하면서 계속 관찰하니 경찰 오토바이가 앞뒤로 호위하는 여러 대의 ‘검은 차’가 지나간다. 말로만 듣던 대통령 퇴근행렬이었다. 한남대교 초입에 이르니 그 뒤로 1km도 넘는 길이의 정체 행렬이 보인다. 대통령 지나간다고 수백 대의 퇴근길 차량이 막혀 있다. 그 가운데에는 영문도 모르고 큰 사고가 난 것으로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대통령도 ‘직장인’이니 당연히 출퇴근을 해야 한다. 그러나 오로지 국민만 보고 가겠다는 사람이 평소에도 붐비는 다리인 한남대교를 그것도 하필 퇴근 시간에 완전히 막아 세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왜 저러고 살까?’   

  

그리고 그 차 안에 요즘 한창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는 김여사도 함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요즘 대한민국 지도자를 지도한다는 그 ‘김여사’ 말이다.  

    

한 나라의 지도자라면 아무리 민주주의 국가라 하더라도 백성의 안위를 늘 생각하고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공자가 말한 군자의 덕성을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21세기에 통하는 상식이다. 그런데 요즘 윤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백성 전체보다 김여사 한 사람의 안위가 더 중요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똑같은 질문이 떠오른다.     


‘왜 저러고 살까?’    

 

그런데 얼마 전에 천하의 조선일보가 김여사 사달 물타기 작전을 보여주었다. 논설위원으로 있는 김경희는 “‘세김여사’와 그의 ‘婦唱夫隨’ 남편들”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전직, 현직 대통령의 김여사는 물론 미래의 대통령으로 이미 거론되는 이재명 대표의 김여사를 싸잡아 비난하고 있다. 세 사람이 공교롭게도 모두 김 씨라서 이런 말장난이 가능한 것이다. 게다가 제목이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夫唱婦隨가 아니라 婦唱夫隨를 써서 못난 남편들을 비꼬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남편이 호령하면 아내가 따르던 것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아내가 호령하면 남편이 시키는 대로 한다고 갈파한 것이다. 물론 물타기를 위한 글이지만 김경희의 주장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가 말한 내용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윤·김여사의 ‘나대기’와 ‘의심스러운 과거’는 이미 세간의 입방아를 넘어서 팩트로 고착되어 더 이상 가십거리조차 안 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조선일보가 계속 ‘씹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러나 천하의 조·중·동이 아무리 떠들어도 윤 대통령은 국민이 아니라 오로지 김여사만 보고 가는 언행을 뚝심 있게 지속하고 있다.    

 

문·김여사의 경우도 피장파장이다. 물론 보수 진영에서 물고 늘어지는 인도 방문 사달의 실체는 점점 더 ‘오버’로 드러나고 있지만 문·김여사의 ‘나대기’ 윤·김여사의 나대기에 필적할만한 것은 사실이었다. 한 나라의 지도자인 대통령을 자기 맘대로 대한다는 인상을 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한때 그런 태도가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나대기’의 카테고리에 정착하고 말았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회고록에 정성스럽게 그런 아내를 감싸기에 바쁘다. 婦唱夫隨의 모습이 문 대통령에게도 분명히 보인다. 식사비가 수백만 원이든 수십만 원이든 문·김여사가 나대기 한 결과의 파장인 것은 분명히 사실이기 때문이다. 요즘 분위기가 아내를 무시하거나 비난하면 못난 남편이라는 욕을 듣는 세상이라서 그런가? 그런데 이 글에서 김경희가 이·김여사를 끌어들인 것은 너무나 속이 뻔히 보이는 수작이다. 이재명 대표는 아직 대통령이 아니고 그 유명한 ‘법카 사달’은 마타도어라는 정황이 거의 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이·김여사도 남편의 부하들에게 위세를 부린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세김여사의 나대기 위세는 허상이라는 데 있다. 만약 이들의 남편이 권력자, 그것도 한국 최고의 권력자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내 맘대로’의 나대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흔히 현대 여성의 내 맘대로 살기가 마치 여성 해방의 실천 덕목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 세김여사의 ‘내 맘대로’는 철저히 구시대적인, 정확히 말해서 가부장제도의 파편에 불과하다. 남편의 위세를 믿고 멋대로 구는 천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이런 반론이 나올 법도 하다.     


‘너도 억울하면 검사 남편 만나고 권력자 남편 만나...’     


얼마나 촌스러운 말인가? 21세기 여성 해방의  시대에 여전히 남편에 기생하면서 호가호위하는 주제에 남편 잘 만나보라는 충고 아닌 충고를 하면서 ‘나대기 라이선스’를 스스로 쟁취한 듯이 설치는 모습은 추레하기까지 하다.      


이런 세김여사를 보면서 문득 떠오르는 두 사람이 있다. 바로 노소영과 민희진이다.     


노소영은 바람난 남편인 최태원을 ‘바른 길’로 인도하려다가 결국 이혼 소송을 벌여 2심에서 통쾌한 승리를 거두었다. 사실 최태원은 혼인 계약이 만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컨드를 얻어 아이까지 낳았다. 그의 파트너인 여자는 마치 최태원의 ‘정실’이나 되는 듯이 행세하였고. 그러나 이는 윤리도덕을 떠나 법률적으로 분명히 처벌의 대상이 되는 범죄행위다. 그런데도 최태원의 세컨드는 ‘당당하게’ 최태원의 정실인 것처럼 나대기를 하고 다녔다. 엄연히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노소영이 정실인데 그 자리를 꿰찬 듯이 말이다. 이 태도도 남편의 위세를 믿고 설치고 다닌 세김여사와 다름이 없다. 이미 1894년 갑오경장에 이르러서 폐지된 불법적 축첩제도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천하가 다 아는 최태원이 벌이고 있는데도 그가 법적으로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그가 재벌이기 때문이다. 돈이 권력인 대한민국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 불법적 불륜을 저지를 최태원과 그의 불륜녀에게 노소영이 보기 좋게 한 방 먹였다. 그런데 그에 대응하는 최태원의 행색이 군색하기 짝이 없다. 자기 개인의 불륜으로 수조 원의 벌금을 물게 된 상황인데 아무 잘못이 없는 SK 직원들에게 비상령을 내린 것이다. 마치 중세 시대 위기에 빠진 군주가 자기 영토의 신민들을 달달 볶는 형국이다. 참으로 못났다. 그러면서 내세우는 명분의 사세다. 개인 비리, 그것도 불륜의 책임을 자기 소유의 회사와 그 임직원에게 떠넘기는 최태원의 모습은 전혀 남자답지 못하다. 그에 비해 그런 못난 남편과 불륜녀에 맞서 당당히 벌금을 받아낸 노소영은 진정한 21세기의 해방된 여성의 아이콘이 될만하다.     


민희진도 노소영에 버금가는 인물이다. BTS로 명성을 날리게 된 한국 엔터계의 황제인 방시혁에 맞서 싸우며 1승을 거두었다. 더구나 언론이 일편단심으로 방시혁을 두둔하고 민희진을 돈에 미친 여자로 마녀사냥을 해대는 상황에서 이룬 값진 승리가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사회라고 하지만 허울뿐이고 여전히 강력한 가부장제가 지배하는 상황에서 놀라운 쾌거가 아닐 수 없다. 남성중심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언론에서 민희진을 돈에 미친 여자로 마타도어하고 있지만 방시혁은 그럼 산속 절간에서 수도하는 중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돈에 미치기에는 방시혁도 피장파장이다. 그런데도 언론은 방시혁 편만 들고 있다. 민희진이 만만해 보이는 것이다. 게다가 여자가 나대는 것이 꼴 보기 싫고. 이런 편향된 남성중심주의 사회에서 민희진이 거둔 승리는 역사에 남을만하다.     


이런 상황에서 세김여사와 비교해 보면 노소영과 민희진은 더욱 빛나는 인물들이다. 남편의 권력이 기대어 나대는 것을 당당한 주체적인 여성으로 호도하는 세김여사는 오히려 한국의 여성해방에 걸림돌이 될 뿐이다. 진정한 여성 해방, 주체적 여성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소영과 민희진처럼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런데 이는 요즘 한국 사회에 널리 퍼진 남혐을 부추기자는 말이 아니다. 세김여사처럼 남편을 ‘우습게 아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여성해방이 아니다. 그것은 위선이다. 정작 세김여사는 본인이 가진 뛰어난 소양도 탁월한 능력도 없으면서 그저 남편 하나 잘 만나 호가호위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노소영 민희진처럼 남성중심주의에 맞서서 당당히 싸워 스스로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지켜내는 것이 진정한 여성 해방의 전사다.    

 

세김여사가 설치는 모습이 매우 불편했는데 노소영과 민희진 같은 진짜 21세기 해방된 여성이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니 마음이 놓인다. 한국 사회의 희망을 주는 아주 귀한 영웅을 본 느낌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진정한 ‘센 언니’를 보아 안심이 된다. 노소영 민희진은 남편의 권력이 편승하여 나대기나 해대는 김여사가 준 답답증을 해소하는 중요한 사건의 주인공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두 사람에게 고맙다. 많이 부패하고 많이 흔들리는 나라를 구하는 영웅이니 말이다. 앞으로도 아내의 말에 꼼짝 못 하는 척하는 것이 착한 좋은 남편이라는 그리고 여자는 그저 밟아주어야 한다는 허위의식을 퍼뜨리는 못난 남편들과 남자들을 더 꾸짖어 주기를 바란다. 그래야 이 나라에 희망이 보이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검사 위에 여사 나라’, 부끄럽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