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아예 '기독교 갈라파고스'가 된 지 오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벨기에를 국빈 방문한 자리에서 벨기에 왕과 수상이 기독교 교회를 강하게 비판했다는 소식이 들린다.(링크: https://www.spiegel.de/panorama/gesellschaft/papst-franziskus-in-belgien-koenig-und-premier-kritisieren-kirche-wegen-sexuellen-missbrauchs-a-eef26cbd-a0ac-4383-aa4d-42b79f225875)
프란치스코 교황은 근자에 가장 보기 드문 ‘진보적인’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국빈 방문한 자리에서 벨기에의 국왕과 수상이 입을 모아 교회를 비판하는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사실 요즘 유럽에서 이런 장면은 너무 익숙해져서 새로울 것도 없다. 비판 내용은 당연히 성직자의 성폭행, 특히 아동 성폭행에 관한 것이다. 벨기에에서는 2010년 벨기에의 브뤼게 교구 교구장 주교인 방겔루베가 자기 조카를 성폭행한 사실이 드러난 바가 있다. 그러나 이를 포함한 사제 성폭행 조사 위원회는 올해에 들어서야 비로소 만들어졌다. 이제 시작인 것이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사제가 성폭행을 저지른 사건은 그 숫자를 세기도 힘들 정도로 넘쳐난다. 그러나 교회는 자체 조사위원회를 수립하고 조사를 하는 데만 시간을 마냥 보내고 있을 뿐 희생자 피해 보상에는 여전히 미적대고 있다. 많은 희생자는 부끄러워 자신을 드러내는 것조차 꺼리고 있는 상황이다. 요즘 들어서야 비로소 주교나 신부에게 성폭행당한 것을 당당히 밝히는 용기를 내는 신자들이 조금씩 늘고 있는 정도다. 오랫동안 교회 안에서는 피해자를 오히려 신부를 유혹한 것으로 몰아가는 2차 가해가 성행했기 때문이다. 이런 파렴치한 짓을 저지른 기독교 교회는 굼뜨게 움직이다가 교회 신자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교회의 사회적 위신이 깎이자 비로소 마지못해 조사를 시작한 것이다.
과연 이런 위신 떨어진 교회가 예수의 이름으로 진리를 전파할 수 있을까? 사실 교회가 예수를 팔아먹는 하나의 기업으로 전락한 지는 오래되었다. 그럼에도 마치 진리와 도덕의 수호자인양 위선을 떨어왔다. 그러나 진실은 반드시 드러나는 법 아닌가? 21세기 들어서 들불처럼 퍼진 me too 운동이 교회의 치부를 드러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오래전부터 교회 안에서는 성직자의 아동 성폭행은 물론 내연녀와의 통정, 교회 재산 빼돌리기가 성행해 왔었다. 다만 교회 권위가 그 진실이 드러나지 못하게 조직적으로 은폐해 온 것을 뿐이다. 그런 진실이 이제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유럽 기독교만 이 모양일까? 이미 기독교가 ‘개독교’로 되어 버린지 오랜 한국도 마찬가지다. 단일 직종 가운데 성추행 범죄자가 가장 많은 것이 기독교 계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물론 다른 직종에서도 성범죄는 얼마든지 일어난다. 그러나 기독교 계가 가증스러운 이유는 입으로는 예수를 찾으면서 현실 생활에서는 간통, 돈 빼돌리기, 사회 분열 조장하기에 열을 내고 있는 그 위선적인 모습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 한국 사회, 특히 정치계가 썩을 대로 썩어 있기에 그런 교회를 단죄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과연 한국의 국회에서 유럽처럼 한국 기독교 성직자의 성폭력 조사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을까?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지독하게 부패한 한국 정치인이 그런 위원회를 구성할 ‘용기’를 도저히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섣불리 기독교를 건드렸다가 ‘빨갱이’로 몰릴 것이 뻔한데 누가 그런 정의를 위한 희생을 감수하겠냐 말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로 한국은 ‘기독교의 갈라파고스’가 되고 있다. 케케묵은 성경 축자설, 곧 성경에는 일점 오류가 없다는 황당 무계한 논리를 전개하면서 오늘도 신자들 지갑 털기게만 골몰하고 있을 뿐이다. 그보다 더 한 것은 성직자 무오설이다. 신부든 목사든 자기들은 지고지선하고 in persona Christi, 곧 예수를 대신할만한 존재라고 건방을 떨고 있는 것이 한국 기독교 계의 엄연한 현실이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대로 한국 기독교는 로마보다 더 로마적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이미 유럽에서는 추락할 대로 추락한 기독교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척이라도 하는데 한국 기독교는 완전히 고립된 갈라파고스가 되어 세계 기독교의 추세와 전혀 동떨어진 변종 기독교를 양산해 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독한 유교적 위계질서가 판치는 세계 어디에도 볼 수 없는 기형적인 종교를 창조해 냈다. 그래서 반드시 신부‘님’ 목사‘님’으로 공경해야 한다. ‘님’ 자를 빼고 그냥 아무개 신부, 목사로 부르면 마치 신성모독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광분해 날뛴다. 거의 자기가 예수, 더 나아가 신이 된 듯이 말이다. 그래서 그런 목사님 신부님이 성폭행, 돈 빼돌리기, 간음, 폭행의 죄를 저질러도 특히 ‘신심이 깊은’ 할머니 신자들이 나서서 ‘우리 신부님’, ‘우리 목사님’을 주문처럼 외쳐대며 옹호하고 나서기 일쑤다.
결국 이런 미친 ‘변종 기독교’가 한국에서 버젓이 활개치고 그런 기독교 교회 안에서 사악한 사이비 성지가가 설쳐댈 수 있는 이유는 그런 ‘신심이 깊은’ 할머니들 때문이다. 통계를 보면 기독교 신자의 숫자는 50대 이상의 여자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젊은이, 특히 젊은 남자는 교회를 거의 찾지 않는다. 사제 성폭행이 무서워인가? 물론 그런 소식을 듣고 교회를 꺼리는 젊은 남자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기독교 교회가 ‘꼰대’들의 쉼터로 변한 지 오래 기 때문이다. 늙은이들이 모여서 자기들끼리 장로, 집사, 안수 집사, 권사로 층층 시하의 계급주의 사회를 만들어 자기들끼리 직위를 사고판다. 장로가 되려면 거금을 내야 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도 아니다. 그까짓 교회 안의 계급이 뭐가 중요하다고 존주고 자리를 사고 판다는 말인가?
현대 기독교의 본산인 유럽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도 없는 일이 한국 교회에서 버젓이 벌어지는 이 현상을 도대체 어찌 해석해야 할까? 기독교 근본주의가 판치는 한국 기독교의 본산인 미국 기독교 교회에서도 볼 수 없는 일이다. 그 답은 위에서 말한 대로다.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와 썩어가면서 ‘기독교 갈라파고스’가 되었기 때문이다. 세계와 담을 쌓고 한국 안에서 기독교를 출세와 축재의 수단으로 여기고 예수를 팔아먹기에 골몰하는 성직자와 그런 성직자를 우상화하는 덜떨어진 ‘신심이 깊은’ 할머니 신자들이 교회 안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한 한국 교회는 결국 스스로 멸망하게 될 것이다.
위에서 말한 대로 유럽에서는 교황도 공개적으로 비난을 받는 수준에 와 있다. 그러면서 교회가 여전히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나서고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반드시 썩고 썩은 것은 사멸하게 된다.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한국의 기독교 성직자와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면서 정치가들을 쥐고 흔들려는 사이비들이 날뛰는 나라의 기독교 교회를 기다리는 것이 멸망 아니고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 언제나 대통령, 국무총리는 고사하고 국회의원이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기독교 성직자와 그들의 범죄를 은폐한 교회를 꾸짖는 모습을 보게 될까? 아마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참으로 불쌍하다. 한국의 ‘갈라파고스 기독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