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 하나 못 잡는 한국 개독교가 예수 믿는다고?
한국을 보는 예수가 애처롭다
by Francis Lee Jan 13. 2025
전광훈의 발악이 절정을 치닫고 있다. 그 앞에만 서면 자칭 한국 보수가 90도 절을 하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전광훈을 이용하여 영남 지역의 표를 구걸하는 자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워낙 정치판이라는 것이 더러운 법이니 특별히 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전광훈이 내세우는 기독교 자체에 있다.
전광훈은 현재 이단 심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이단 심판을 받았지만 기독교 내부의 분열로 최종적인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 사실 '이단 논쟁'은 기독교 역사와 함께 시작된 것이다. 예수가 죽고 나서 수립된 기독교 공동체는 처음부터 분열이 있었다. <성경>에 나오는 대로 예루살렘 공동체를 대표하는 베드로파와 이방 교회를 대표하는 바오로파의 대립은 매우 극렬했다. 그러다가 결국 바울이 베드로에게 '물질적 보상'을 하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곧 바오로가 예수의 직제자로 구성된 예루살렘 공동체의 허락도 없이 예수 이름을 팔아서 활동하는 것에 대한 분노를 직접 타협을 통해 무마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교회를 세우고 예수의 이름으로 활동을 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재물을 축적하는 것에 대한 라이선스를 획득한 것이다.
그 이후 역사의 아이러니로 예수의 직제자가 세운 예루살렘 공동체는 초토화되고 그 역사도 끝났다. 그러면서 예수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예수의 가르침을 제대로 들어보지도 못한 바오로의 교회가 예수의 저작권을 독점하여 소아시아 지방을 시작으로 지금의 유럽 땅에 그 세력을 확대하게 되었다. 비정통 예수 공동체가 정통 예수 공동체를 몰아내는 부조리한 역사가 전개된 것이다.
정통과 비정통, 곧 이단을 구분하는 기준은 간단하다. 예수의 가르침에 얼마나 충실한가라는 잣대이다. 예수의 가르침은 이미 사복음서에 잘 나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일이 만만치 않은 일이다. 예수의 가르침은 중요한 한 가지 요소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종말론이다. 예수는 아버지 하느님, 곧 신의 뜻을 간파하고 나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외치면서 이른바 공생활을 시작했다. 그 시작의 첫 말이 다음과 같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그리스어 원문은 다음과 같다.
ὅτι Πεπλήρωται ὁ καιρὸς καὶ ἤγγικεν ἡ βασιλεία τοῦ θεοῦ· μετανοεῖτε καὶ πιστεύετε ἐν τῷ εὐαγγελίῳ.
여기서 말하는 때는 그리스어로 카이로스(καιρὸς)인데 이는 흔히 말하는 흐르는 시간과 달리 알맞은 시기, 예정된 순간이라는 의미다. 예정된 때는 바로 하늘나라(βασιλεία τοῦ θεοῦ) 곧 신이 통치하는 세상이 오는 시기를 말한다. 그런데 그런 세상에서 살자면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한다. 그것이 예수가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무엇을 회개하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신의 뜻을 거슬러 산 삶을 반성하라는 말이다. 복음은? 신의 통치가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그것이 기쁜 소식인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신학적으로 나중에 신이 인간을 죽음에서 벗어나 영생을 누릴 수 있게 해준다는 구원의 소식으로 바뀌게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기독교 교회는 유럽의 국교가 되면서 신의 통치에는 별 관심이 없고 오히려 지상의 통치에 몰두하게 된다. 그래서 20세기에 들어와서 정교분리가 법제화될 때까지 정치권력의 최측근으로 세상을 지배하는데 심혈을 기울여 온 것이다. 그리고 21세기가 되어도 그런 '버릇'은 없어지지 않았다. 정치에서 분리된 유럽의 기독교 교회는 몰락을 길을 가고 있는 반면에 미국의 극우 기독교 세력은 정치와 밀접하게 결탁하여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역시 기독교는 정치판에서 놀아야 기가 사는 것이다. 원래 하던 버릇대로 말이다.
한국의 기독교는 이미 개독교가 된 지 오래지만 지금 전광훈이 잘 보여주는 대로 정치와 가까울수록 기독교는 기가 산다. 예수는 단 한 번도 정치 세력을 두둔한 적이 없다. 오히려 지상의 세력과의 단절을 강조했다. 그는 신의 통치를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예수 생전에도 그리고 그의 죽음 이후 2천 년이 흘렀어도 신의 통치는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베드로가 사라진 교회에서 바오로가 설친 것처럼 예수의 가르침과는 전혀 반대로 정치 세력과 결탁한 개독교가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설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입만 열만 예수 타령을 한다. 예수의 가르침은 전혀 실천하지 않으면서도 말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간단하다. 기독교는 그 출발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정통 예수 공동체는 파멸하고 비정통 곧 이단이 정통을 참칭하면서 지금까지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늘나라보다는 지상의 왕국, 돈과 권력 그리고 여자를 탐하게 된 것이다. 만약 예수가 이런 꼴을 본다면 뭐라고 할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예수는 단언할 것이다.
"너희는 나의 제자가 아니다."
더 나아가 예수를 팔아 세속적인 권력과 돈과 여자를 탐하는 자들은 적그리스도일뿐이다.
특히 '하나님도 나한테 까불면 죽어', '내 아들이 독생자야'라는 망발을 하고도 전광훈이 멀쩡한 이 현실이 바로 지금이야 말로 말세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말세는 하늘나라가 오기 전의 때다. 그때가 이르렀으니 이제야 말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때가 된 것 아닐까? 그러나 오늘도 전광훈은 윤석열 패거리 앞에서 거드름을 피우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느라고 혈안이 되어 있다. 그리고 한국의 개독교는 그런 전광훈을 보고도 찍소리 한 마디 못하고 있다. 왜냐고? 말세이기 때문이다. 예수가 한 말을 다시 인용해 보자.
"예수님께서 올리브산에 앉아 계실 때, 제자들이 따로 예수님께 다가와 여쭈었다. “저희에게 일러 주십시오.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스승님의 재림과 세상 종말의 표징은 어떤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누구에게도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하면서 많은 이를 속일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여기저기에서 전쟁이 났다는 소식과 전쟁이 일어난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불안해하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아직 끝은 아니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진통의 시작일 따름이다. 그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 속에 몰아넣고 죽일 것이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면 많은 사람이 떨어져 나가 서로 팔아넘기고 서로 미워하며, 거짓 예언자들이 많이 나타나 많은 이를 속일 것이다. 또 불법이 성하여 많은 이의 사랑이 식어 갈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어 내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24, 3~14)
지금 한국의 기독교를 보면 예수가 말한 거짓 예언자가 활개치고 있다. 전광훈만이 아니다. 천공, 건진, 명태균만이 아니다. 김건희 윤석열 커플만이 아니다. 온 사방에 거짓 예언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들 가운데 예수를 들먹이는 자들이야 말로 적그리스도다. 그러나 적그리스도가 나왔다는 것은 말세가 왔다는 것이고 말세는 하늘나라의 도래의 징표이니 오히려 기뻐해야 할 일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