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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고래 Apr 14. 2024

반성 이전의 반성

류성룡 [징비록]






<무너진 조선>

임진년 4월 13일, 부산포 앞바다에 수백 척의 왜군 함대가 출현했다. 왜군은 불과 이틀 만에 부산을 함락하고 파죽지세로 북상한다. 방비가 소홀했던 조선 군대는 기세등등한 왜군을 대적하지 못한다. 겁먹은 군사들은 장졸을 가리지 않고 우왕좌왕 달아나기 바빴다. “왜군은 길을 나누어 멈추지 않고 우리 군대를 추격하며 여러 고을을 연달아 함락시켰는데한 사람도 감히 대적하는 사람이 없었다.” 4월 17일, 다급해진 조정은 북방의 명장 이일을 전선에 급파한다. 그러나 지휘, 군사체계 어느 하나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일은 한양의 정예 군사 300명을 데리고 가고자 하였으나병조의 군사 선발 목록을 받아보니 모두 훈련받은 적이 없는 시정잡배서리유생이 태반이었다이들은 모두 징병을 면제해 달라고 하소연하며 뜰을 가득 메워 전쟁터에 보낼 만한 사람이 없었다.” 오합지졸 조선 군대는 정예부대로 준비된 왜군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이일과 신립, 조선 최고의 장수도 전략 부재로 참패한다. 4월 30일 새벽, 선조는 백성과 도읍을 버리고 왜군을 피해 이북으로 파천한다. 왜군이 부산에 상륙한 지, 불과 보름여 만에 일어난 비극이었다. 한양은 함락됐고 백성들은 약탈과 도륙의 아비규환 속에 절망한다. 건국 200년의 건재했던 나라가 불과 며칠 만에 모래성처럼 무너진 것이다. 조선은 어째서 이토록 허술했을까. 무엇이 조선을 이토록 무력하게 만들었을까.


<자비심(自卑心)과 자만심(自慢心)의 종속적 주체>

조선은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사대(事大)를 표방했다. 사대는 소국이 대국으로부터 생존을 도모하기 위한 정치적 현실 논리다. 왕권 강화를 위해 명나라와의 조공과 책봉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대국을 상대로 스스로 낮출 수밖에 없는 자비심(自卑心)이 전제되기에 종속적 속성을 갖는다. 사대를 표방한 이상 조선은 필연적으로 종속적 주체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조정은 명나라와 긴장을 유지하며 종속의 한계를 극복하기보다는, 사대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자비심으로 자신의 가능성을 제한한 것이다. 자신을 스스로 강화하는 것이 아닌, 강자를 향한 추종을 통해 강화코자 했던 것. 삼국, 고려 시대 근간인 상무(尙武) 정신이 조선 시대에 쇠퇴할 수밖에 없던 이유다.

  개국 후 200년간 조선은 평화로웠다. 세종에 이르러 정치가 안정되며 많은 발전을 이룬다. 명나라와의 사대를 유지하며 외교적으로 안정된 시기를 보낸다. 간혹 국경에서 분쟁을 일으키는 여진과 왜는, 교린(交鄰)이라는 회유책으로 안정을 꾀했다. 하지만 명나라를 등에 업은 200년 평화는 조선을 안온함에 빠지게 한다. 안온함은 곧 자만심으로 이어진다. 조선의 자만은 그들의 시야를 협소하게 했다. 시선은 오직 명나라를 향했고. 여진과 왜국은 변방의 오랑캐일 뿐이었다. 조선 초기 왜구를 통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통신사를 파견했던 조선은, 어느덧 왜국과의 외교를 단절한다. 성종 1479년 이후 선조 1590년 황윤길, 김성일이 파견되기까지 무려 110년간 통신사의 왕래를 중단했다. 그 사이 왜국은 전국 통일의 정치적 안정을 배경으로 서양문물을 흡수하여 급속한 발전을 이룬다. 110년간 조선을 집어삼킬 국력이 길러지는 걸 전혀 모른 것이다. 뒤늦게 수상한 낌새를 차린 조선은 통신사를 파견한다. 하지만 그마저 정세의 무지함과 당파 싸움에 가려 혼란만을 가져왔다.

  종속 대상을 추종하고 그 결과에 만족하는 종속적 주체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 이는 불편한 현실을 마주하면 회피하거나 등한시하는 결과를 낳는다. 종속 대상을 향한 맹목이 생존의 예민함을 무디게 하는 것이다. 왜침을 감지할 수 있는 여러 조짐이 있었지만, 선조는 우물쭈물 명철한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사대에 안주해 현실을 외면한 무사안일에 나라는 풍전등화에 처했다. 종속의 전제 자비심(自卑心)은 그들을 무력하게 했다. 종속이 낳은 자만심(自慢心)은 그들을 어리석게 했다. 조선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이유다.


<이순신의 철저한 방비>

4월 12일, 임진왜란 발발 하루 전. 이순신은 새롭게 건조된 거북선에서 포사격 훈련을 완료한다. 그는 파국으로 치닫는 조선을 구원하는 기적이었다. 왜군은 평양성을 함락하고 의주로 도망친 선조의 턱밑까지 쫓아온다. 한 편, 해상은 육지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이순신은 개전 후 임진년, 총 11차례 전투에서 모두 승리하는 기염을 토한다. 해상을 장악당한 왜군은 전쟁의 핵심인 보급 차단으로 평양성에서 더는 진격하지 못한다. 평양성을 6월에 함락했지만, 성에 고립되어 해를 넘긴다. 이는 임진년 이듬해 명나라가 참전하는 시간을 벌게 한 결정적 계기였다. 이후에도 이순신은 연전연승하며 조선이 기사회생하는 핵심적 역할을 한다. 그러나 선조의 어리석음으로 백의종군 치욕을 당한 이순신은 통탄스러운 상황에도 다시 전선으로 복귀한다. 원균의 패전으로 무엇하나 온전치 못한 최악의 조건에서 또다시 왜군을 격파한다. 왜란을 종결짓는 노량해전까지 총 23전의 전투에서 23승을 거둔다. 이순신은 어떻게 이토록 철저했을까. 이순신은 어떻게 백전백승을 거뒀을까.


<소명의식의 능동적 주체>

소명의식이란 자신에게 부여되거나, 스스로 부여한 사명을 꼭 이루고자 하는 의지다. 무관으로서 한 몸 바쳐 나라와 백성을 지키는 것. 이것이 이순신의 소명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철저한 소명의식은 보통의 인간을 큰 성취가 가능한 인간으로 상승시킨다. 무관으로서 철저한 소명의식을 가진 자가 바로 이순신이었다. 이순신은 본래 북방에서 여진의 침입을 막는 임무를 맡았다. 하지만 억울한 누명을 쓰고 파직되어 백의종군 후 충남 아산으로 낙향한다. 그러던 중 임진왜란 1년 전, 류성룡의 추천으로 전라좌수영에 부임한다. 육전 경험만 있던 이순신에게 갑작스레 주어진 해상 임무는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그 무렵 조정에는 황당하게도 수군 폐지론이 대두되었다. 하지만 왜침을 감지한 이순신은 어수선한 상황에도 서둘러 방비를 시작한다. 철저한 소명의식으로 무장한 존재는 능동적 주체로 올라선다. 능동적 주체는 주변을 탓하지 않고 핑곗거리를 만들지 않는다.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찾는다. 철저한 소명의식에서 발화한 의지가 주어진 환경에 매몰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순신은 불과 1년 만에 오합지졸 군대를 탈바꿈시켜, 거북선을 건조하고 각종 무기와 전략 전술을 완비한다. 앞서 말했듯 이순신은 우연히도 임진왜란 발발 하루 전, 자신이 만족할 만한 수준까지 전력을 갖춘다. 조정을 비롯해 모두가 한가한 소리를 할 때, 오직 이순신만이 소명의식으로 철저히 대비한 것이다. 해상을 지키는 전라좌수영으로서의 소명의식. 조선을 구한 철저함의 원동력이었다.

  연전연승의 이순신. 무패 비결은 지형지물을 이용한 전략과 치밀한 정보 분석으로 승산 있는 싸움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치밀함과 신중함은 어리석은 왕에 의해 독이 됐다. 정유재란 발발로 다급해진 선조는 왜군 거점에 선제공격을 명한다. 이는 이순신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왜군의 교란작전에 걸려든 것이었다. 이순신은 승산 없음을 인지하고 명령에 불복한다. 절대적인 왕의 명령에도 전장에서의 신념을 굳건히 한 것이다. 능동적 주체는 내가 입법자가 되어, 내 행위의 기준을 만드는 존재다. 운명을 오로지 자신의 의지로 결정한다. 능동적 주체로서 상황을 직시하며 임무에 집중한 이순신은, 왕에게 휘둘리지 않고 왜의 계략에 빠지지 않았다. 결국, 명령 불복으로 고문과 투옥 그리고 백의종군의 치욕을 당한다. 이순신 대신 부임한 원균도 무리한 작전임을 알았지만, 왕명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출전한다. 결과는 역시 참패였다. 반년 만에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한 이순신의 눈앞은 캄캄했다. 연전연승의 위용을 자랑했던 수군은 12척의 배와 120명의 군사가 전부인 처참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최후의 노량해전까지 총 4차례의 전투를 모두 승리로 이끈다. 투철한 소명의식은 통탄스러운 배신감으로부터 그를 일으켜 세웠다. 누가 그 같은 뼈저린 배신을 당하고도 돌아와 막중한 소임을 다할 수 있겠는가. 이순신은 신념, 용맹, 신중, 철저함으로 전쟁에 임했다. 이는 나라를 지키는 군인으로서의 소명의식과 무엇에도 휩쓸리지 않는 능동적 주체로서의 결단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순신 백전백승의 이유다.


<종속적 주체의 멸망>

강화 협상이 결렬되자 조정은 또다시 명나라에 출병을 간청한다. 하지만 국경으로부터 전선을 멀리하려는 목표를 달성했기에 더 이상 싸우려 하지 않는다. 새로 부임한 명나라 경락 고양겸은 조선에 공문을 보낸다. "황제께서 크게 노하여 군대를 일으켜... 왜군이 마침내 한양에서 달아났고... 2000여 리의 영토를 되찾게 되었다이때 소비된 명나라 금고의 돈은 헤아릴 수 없으며죽은 군사와 말도 적지 않다우리 조정이 속국을 대우한 은의가 이 정도이니황제의 망극한 은혜 또한 이미 과분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 너희 나라는 식량이 다 떨어져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고 있는데 또다시 무엇을 믿고 군대를 요청하는가?... 또 왜의 책봉과 봉공을 거절한다면 왜놈은 반드시 너희 나라에 화를 입히고 너희 나라는 망하게 될 것이다어째서 스스로를 위한 계책을 속히 세우지 않는가?" 참으로 굴욕적 비판이다. 조선은 왜의 침략 야욕과 자국의 위협을 사전에 방비하려는 명의 셈법으로 나라 운명이 좌우되고 있었다. 우리 운명을 결정짓는 강화 협상에 당사자는 빠졌다. 타국에 운명을 맡긴 채, 왜에게는 치욕과 명에게는 굴욕을 당하는 꼴이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승리는 이순신과 의병이 없으면 불가능했다. 이는 조정의 현명한 지휘로 잘 방비했다면, 우리 힘으로 얼마든지 왜적을 물리칠 수 있는 전쟁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선조는 명을 찬탄하기 바빴다. 도읍과 백성을 버리고 도망친 과오를 덮고 자신을 높이기 위해선, 애타게 구원을 요청한 명나라의 공을 높여야 했다. 승리의 공을 논하는 논공행상(論功行賞)에서는 허망한 결론이 내려졌다. 피란길에 왕조를 호위한 호성공신이, 목숨 바쳐 싸운 선무공신 이순신, 권율 장군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분연히 일어나 왜적을 물리친 의병의 공은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선조는 이순신과 의병의 승전을 보며 곤궁해진 자신과 상대적 비교에 빠진다. 이는 왜란 후 철저한 반성은커녕, 왕의 책임회피와 오히려 자신의 공을 높이려는 과오를 저지르게 한다. 정치적 목적으로 내부의 공을 외면한 채, 종속 대상에게 공을 돌림으로써 더 깊은 종속에 빠진 것이다. 이것이 왜란 후 또다시 조선을 파국으로 몰고 간 재조지은(再造之恩)의 부채의식이다.

  철저한 반성을 외면한 존재는 과오를 되풀이한다. 재조지은의 부채의식에 갇힌 조선은 인조반정 후 친명배금(親明排金)을 일관하다 또다시 청나라에 치욕을 당한다. 왜란 후 불과 40여 년 만의 일이었다. 종속적 주체는 정세 변화에 유연히 대처하지 못한다. 종속 대상만을 추종하여 경직됐기 때문이다. 청나라에 굴복한 조선은 명에서 청으로 종속을 강제로 옮긴다. 비독립적으로 형성된 풍요와 번영은 양날의 검이다. 자신보다 강한 대상에 기대어 손쉽게 안정을 얻지만, 시련이 닥치면 운명을 의지대로 통제할 수 없는 비극을 맞는다. 종속적 주체는 종속 대상과 필연적으로 운명의 궤를 같이한다. 청나라에 복속한 조선은 200년 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전하자, 그 또한 경술국치(國權被奪)로 멸망한다.


<반성 이전의 반성>

왜란 후 왕이 허망한 논공행상을 벌이는 반면, 류성룡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란을 복기한다. 그는 나라의 재상으로 군무(軍務)를 담당했다. 왜란을 사전에 감지하여 대책을 세우고 이순신을 발탁하여 침략을 막는데 기여한다. 또한, 온갖 굴욕을 감내하며 명군을 전장에 참여토록 힘썼다. 조정의 그 누구보다 능동적으로 전란에서 나라를 구하고자 투신했다. 과오를 뼈저리게 겪은 능동적 주체에게, 철저한 반성은 과거의 재현을 막기 위한 당연한 수순이다. 그리하여 류성룡은 "지난 일을 경계하여 앞으로 후환이 생기지 않도록 대비하기 위해" 징비록을 저술하였다. 선조와 류성룡은 같은 일을 겪고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과오를 논한 것이다. 과연 무엇이 이 둘의 차이를 만들었을까.

  종속적 주체는 자신을 철저히 해부할 수 없다. 철저한 반성 없이도 종속 대상이 건재하는 한 그럭저럭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종속 대상을 향한 의존은 존재의 근간에 닿는 반성을 막아선다. 결국, 과오를 저지른 자신을 뛰어넘지 못하고 왜곡된 반성으로 또다시 과오의 굴레에 빠진다. 능동적 주체는 과오로부터 자신을 철저히 해부한다. 무엇도 의지하지 않기에 다음이란 없다. 샅샅이 복기하고 극복하려는 발버둥 속에 이전의 자신을 뛰어넘는다. 철저한 반성은 오직 능동적 주체로 존재할 때 가능하다. 만약 어떠한 과오로 철저히 무너지는 시련을 겪는다면, 존재는 반성 이전의 반성까지 자신을 해체해야 한다. 존재 형식을 뒤집는 존재의 근간을 뒤엎는 성찰이 아니면, 그 반성은 피상만을 훑는 자기 위안으로 끝날 것이다. 하여, 우리는 과오로부터 철저한 반성에 앞서 질문해야 한다. 존재의 방향이 어디를 향해 있는가? 능동적 주체로 온전히 나를 향해 있는가? 종속적 주체로 무언가를 향해 있는가? 철저한 반성은 종속에 갇힌 존재에겐 허락되지 않는, 뼈를 깎는 고통이자 존재를 변환시키는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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