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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고래 Nov 20. 2021

창의적 인간으로서의 안정과 불안정





안정과 불안정은 존재가 처한 상황에 대해 스스로가 느끼는 삶의 양태이다. 안정은 자신의 삶에서 내, 외부적 또는 물질적, 정신적 요소가 균형을 이루며 스스로가 그러한 상황을 만족하는 상태이다. 따라서 안정은 만족감, 편안함, 느긋함으로 삶을 인도한다. 그리고 이러한 조화와 균형의 상태에 안온함을 느끼는 인간은, 안정을 영속하려는 속성을 가진다. 불안정은 이와는 반대의 속성을 가진다. 불안정은 삶의 요소가 불균형을 이루는 상태를 스스로가 불완전하다고 느끼거나, 그러한 상황을 불만족하는 상태이다. 따라서 불안정은 불안, 결핍, 갈등, 방황과 같은 거칠고, 어리숙하며, 견디기 어려운 힘에 부치는 상황으로 삶을 인도한다. 이러한 불균형의 상태에 불안함을 느끼는 인간은, 불안정의 상태를 벗어나 안정이라는 안온함에 도달하려는 속성을 가진다.


오늘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요동치는 세계,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안정은 거의 모든 사람이 도달하고자 하는 삶의 목표다. 특히 집안, 학력, 권력, 명예, 조직과 같이 견고하게 잘 짜인 토대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안정은 최대의 과제이다. 자신을 받쳐주는 든든한 토대와의 관계를 안정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조화와 균형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과는 반대로 불안정과 불균형을 양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이 있다. 지식인과 예술가다. 이들의 공통점은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이다. 창의가 곧 존재형식인 사람들이다. 견고하게 잘 짜인 토대는 이들에겐 자신을 속박하는 족쇄이다. 시스템의 권위와 위엄, 기득과 서열은 창조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창조는 곧 도전이다. 창조를 향한 도전은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는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과정이다. 견고하게 구조된 시스템은 도전이 유발하는 균열과 불균형을 허락지 않는다. 창조하는 자는 기존의 질서가 요구하는 관념과 통념을 뛰어넘을 때, 그 가치를 더욱 인정받는다. 그리하여 창조하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불안정에 처할 수밖에 없다.


창조와 창의의 길을 걷는다고 하여 존재가 언제나 불안정에 위치하지는 않는다. 고뇌를 벗어나 안온함에 빠지는 순간, 존재는 어느새 안정을 토대로 창조를 꿈꾼다. 안정은 그만큼 달콤하며, 불안정은 끝이 없는 불안함과 모호함으로 쌓여있다. 하지만 안정과 창조는 결코 양립할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기존의 것에 균열과 불균형을 내지 않고서는 결코 새로움이라는 창의적인 결과물을 생산할 수 없다.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고 고독을 자초해야지 만이, 새로움을 포착하는 가능성을 지닌다. 안정적인 삶에는 자신을 둘러싼 안정적인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이다. 따라서 창조를 향한 거대한 욕망이 없다. 빈약한 창조적 욕망은 창조를 위해 자신을 불안정의 파도에 빠뜨리기보다는, 누구나 인정하는 거대한 기조에 기대어 종속적인 결과물을 생산하게 된다. 이처럼 안정은 기존의 신념과 가치관에 사로잡혀 기존의 것을 철저하게 답습, 구현하려는 이들에게 알맞은 삶의 양태다. 그러나 창조와 창의의 길을 걷는 자에게는 자신의 성장을 멈추게 하는 달콤하지만, 치명적인 유혹이다. 창조의 존재형식을 가진 이가 안정이라는 달콤함에 빠지지 않으며, 불안정의 거친 파도에 자신을 내던지기 위해서는 그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깨어있다면, 창조적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면 항상 한계와 직면할 수밖에 없다. 한계에 직면한 자는 열등과 결핍이라는 불안정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그 불안정을 온갖 치열함으로 극복하여 자신의 정수를 창조해 낸다. 창조하는 인간은 균형과 안정의 상태를 즐기기보다는, 불안과 불균형을 과감하게 맞이해야 한다. 자신을 창조의 용기로 무장하여 끊임없이 불안정을 품어야 한다.


기안84라는 이름의 유명한 웹툰 작가가 있다. 방송에도 자주 나오며 웹툰뿐만 아니라 방송인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사람들은 그의 기행에 폭소하며 어리둥절한다. 그의 기행이란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했을 때 그의 재력, 나이,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단벌로 4계절을 보내고,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를 옮겨 다니며, 밥상도 없이 맨바닥에 음식을 늘어놓고 식사를 한다. 오래된 중고차를 몰며, 소비에는 별 관심이 없다. 작가로서 12년간 히트작을 남기며, 돈은 차고 넘치지만 기안84는 그것을 일부러 누리지 않는다. 안정으로부터 자신의 창조성이 저해될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꿈틀대는 창조적 욕망은 재력과 명성이 절로 가져다주는 안온함을 거부하고, 불균형을 만들어내기 위해 불안정을 자초한다. 무명시절 지하방에서 라면만 먹으며 그림을 그리던 기안84는 그 시절의 야생적인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 친다. 필요하다고 느끼면 50km 맨몸 구보도 서슴지 않는 용기를 발휘한다. 죽었다 깨어날 법한 체력의 소진으로 적체되어 있던 모든 것을 날려버린다. 안정으로 인한 매너리즘을 단숨에 전복하는 그의 기술이다.


창의적 인간으로서 탁월해지기 위해서는 모호한 불안정을 품으며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음은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닌 지금에 갇히는 것이며, 머무르거나 안주함은 곧 퇴보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과에 심취하지 않고, 결과에 거하지 않으며, 창조적 행위로써의 건너가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불안정과 불균형 속에 뛰어들어 경험한 적 없는 미지를 향한 오직 건너가고, 건너가는 것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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