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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고래 Feb 09. 2022

칼세이건, 코스모스에 대한 철학적 단상(9)

칼세이건 [코스모스]





원 궤도와 실제 궤도를 분간하는 일은 우선 측정값이 정확해야 가능했고 비록 자신의 이론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그 측정값을 과감하게 수용하는 용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어디나 조화로운 비율이 장식처럼 박혀 빛나는 이 우주이지만, 그러한 조화의 비율도 경험적 사실에 반드시 부합해야 한다." 케플러는 여기서 원 궤도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영혼에 가해진 충격을 감수해야만 했다. 케플러는, 천문학이라는 마구간에서 원형과 나선형을 쓸어 치우자, "손수레 한가득 말똥"만 남았다고 했다. 원을 길게 늘인 달걀의 모습을 그는 이렇게 말똥에 비유했던 것이다.
결국 케플러는 원에 대한 동경이 하나의 환상이었음을 깨달았다. 지구도 코페르니쿠스가 말한 대로 과연 하나의 행성이었다. 그리고 케플러가 보기에 지구는, 전쟁, 질병, 굶주림과 온갖 불행으로 망가진, 확실히 완벽과는 아주 먼 존재였다. 이런 지구를 완벽하다고 믿었다면 나머지 행성들도 완벽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다른 행성들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케플러는 고대 이래 행성이 지구처럼 불완전한 것들로 구성된 물체라고 이야기한 몇 안 되는 인물들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만일 행성이 '불완전'하다면, 그 궤도 역시 불완전하지 않겠는가? 케플러는 달걀 모양 곡선을 여럿 시험해 보았다. 열심히 계산해 내려가다 산술적 실수를 하기도 하고 몇 달 뒤에 자포자기 심정으로 타원의 공식을 이용하여 분석을 다시 시도했다.... 결과는 튀코 브라헤의 관측값과 완전히 일치했다. "자연의 진리가, 나의 거부로 쫓겨났었지만, 인정을 받고자 겉모습을 바꾸고 슬그머니 뒷문으로 들어왔으니..... 아, 나야말로 참으로 멍청이였구나!" < 칼세이건, 「코스모스」, 사이언스북스, 138~139쪽 >


믿음이란 어떠한 대상을 진실로 여기며 그것에 대해 의심과 예외가 없는 절대적 상태이다. 인간은 태생적 환경과 더불어 사회, 정치, 문화, 종교 등. 삶의 여러 요소 속에서 믿음을 싹 틔운다. 1571년 유럽에서 태어나 신학자의 길을 걸었던 케플러 또한 그 시대의 강력한 중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였다. 시대적 배경과 신앙은, 신이 만들어낸 완벽한 조화의 우주를 케플러에게 믿음으로 심어놓았다. 믿음은 생각이 배제된 맹목의 상태다. 완벽한 조화의 원 궤도는 어디서도 증명되지 못한 신이라는 환상에서 비롯된 믿음이었다. 인간이 진실로 여기는 믿음은 이처럼 진실이 아닐 수도 있으며, 일시적 진실일 수도 있으며, 상대적 진실일 수도 있다. 그리고 믿음을 내재한 존재는 삶에서 때때로 자신의 믿음과 배치되는 사실을 마주한다. 자신의 믿음을 부정하는 사실을 마주한 존재는 대부분 자신의 믿음을 지켜내기 위해 사실을 왜곡한다. 사실을 무시하거나, 부정하거나, 조작하는 것이다. 더하여 믿음이 시험당하는 시련과 고난을 통해 믿음을 더욱 공고히 한다. 반면 믿음을 부정하는 사실을 마주하여 자신의 믿음에 균열을 내고, 의심하고, 벗어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믿음의 부정은 절대적이었던 자신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존재의 파괴이자 존재의 혁명이다. 믿음 너머의 또 다른 세계는 두려움이라는 거대한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그렇다면 믿음 너머의 또 다른 세계로 건너가기 위해 두려움의 장벽을 무너뜨리게 하는 건 무엇인가? 용기와 각성이다. 그렇다면 용기와 각성을 촉발하는 건 무엇인가? 믿음이라는 무조건적인 맹목을 탄핵하는 사실에 기반한 깊은 생각이다. 케플러는 믿음과 생각의 갈림길에서 생각을 선택했다. 생각을 통해 믿음을 내려놓으니 신이 빚어놓은 우주가 아닌 우주 그 자체를 마주하게 되었다. 케플러의 생각으로 인해 문명의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이다. 단지 우리는 역사적 기록으로 쉽게 케플러의 각성을 보았지만, 자신의 삶과 세계를 통째로 부정해야 했던 과정은 참으로 어렵고 어려웠으리라. 그 어려움을 뚫을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생각, 용기, 각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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