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달사진일기-2024
아빠! 몇 시에 들어와?
9시 반쯤?
조금 피곤한데 지후가 운동을 같이 하잰다. 아빠랑 나가면 늦게까지 밖에 나가도 좋다고, 엄마가 그런 조건으로 허락했덴다. 9시까지는 혼자서도 가능, 9시 넘으면 아빠랑 같이 걷는 거만 가능. 룰이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9시 넘으면 나는 이 녀석이 원하는 대로 나가야 한다. 아… 오늘은 좀 피곤한데.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알았어! 얼렁 들어가마!
그렇게 같이 나가서 걷는 줄 알고 부리나케 집에 돌아왔는데, 결국 혼자 나왔다. 숙제가 많덴다. 새벽까지 해야 한덴다. 아니, 그 숙제는 아까는 없었간? 왜, 부리나케 들어왔더니 갑자기 숙제를 한다라고? 궁시렁 대고 싶었으나 말을 아꼈다. 녀석의 눈을 보니, 녀석도 미안해하더라.
그래. 알았다. 오늘은 그냥 아빠 혼자
걷다 올게
결국 쉬지도 못하고 밤 10시가 넘어서야 걸으러 나왔다. 주섬주섬 얇은 반바지를 입고 반팔을 걸치고. 그래도 한 1km를 걷고 났더니, 워밍업이 되었다. 하늘은 밝고 사람들도 많은 밤이다.
한때는 가족끼리 운동이든 뭐든 같이 하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다. 특히 부부끼리 같이 할 수 있는 운동에 대한 로망이 있어 부지런히 찾아보고 제안했지만, 아내는 결국 2보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그만두기 일쑤였다. 내 생에 이번 생은 글렀다고 생각하고, 이제는 혼자 운동하는 거에 익숙해졌다. 그런데 어제 딸아이와 한번 걸었는데 너무 잘 걷는 거다. 엄마딸인데, 엄마딸이 아닌 거다. 오호! 나는 뒤에서 열심히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서 뒤따라 걸었다. 앞서 있는 딸을 일부러 따라잡아볼까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빨리, 그것도 잘 걷는 거다.
와… 이거 좋은데? 앞으로 지후하고 자주
운동을 나올 수도 있겠구나!
라고, 분명 어제까지 생각을 했었고. 들어와서도 아내에게 딸이 일부러 들으라는 듯 크게 칭찬을 해 주었다. 이제 매일같이 운동하자면 어쩌지? 하는 그런 걱정마저도 행복했었다.
에휴… 하루를 못 가다니
오늘 내내 걸으면서 괜히 씁쓸했다. 이 녀석, 잠깐의 기쁨으로 아빠 애간장을 녹이는구나. 어제처럼 못 쫓아가도 좋으니 뒤에서 지후 발걸음을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벌써 전환점을 찍고 6km를 걸어 집에 돌아왔다.
배가 고팠다. 실컷 이 밤에 운동한다고 6km를 걷고 와서는 어쩜 10분도 안 지났는데 라면이냐? 타협하지 않았다. 배도 고팠지만, 난 상처 입은 아빠란다. 지금 이 순간 라면만이 구원인 것을!
- 끝
<Mapogundal’s Ph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