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다섯 번째 고자질
오늘은 대학원이 수업을 들으러 갔어. 그냥 젊은 기운 좀 받아보려고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어봤어. 방학 중이지만 대학생들이 열심히 살고 있더라. 과잠바를 입고 돌아다니고 동아리 활동도 하고 공부하고 큰소리로 웃기도 하고 나도 늙었는지 그런 모습이 이뻐 보이더라.
동료 선생님들과 밥을 먹고 나오는 데 한 커플이 보였어. 꽁냥 거리는 게 보기 좋더라고. 엄마, 엄마 아들도 이제 아재가 되어버렸나 봐. 그렇게 그들을 지나쳐 강의실로 가려는 데 뒤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
“선생님”
이건 직업병이야. 어딜 가든 선생님이라는 단어에 움찔하곤 해. 대학교에서 나를 부를 리가 없을 것 같아 그냥 가려는 데 누군가가 달려오더니 눈앞에 짠하고 나타났어.
“선생님!”
헐, 10년 전에 가르쳤던 아이였어. 갈색으로 염색한 긴 머리에 원피스를 입은 아이는 이제는 아가씨가 다 되었어 남자 친구와 팔짱을 낀 채 나를 소개해주더라고
“오빠 내가 최고 좋아하는 6학년 때 선생님이셔”
이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로또를 맞으면 이런 기분일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옛 제자를 만났고 그 이가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해주고 심지어 최고 좋아한다고 고백까지 해주니 말이야.
나도 참 신기한 게 매년 20명 넘은 아이들을 만나고 헤어지는 데 아이의 이름이 떠오르더라. 교실에서 장난친 모습까지 모두 다.
“너 아직도 고슴도치 키워?”
라는 말에 눈이 휘동 그래 지면서 그런 거 까지 기억하냐고 소리를 지르며 신나 했어. 예전 같았으면 까분다고 머리라도 한번 쓰다듬어 줄텐데 성인이 다되어버린 아이는 참 부담스럽더라고. 나 너무 행복했어. 나 선생님 하길 잘한 거 같아. 하루 종일 기분이 들떴어. 다른 선생님들 앞에서도 엄청 기가 살았고 다들 부러워했어. 선생님끼리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거든.
엄마. 근데 제자들이 다 그런 건 아니야. 지하철에서 우연히 눈을 마주친 졸업생이 조용히 옆칸으로 자리를 옮겨간 적이 있었어. 횡단보도에서 마주친 아이가 모른 척 스쳐간 적도 있고. 내가 미웠다고 기억하는 아이들도 있어.
알아. 모든 아이들이 다 나를 좋게 기억해줄 수는 없겠지. 나도 나 초등학교 때 선생님들이 다 좋은 기억은 아니니까. 선생님이 되니까 잘 해준 아이가 기억이 나는 게 아니고 잘 못해준 아이들이 더 기억에 남아. 가끔 후회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어. 나도 어렸으니까라고 넘기기엔 아이들은 더 어렸을 텐데 말이지.
좋은 선생님은 역시 욕심인가 봐.
유난히 기분 좋은 날 막상 자려고 눈을 감으니
좋았던 추억 위로 미처 마음 알아주지 못했던 아이들이 하나씩 떠올라 가슴을 무겁게 짓눌러.
맥주 한 캔 먹고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