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엄마가 있다 - 폭탄주

열 네 번째 고자질

by 낭만똘짱

엄마. 오늘은 제자들이랑 조금 취했어. 물론 성인이 된 녀석들이야. 엄마는 이게 어떤 느낌인지 모르지. 간단해 지갑이 먼지까지 탈탈 털리는 느낌이야. 대신 마음의 짐은 툴툴 털어버려 지고. 그러면서도 마음은 탁탁 채워지는 기분이지.


전에 말했던 선물세트 그놈이 군대를 간다고 동창끼리 모였나 봐. 내가 보고 싶다고 전화가 왔더라고. 제자 중에 처음으로 군대를 보내는 거라 거기 딱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고 냉큼 달려갔어. 대학생 티가 나더라고. 무한 소주집? 그런 게 다 있더라. 입장료 내면 술이랑 안주가 무한 리필이래. 멋지지.


난 아이들이랑 술 먹을 생각은 아니었어. 술 취해서 그때 왜 그러셨어요 하면서 본심이 나와버리면 어떻게 해. 원래 도둑이 제 발 저린 법이지. 남자 놈들 열명 정도가 있었는 데 움찔했어. 우유에 코코아 가루 몰래 타 먹다 혼나던 아이들이 맥주에 소주를 타고 있다니. 덩치는 산만해져서 안기는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어색했어.


군대 가는 놈 술 한잔 따라주고 가려고 앉았는 데 알바가 왔어. 앉으시려면 돈 내셔야 한다고. 술 한잔만 따라주고 갈 거라니까 그래도 안된데. 뭐 추한 모습 안 보이려고 알겠다고 지갑을 꺼내려는 데 앉아 있던 애들이 우르르 일어났어. 우리 선생님이라고. 뭐지 이 따뜻함은. 이젠 내가 보호를 받는 느낌이었어.


이 놈들 사고 칠까 봐 자초지종을 설명했어. 제자 놈 군대 가서 술 한잔 따라주러 왔다고 괜찮으니 술값 나겠다니까 사장님이 오시더니 편하게 있다가시라고 해주시더라. 그래도 그건 아닌 거 같아서 얼른 술 한잔 따라줬어. 술값을 계산해주려니 선불로 다 계산했더라고. 아쉽기도 하고 참 다행이기도 하고.


아무튼 다들 너 위로해주러 모인 친구들이니 해장국 먹여서 보내라고 오만 원짜리 하나 쥐어줬어. 기어코 사양하는 거 맴매한다니까 알겠다며 받더라. 차까지 모셔다 드린다고 나온다는 거 얼굴도 좀 더 볼까 싶어 같이 좀 걸었어.


삐쩍 말라서 힘이라도 쓰겠나 싶었는 데 어느덧 나랑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어. 함께 걷는 것만 해도 든든하게 느껴졌어. 엄마도 꼬마였던 내가 엄마 키를 훌쩍 넘겼을 때 이런 마음이었을까 싶어. 좋은 분위기 망치기 싫어 휴가 나와서 보자는 인사와 함께 해어졌어.


주머니 속에 휴대폰을 꺼내려는 데 아이고. 반에 반 두 번 접힌 오만 원짜리 지폐가 어느새 들어있네. 이 녀석은 이런 거 어디서 배운 걸까. 그렇게 오늘은 이 녀석 덕분에 돈 한 푼 안 쓰고 술 한잔 안 먹고 아주 기분 좋게 취해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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