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엄마가 있다 - 리어카

열 세 번째 고자질

by 낭만똘짱

엄마. 엄마는 공순이. 공장에서 유리를 녹여서 내 뒷바라지를 해줬어. 엄마가 무슨 일하냐고 물으면 유리 기술자라고 해. 유리공예냐고 물어보면 공장에서 일한다고 해. 뭐 창피하거나 그러진 않아. 엄마가 그곳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나는 아니까. 엄마가 돈을 더 많이 벌거나 더 안전한 곳에서 일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지만 어디까지나 자식 된 욕심이겠지.


여름 볕이 따가웠던 날 우리 반 꼬맹이 한 놈을 호되게 혼냈어. 그냥 조곤조곤 타일렀어야 하나 후회가 밀려오기도 해. 그래 봐야 13살 꼬마일 뿐인데 말이야. 아이는 아빠와 할머니랑 살아. 엄마가 편찮으셔서 돌아가셨데. 아빠와 몇 번 전화통화를 했었는 데 참 좋으신 분 같았어. 바빠서 아이를 많이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이 가득하셨지.


내가 보기에는 경제적으로 힘들진 않았어. 부자가 함께할 시간이 부족했지. 그래서 내가 아이와 이야기도 더 많이 하고 축구도 더 자주 하고 그랬어. 공부 가르치는 것만이 내 일이 아니니까. 그러다 우연히 할머니의 이야기를 꺼냈는 데 아이가 씩씩 거리기 시작했어. 내가 말을 잘 못 꺼냈나 싶을 정도로.


요즘 할머니는 동내에서 파지를 주으신대. 자기는 그게 너무 창피하다고 할머니가 싫다고 화를 냈어. 쪽팔린다고. 순간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 데 나도 화를 냈어. 할머니께서는 자식이 힘들까 봐 한 푼이라도 보태고 싶으셨을 거야. 손자 말고 본인 뱃속으로 키운 13살 아들을 홀로 키우는 아들 말이야.


근데 왜 내가 아이에게 화를 냈을까. 할머니의 그 내리사랑을 아이가 이해해서 아빠에게 더 효도하고 할머니를 더 보살펴주기를 바랐던 걸까. 할머니의 리어카를 뒤에서 밀어주는 명작동화의 한 장면을 기대했던 걸까. 사실 가장 힘든 건 아이일 수도 있는 데 말이야. 멍청한 짓이었어.


아이는 한바탕 울고 나더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 보였어. 내가 화를 내서 운 건지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모르겠어. 너희 할머니는 정말 대단하신 분이라며 퇴근 후 아이랑 손잡고 죽집에 갔어. 가서 제일 비싼 죽을 포장 해서 할머니 드리라고 아이 손에 쥐어 줬어. 죽을 들고 가면서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날 저녁 할머니께 고맙다며 연락이 왔어.


그 일이 잊힐 만큼 수 해가 지난 어느 추석날, 핸드폰 선물 쿠폰이 하나 왔어. 19800원짜리 추석 선물세트였어. 졸업 후 처음 연락된 아이는 대학에 가서 짬짬히 한 아르바이트비로 선생님 선물 꼭 해드리고 싶었데. 제자한테 받은 첫 명절 선물이었어. 이 녀석이 그거 고른다고 얼마나 고민을 했을까. 너무 비싸서 부담스럽지도 않고 헐해보이지 않으면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금액이란 얼마일까. 그냥 문자 한 통이면 되는 데.


난 단칼에 선물 거절을 눌렀어. 그 뒤에 0 네 개 더 붙인 거로 사 오라고. 그러면 이천인가? 이억인가? 모르겠다. 코 묻은 돈은 애인이랑 데이트하라고 했더니 나중에 꼭 찾아뵙겠다더라. 할머니도 건강히 잘 지내신대.


내가 봐도 훈훈하게 잘 컸어. 공부를 엄청 잘한 건 아니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고 바르게 말이야. 무엇이 아이를 이렇게 성장시켰을까. 바쁘고 힘들지만 아이를 포기하지 않았던 아빠의 사랑이었을까. 내리사랑을 아들과 손주를 품었던 할머니의 사랑이었을까. 어찌 되었건 내 죽 한 그릇 때문은 아닐 거야. 그냥 성품 자체가 그럴만한 아이 었던 걸로 기억할래.


가끔 생각을 해봐. 그 당시 아이는 할머니의 모습을 왜 창피하게 여겼을까. 누가 그렇게 알려줬을까. 창피한 일은 어떤 기준으로 정해지는 걸까. 요즘은 학기초에 부모 직업 조사도 잘 안 해. 사실 굳이 내가 알 필요도 없는 일이야. 그래도 아이들에게는 꼭 이야기를 해줘. 세상에 창피한 일은 없다고. 근데 가장 고귀한 일은 있다고. 바로 월급도 휴가도 정년도 없는 부모라는 일이라고.


엄마. 기꺼이 날 위한 근로자가 되어줘서 고마워.

퇴직금 넉넉히 챙겨드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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