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두 번째 고자질
전에 내가 많이 속상해하던 여자아이 기억나? 학부모가 나 귀찮다고 했다던 아이. 그 아이가 2년이 지나 6학년이 되었고 다시 나와 만나게 되었어. 우리 반은 아니고 옆반. 아이는 많이 변해있었어.
요즘에는 옷도 깨끗이 입고 다니고 살은 빠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웃음은 되찾은 거 같아라는 소식을 전하면 얼마나 좋을까. 2년이 지나 만난 아이는 마음의 문이 닫혀있었어. 2년 전보다 덩치는 더 커졌고 피부는 더 안 좋아졌어. 목과 팔은 검게 변해있었고 냉장고 바지와 파란 후드 집업은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있었어.
아이가 살이 쩠다고 외모를 평가하는 건 아니야. 선생님이 되고 아이들을 많이 만나다 보면 건강하게 살찐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보여. 통통해도 에너지가 느껴지는 아이들도 있거든. 겉모습보다 더 중요한 건 마음이었어. 사춘기가 되어서 그런가 더 예민하고 공격적으로 변했어. 다른 아이들과도 놀지 않으려 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었어.
잦은 지각은 결국 무단결석까지 이어졌어. 늦잠을 잤다고는 하는 데 사실 학교가 오기 싫었데. 한 번씩 오빠랑 싸웠다고 입술이 터져서 와. 맞아. 얘한테 한두 살 위 오빠가 있었어. 이 아이가 자기 동생인 걸을 너무나도 싫어했었어. 사람들은 그러는 동안 담임선생님은 뭐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변명처럼 느껴지겠지만 한 해동안 담임교사가 눈에 띄는 변화를 줄 수 있는 아이가 몇이나 될까. 반대로 나도 학창 시절 내 삶을 변화시켜준 선생님을 떠올려보면 한두 분 정도가 전부야. 그렇다고 나머지 선생님들이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말이야.
그나마 여자 선생님을 만나 조금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4학년 때도 벅찬 아이였는데 6학년 때 만나면 남자 선생님인 내가 더 조심스러웠을 테니까. 옆반 선생님도 아이를 안아주고자 아등바등하셨어. 물론 작년에도 그러셨겠지. 그럼에도 아이는 지쳐버린 듯했어. 집에서도 이쁨 받지 못하고 친한 친구들도 없고 공부는 그럭저럭 하지만 하고 싶은 것은 또 없고 다른 친구들처럼 이쁘게 꾸미고 싶지만 그러지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고 뭘 해도 안될 것만 같은 기분.
그런 걸 우리는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해. 나쁜 경험이 누적되면서 자신감을 잃어가게 되는 거지. 자신감을 잃어갈수록 좋은 경험을 하긴 또 어렵고. 이게 악순환이 되는 거야. 언젠가는 누군가는 그 고리를 끊어줘야 할 텐데 쉽지가 않아.
알아 말하면서 나도 변명 같다고 느껴져. 맞아. 내 잘못인 거 같아. 엄마 며느리가 그러더라. 그 아이 때문에 힘들어하니까 “집에서도 미움받고 학교와서도 친구들한테 미움받는데 너까지 미워하면 안 되잖아” 맞아. 내가 변화시킬 수 없었더래도 끝까지 노력했었어야 했었나 봐.
조금이라도 다 어렸을 때 상처가 덜 깊었을 때 약이라도 좀 더 발라줄걸이란 후회가 돼. 기름지고 냄새나는 머리였어도 한번 더 쓰다듬어주고 말도 안 되는 괴변이었더래도 눈 맞춰주고 한번 더 웃어줬어야 해. 다른 아이들 핑계 대지 말고 선생님이니까 열 손가락 중에 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지만 더 아픈 손가락이 있다는 걸 알았어야 해.
모든 아이들이 나를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할 수 없다. 모든 아이들을 내 손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 내가 노력해도 안될 수도 있다. 그게 내 탓만은 아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도 모든 게 내 잘못인 것 같은 생각이 떠나질 않아.
엄마 나는 그렇게 매년 아픈 손가락이 늘어나.
참 얼마 전 졸업한 그 아이의 소식을 들었어. 다행히 잘 지내고 있데. 중학교 가서 처음에는 많이 힘들어했는 데 전문치료도 받고 감사하게도 친구들과 서로 마음을 열어서 잘 챙겨주고 종종 어울리면서 지낸데.
그리고 교사들 간의 회의가 있어 그 아이의 중학교에 갔을 때 복도에서 “선생님 여기서 뭐해요?”하며 누군가 먼저 다가왔어. 맞아 그 아이였어. 단발이 아니고 보이 컷인가? 잘 모르겠다. 아무튼 머리를 나처럼 짧게 깎은 아이는 잘 닦지 않아 뿌연 동그란 안경알 뒤로 분명 웃고 있었어. 아직 그 둔한 모습은 여전하지만 그런 건 이제 중요하지 않아. 종종 어떻게 지내나 걱정되고 궁금하고 마음 앓이를 했었는 데 너무 감사했어. 시간이 지나서 그런 건지 아이가 철이 든 건지, 좋은 친구를 만난 건지, 부모님과 사이가 좋아진 건지, 나보다 더 좋은 선생님을 만난 건지 무엇이 아이의 웃음을 되찾아 준건지 모르겠지만 그게 뭣이 중허겠어. 참 다행이야 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