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eaming Life

프롤로그

by Bono




"언니, 우리 여행 가자. 스페인으로."



1학기 기말고사 대비를 위해 밤새 만든 문제지를 복사하고 있던 내 뒤에서 할 말이 있는 듯 미적거리던 동생이 툭, 내놓는 한마디란! 동생이 불쑥 던진 말에 난 깜짝 놀라 뒤로 돌았다. 내 동체 스핀 속도가 이때 적어도 초속 30m/s는 되었을지 모른다. 자신을 꼭 닮은 껌딱지 은바오를 두고 바다 건너, 산 건너 건너 건너 스페인에 가자니 저 녀석이 제정신인가 싶어 오른쪽 눈썹만 치켜올리고 말없이 바라보았다.



"왜! 집 나간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오빠가 갔다 오래. 은바오 책임지고 잘 보고 있을 테니까 안식년 주겠대."


"네가 뭘 한 게 있다고 안식년이야? 보내주려면 제부부터 보내줘야지!"


"내가 뭘, 오빠가 가라고 해서 가자는 건데!"


"손미나 씨, <스페인 너는 자유다> 이거 읽고 너랑 나랑 키 크고 얼굴 하얀 이베리아 반도의 남정네들을 꿈꾸던 날들이 있었지. 설마, 그 로망이 지금 발현되는 거? 신고한다. 고여사한테!"


둘이 같이 읽으며 한때 스페인 여행을 꿈꾸게 만들었던 책과 스티커를 붙여두었던 지도를 떠올렸는지 동생이 피식 웃는다.


"내 눈에 송중기보다 더 잘생긴 최집사를 두고 누구를 꿈꾸겠어? 숨 좀 쉬고 싶어서 그래. 그냥 나도 숨구멍이 좀 있어야 하지 않겠어?"


동생이 옆에 있던 지우개를 장난스레 내게 던진다. 한 손으로 잽싸게 낚아챈 내가 다시 되돌려주려다 저 얼굴 뒤로 보이는 팔자로 처진 눈썹의 제부와 엄마 밖에 모르는 푸바오 아닌 은바오의 모습에 말없이 손을 내렸다. 바오가족들.


기미 낀 얼굴, 푸석해진 피부. 머리를 묶는 것도 싫어하는 조카 은바오 때문에 산발하고 있는 동생의 머리카락까지. 싱그럽던 녀석이 한없이 낯설어진 모습으로 앉아있다. 언제부터였을까? 동생의 이런 일상들이 내 눈에 보이지 않기 시작했던 시간이.













사랑하는 나의 조카가 남들과 다른 주파수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지구별로 잘못 착륙한 천사라는 걸 알게 된 몇 년 전. 울먹거리는 동생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일시적인 증상이길 바랐다. 아니 대한민국의 모든 소아과 의사 선생님들이 한 분야에 특별히 무지해서 벌어진 오진이라 믿고 싶었던 검사결과를 듣던 날이 떠오른다.


앞으로 동생과 제부가 지고 갈 삶의 무게가 가늠이 되지 않아 뜬 눈으로 밤을 새웠더랬지. 그리고 찾아보았던 장애인 가족들의 삶은 부끄럽지만 내 삶에서 한 번도 고려해 보지 않았던 봉사활동 속에서만 만나던 삶의 조각들이라 그들의 현실이 이제 우리 가족의 현실이 된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아 내내 한숨만 쉬던 날이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고민도 곧 삶의 일부가 되어 무덤덤해져 가는 사이 조카가 무럭무럭 자라 가는 동안 동생은 이렇게 변해가고 있었던가 보다. 물어지기 직전의 번데기 껍질처럼 까칠하게 말라버린 모습이 온전히 내 눈에 담긴다.


절대적으로 엄마의 도움이 필요한 조카로 인해 잠시도 쉬지 못하고 잠도 잘 못 자는 동생을 위해 제부가 준 선물이었다. 동생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실현되게 만들어주는 호박요정! 동생은 우리나라를 몽골의 침략 때부터 시작해 여러 번 구해낸 숨은 영웅이었는지도 모른다. 삼별초 혹은 적어도 천리장성 축조 때 돌을 나르다 그 돌로 오랑캐의 이마를 깬...( 상상이 끝 간 데 없어지니 이만 생각을 닫자.)


어떻게 이렇게 배려심 많은 남편을 만났는지 지켜볼수록 정말 동생의 전생이 궁금해진다. 전생을 믿지 않는다면 저 모습도 매일 전지현보다 이쁘다고 외치는 제부가 귀신이 씌었다고 밖에 할 말이 없기에... 음...


"좋아. 누구 명이라고? 진행해!"


이렇게 태양이 덜컥, 하지의 궤도에 걸리던 어느 초여름. 우리들의 여행이 결정되었다.














- 김동률 : 출발


https://youtu.be/PBWuX-b38XU?si=tOShR58Eumct3lP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