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설렘으로 뛰던 심장이 불안으로 뛰기 시작했다.
소나기였다. 거짓말처럼 비가 뚝 그쳤다. 비 구경만 하다가 돌아갈 줄 알았는데, 비가 한바탕 쏟아지고 난 자리에 해가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비가 온 덕분일까. 바다색이 더욱 짙어져 있었다. 초록빛 파도가 시원하게 부서졌다. 방금 전까지 우울했던 마음이, 우산 없이 이 바다를 걸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금세 벅차올랐다.
‘이제 코스타 노바를 제대로 즐길 수 있겠다!’
행복에 젖어들려는 찰나, 장문의 메시지를 한 통 받았다. 지금 머물고 있는 숙소의 호스트였다.
[너희가 추가로 요청한 수건을 주려고 숙소에 들어왔어. 하지만 들어갔을 때 옷장의 사물함을 부순 걸 확인했어. 이건 용납할 수 없어! 너무 화가 나. 숙소 이용규칙을 준수해 줘. 변상해야 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설렘으로 뛰던 심장이 순식간에 불안으로 뛰기 시작했다.
무엇을 부쉈다는 걸까. 바로 떠오르는 게 없었다.
약 7시간 전, 외출하기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입실해서 숙소 구경을 할 때만 해도 굳게 닫혀있던 사물함이 열려 있기에 찬에게 물었던 기억이 났다.
“찬아, 이거 왜 열려있어?”
“모르겠어. 옷장 문 여니까 열리던데?”
이상한 일이었다. 누가 봐도 비품을 넣어두는 공간이라 잠가놨음을 알고 있어서 굳이 열어볼 이유도 없었다. 필요한 게 있다면 호스트에게 연락하면 될 일이었다. 안 그래도 6박 7일의 일정인데 숙소에는 수건이 인당 2장밖에 비치되어 있지 않아서 연락을 해 둔 상황이었다.
만약 추가 수건을 줄 수 없다고 한다면 아쉽지만 세탁기를 돌려서 사용하면 되니, 우리에게는 비품을 부수면서까지 수건을 찾아야 하는 이유도 없었다. 어쨌든 원래 잠겨있어야 하는 공간이니까. 다시 잘 닫아두고 아베이루로 넘어온 참이었다.
‘어떻게 닫는지 몰라서 한참 씨름하다가 결국 닫는 방법을 알아냈는데, 그 과정에서 뭔가 잘못되었던 걸까? 하지만 억지로 연 적도 없고, 열려 있던 걸 다시 닫아두었을 뿐인데…’
호스트가 예고도 없이 숙소에 들어온 건 나중 문제였다. 덜컥 겁이 났다. 내 집이 아닌 곳은 더 신경 써서 사용하는 편이라, 처음 마주하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짜고짜 화를 내는 호스트의 반응에 속이 상했다.
빨리 돌아가서 확인하고 싶었다. 비도 그치고 이제야 코스타 노바를 제대로 즐길 타이밍이 왔는데. 귓가에 들리는 건 시원한 파도 소리 대신,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뿐이었다. 눈앞에 있는 풍경에도 집중하기 어려웠다.
“괜찮아. 우리가 한 게 아닌 게 분명해. 자동으로 열렸는걸. 만약에, 혹시라도 우리도 모르게 고장 낸 거라면 배상해 주면 돼.”
찬의 담담한 목소리에 요동치던 마음이 조금씩 차분해졌다. 혼자였다면 메시지를 받자마자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포르투로 돌아가는 기차표부터 알아봤을 텐데. 신기하다. 찬의 말 한마디에 불안의 무게가 반으로 줄었다. 마음을 다잡으려 애썼다.
해안선을 따라 걸으며 탁 트인 대서양에 감탄하다가도, 밀려오는 파도처럼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이 불안감에 울렁거렸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확인해 봐야 남은 불안도 털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코스타 노바에 도착한 지 한 시간 반 만에 포르투로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
[방금 숙소에 도착해서 확인해 봤어. 수건을 주러 왔다가 부서진 게 있는 걸 발견해서 많이 속상했을 것 같아. 나였어도 소중한 아파트가 손상됐다면 정말 마음이 안 좋았을 거야. 그런데, 어떤 부분이 고장 난 건지 자세히 알려줄 수 있을까? 편할 때 연락 남겨줘.]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호스트가 말한 부서진 사물함이 우리가 떠올린 사물함과 같은 게 맞는지부터 확인했다. 숙소에 사물함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옷장과 붙어있는 문제의 사물함은 옷장을 열면 자동으로 열렸다. 우리가 고장 낸 게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음 날 오전 11시, 호스트가 찾아왔다. 호스트는 굳은 표정으로 굿모닝 인사를 건네더니, 본인이 화가 난 상황을 설명하기 바빴다. 쏟아지는 호스트의 말에 우리는 침착하게 상황을 재현했다. 서툰 영어로 진땀을 빼느니,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진리를 직접 증명해 보였다.
사물함 오른쪽에 있는 옷장을 열자, 잠겨있어야 할 왼쪽 사물함이 스르르 자동으로 열렸다. 그 광경을 두 눈으로 확인한 호스트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는 당황한 듯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한참을 이야기하더니, 우리에게는 언제부터 이랬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며 휙 떠나버렸다.
영어가 능숙하지 않아도 사과의 표현쯤은 알고 있다. “I’m Sorry(미안해)”, “It was My mistake(내 실수였어)”, “It was a misunderstanding(오해였어)”. 호스트가 우리에게 쏟아낸 수많은 문장 속에 내가 알고 있는 표현과 다른 사과의 표현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가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돌아갔다는 사실이었다.
미리 말도 없이 숙소에 들어온 건 따질 새도 없이, 옷장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덩그러니 남겨진 우리는 서로를 쳐다봤다.
“사과는... 따로 없었던 것 같지?”
“그러게. 그래도 다행이다. 우리가 고장 낸 게 아니어서.”
우리는 마주 보고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비록 코스타 노바의 노을은커녕 제대로 된 바다 구경도 못하고 돌아왔지만, 덕분에 깨달은 게 있었다.
여행은 마냥 행복한 일로만 가득할 수 없다는 것. 날씨가 마음에 안 든다고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없듯, 억울한 오해를 받는 일도 생길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더 기대되는 것. 어쩌면 이런 게 진짜 여행이 아닐까.
완벽하지 않은 순간도 여행이었다. 3년 전 코스타 노바 비치에서의 시간이 완벽해서 기억에 남았다면, 다시 만났을 땐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오래 기억할 수 있겠지.
그래, 그거면 충분하다.
우리가 하고 있는 건 여행이니까.
<나의 사랑, 나의 포르투> 연재는 여기서 마무리됩니다 :)
오늘 내용이 전체 이야기의 딱 절반 지점이라,
나머지 반은 책을 구매해 주시는 분들께 선물로 남겨드리고 싶어요.
새로운 내용을 보는 설렘을 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지금까지 따뜻한 시선과 마음으로 함께 여행하듯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준비 기간을 조금 갖고, 정기 연재는 새로운 내용으로 찾아올게요.
국내 여행 이야기가 지금으로서는 가장 유력합니다!
다음 이야기에서 또 반갑게 만나요!
이후 이야기는 <나의 사랑, 나의 포르투> 책을 통해 지켜봐 주세요!
본 펀딩은 3월 18일부터고, 지금은 공개 예정 펀딩 리스트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
기다려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소식 전합니다. 펀딩 구경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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