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아베이루

오늘은 아베이루 날씨가 조금 더 맑아 보이니까!

by 지안

Aveiro


행복이 예고 없이 찾아왔던 곳, 코스타 노바 비치.

바라보기만 해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오르던 곳.

포르투 여행을 다시 계획했을 때, 아베이루를 지나 코스타 노바에 가는 건 당연한 일정이었다.

행복이라는 감정의 실체를 처음 확인한 곳에, 사랑을 알게 해 준 사람과 함께 간다니.

설레는 마음을 안고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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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포르투는 도통 파란 하늘을 보여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흐린 날의 낭만도 좋지만, 인간에게는 광합성이 필요한 법.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일기예보를 확인했다. 포르투가 파란 하늘을 보여주지 않으니, 포르투보다 날씨가 더 좋은 곳에 찾아갈 요량이었다. 근교 도시 날씨까지 꼼꼼히 살핀 후, 그날의 목적지를 정했다.


“오늘은 아베이루 날씨가 조금 더 맑아 보이니까, 여기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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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구름 뒤에 숨은 해를 찾아 떠나기로 했다. 푸른색 아줄레주로 둘러싸인 상 벤투 역의 대합실은 언제나처럼 수많은 관광객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었다. 우리까지 붙잡혀 있을 수는 없었다. 우리는 다시 돌아올 거니까, 아베이루로 향하는 기차에 빠르게 탑승했다.


마음이 든든했다. 처음 아베이루에 왔을 땐 모든 게 낯설어 주변을 살필 여유도 없었는데, 찬과 함께 걸으니 이제야 아베이루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게다가, 포르투에서는 보이지 않던 해가 여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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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완벽한 기분을 이어가기 위해 미리 찾아놨던 식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베이루에서는 한 끼만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신중하게 식당을 골라야 했다. 그래, 오늘은 햄버거를 먹어야겠다. 미리 봐둔 두 개의 식당 후보 중 가성비 햄버거 맛집을 목적지로 정했다. 아베이루 대학생이 많이 찾는 햄버거집이라는 소개글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다. 패스트푸드의 대표답게, 약 7분 만에 주문한 음식이 모두 나왔다. 햄, 베이컨, 패티, 치즈 등을 층층이 쌓고 이쑤시개에 올리브를 꽂아 고정한 햄버거. 소박한 비주얼에 별 기대 없이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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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가 이렇게 간단한데, 이런 맛이 나다니.) 왜 한국에서는 이런 걸 안 팔지?”


내 말을 들은 찬이가 웃는다. 거두절미하고 말했는데도, 찬이는 내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같은 생각을 했다는 뜻이다. 우리는 늘 같은 타이밍에 비슷한 생각을 한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찬이가 해버리면, 왜 선수를 쳤냐며 장난스레 눈을 흘길 정도로 생각과 입맛이 닮아있다. 우리의 비슷함에 즐거워하는 게 일상이다. 우리의 비슷함에 즐거워하는 게 일상인 우리는, 이곳에서도 입맛에 찰떡같이 맞는 인생 햄버거를 만났다.


하지만 이때부터였을까. 완벽하다고 생각한 하루가 조금씩 삐걱대기 시작한 건. 포르투 여행을 하면서 계산이 잘못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곳에서 처음 계산 실수가 있었다. 거슬러 받은 금액이 적어서 카운터에 얘기하니, 처음에는 맞게 줬다던 직원이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더니 굳은 얼굴로 포스에서 돈을 꺼내 돌려주었다. 단순한 실수였을까, 아니면 여행객을 만만하게 본 걸까. 찜찜했지만 그냥 실수라고 믿고 싶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아베이루에서, 좋은 기억만 가져가고 싶었으니까.


“우리, 바다 보러 가기 전에 여기 구경 조금만 하고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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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는 시간이 없어서 아베이루 운하 주변을 제대로 못 본 게 아쉬웠던 참이었다. 아베이루는 쨍하게 맑지는 않았지만, 채도가 살짝 빠진 하얀 하늘과 묘하게 잘 어울리는 도시였다. 소풍을 나온 건지, 바람을 가득 넣어 만든 미끄럼틀 앞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에 발걸음을 멈췄다. 얕게 비추는 햇빛 아래 진한 보라색 꽃나무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어우러졌다. 아베이루는 이런 곳이었구나. 두 번째 방문이 되어서야 아베이루의 매력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 구경하고, 택시 타고 이동하면 딱 좋겠다. 이곳은 해가 늦게 지니까, 여섯 시쯤 가도 바다 구경할 시간은 충분할 거야. 잘하면 노을도 보고 올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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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으로는 세운 계획은 완벽했다. 하지만 평화로운 풍경에 여유를 너무 즐겼던 탓일까. 포르투와는 다르게 우리에게 해를 보여주는 아베이루의 하늘을 너무 믿었던 탓일까. 내 계획과는 다르게 하늘이 점점 색을 잃어가고 있었다. 날씨가 흐려지는 건 내 계획에 없었는데. 불길한 예감에 서둘러 우산을 사서 택시를 탔다. 하늘도 참 얄궂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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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두둑- 쏴아아.


기어코 굵은 빗방울이 쏟아졌다. 택시에서 내려 코스타 노바 바다를 눈에 담으려는 찰나, 도착한 지 1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기사님이 식당 앞에서 내려준 덕분에 급히 가게 안으로 들어가 비를 피할 수 있었다. 계획에 없던 강제 티타임. 오렌지 주스 두 잔을 시켜놓고 멍하니 거센 비가 내리는 창밖을 바라봤다. 아베이루의 환영 인사는 강렬했다. 3년 만에 다시 돌아온 나를 격하게 반겨주는 것 같았다.


야속했다. 바다에 도착하자마자 기어코 비를 뿌려버리고야 마는 하늘이. 커다란 행복을 줬던 이 광활한 대서양을 눈앞에 두고도 유리창 너머로만 바라봐야 한다는 사실이.


아쉬워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거짓말 같은 현실에 우리는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예고 없이 찾아온 여유를 부렸다. 코스타 노바는 서프라이즈를 좋아하나 보다. 여기서는 행복도, 여유도, 심지어 비까지도. 모두 예고 없이 찾아왔다.




사랑의 순간으로 가득했던 포르투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

매주 금요일에 반갑게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