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노릇노릇 구워지는 시간

나타의 고장, 포르투갈에서 나타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by 지안
포르투 나타_6.jpg 2022, Porto


나는 50점짜리 가이드다.


보통 여행 가이드라 하면 만족스러운 일정은 물론이고 유창한 통역, 깊이 있는 문화 해설과 문제 해결 능력까지 갖춘 만능 해결사여야 한다. 그 엄격한 기준대로라면 나는 고작 0.5인분 몫을 해내는 가이드다. 메뉴판 앞에서는 번역기를 켜야 하고, 성당의 건축 양식이나 동상의 역사적 배경은 잘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해설이라고는 “여기는 노을이, 저기는 야경이 예뻐.”라거나 “포르투에 오면 나타를 꼭 먹어야 해!”같은 감상적인 말들 뿐이다. 그래서 나는 포르투의 역사 대신 내 포르투 여행의 역사를 들려주기로 했다. 어떤 위인이 이 건축물을 지었는지 설명하는 대신, 내가 3년 전 이 건축물이 있는 골목을 어떤 마음으로 걸었는지를 이야기하며 걸었다. 내가 좋았던 곳이 너도 좋기를, 내가 사랑한 풍경이 네 마음에도 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앞장서는 일이 50점짜리 가이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가이드였다. 다행인 건 지안투어 고객은 아직까지 찬이밖에 없다는 사실이라는 거.

“찬이랑 여기 같이 가면 좋을 거 같아.”


포르투 나타_4.jpg 2022, Porto


좋은 경험을 나누고 싶은 마음 하나로 찬을 이끌고 향한 곳은 나타 Nata 쿠킹 클래스였다. 3년 전, 두세 명씩 짝을 지어 찾아온 이 수업에서 나만 혼자였다. 모두가 이 순간을 함께 온 사람과 나누는데, 부족한 영어 실력에 혼자였던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일 밖에 없었다. 나타가 맛있게 만들어지기를, 언젠가 누군가와 함께 수업에 참여할 수 있기를 기다렸다.


포르투 나타_9.jpg 2019, Porto


3년이라는 시간은 꽤 길어서, 두 번째로 참여한 수업의 풍경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예전에는 선생님이 설명과 주도 아래 한 명씩 돌아가며 한두 단계를 실습을 해보는 방식이라 구경하는 시간이 더 길었는데, 이제는 커다란 테이블에 둘러서서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방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국적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포르투 여행 중 한 자리에 모였다. 저마다 참여한 이유는 다를 수 있지만, 맛있다고 소문난 나타를 직접 만들어보겠다는 포부를 갖고 모인 이 공간이 좋았다. 손을 깨끗이 씻고 기대감에 가득 차 반죽을 만질 시간을 기다리는 얼굴들이 귀여워 웃음이 새어 나왔다.


포르투 나타_11.jpg 2022, Porto


꼬물꼬물. 다들 처음인지라 손길이 어설펐다. 선생님의 시범이 있었지만, 직접 하는 건 또 달랐다. 페스츄리 반죽은 여러 사람의 쭈뼛대는 손을 거쳐 다양한 모양으로 틀에 붙어버렸다. 어떤 반죽은 틀 위로 삐죽 올라와 있었고, 또 어떤 틀에는 반밖에 안 채워져 있었지만 사람들의 표정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평소 요리에 관심이 많은 찬의 얼굴에도 재미가 묻어있었다. 유튜브로 요리 영상을 즐겨보는 그에게, 타지에서 듣는 쿠킹 클래스는 꽤 흥미로운 놀이터인 모양이었다.


포르투 나타_3.jpg 2022, Porto


다행히 쿠킹 클래스는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수업 시작 전, 오늘 만들어 볼 나타 레시피의 역사를 소개하는 짧은 스토리텔링 시간이 있었다. 선생님이 할머니에게 전수받은 특별하고 소중한 레시피라는 것. 고백하자면 나는, 0.5인분의 몫을 겨우 해내는 가이드답게 이야기의 절반 정도를 겨우 이해했다. 함께 보여준 그림 자료가 없었더라면 그마저도 이해하지 못했을 거다. 집에서 그대로 만들어보라며 본인에게 소중한 레시피를 자세히 알려주었지만, 그조차도 눈치코치로 이해해야 했다. ‘분명 다시 올 때는 영어 실력자가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걸 보면 나는 인간이 분명하다. 3년 전에도 했던 다짐을 또 한다. 결국 집에서 만드는 건 깔끔하게 포기했다. 대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로 했다. 영어도 베이킹도 서툴렀지만 상관없었다. 다 같이 뚝딱거리며 만드는 이 순간이 즐거웠으니까. 그래도 다행인 건, 미숙한 영어를 내뱉는 데 예전만큼 두렵지 않다는 것이었다.


포르투 나타_10.jpg 2022, Porto


“Do you want… to try?”


타르트지 위에 노란 커스터드 크림 반죽을 붓다가 옆에서 지켜보던 친구에게 건넸다.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활짝 웃었다. 네가 잘하고 있으니 끝까지 해보라는 응원과 함께. “그래도, 한 번 해봐! 재밌어!”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목 끝에 맴도는 건 한국어뿐이었다. 영어를 입 밖으로 꺼내는 게 두렵지 않았지만, 그건 생각나는 문장이 있을 때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는 결국, 환하게 웃으며 나를 응원해 주는 그녀의 미소에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같이 웃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다음엔 꼭, 영어 공부를 더 해서 떠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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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Porto


방금 오븐 문을 닫은 것 같은데, 시간이 빠르게 흘렀는지 나타가 생각보다 빨리 구워져 나왔다. 식탁 위에 올려진, 오븐에서 갓 나와 노릇노릇한 나타를 하나 골라 접시로 가져왔다. 맛이 어땠냐고 묻는다면 “역시 직접 만들어서 그런지 정말 맛있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여러 사람의 서툰 손길이 모여 만든 나타라 맛도 다양했다. 어디는 바삭했고, 어디는 단단했다. 하지만 서툰 솜씨로 만든 홈베이킹 나타의 맛은, 귀여웠다. 전문 베이커리에서 파는 나타와 비교하면 소박하고 아쉬운 맛이었지만, 갓 구운 따끈한 나타를 한 입 베어 문 찬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그의 표정을 보니 좋은 경험을 나누고 싶었던 50점짜리 가이드의 오늘 일정은 꽤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오늘의 목표, 좋았던 추억 선물하기는 이걸로 달성이다.


포르투 나타_5.jpg 2022, Porto


나타의 고장 포르투갈에서,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한날한시에 모여

하나의 달콤함을 반죽하는 일을 언제 또 해볼 수 있을까.


나타를 만들어보고 싶어 모인 우리의 마음이 노릇노릇 구워지는 순간이었다.




포르투 나타_7.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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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 클래스가 끝나고 만난 전깃줄에 걸린 구름


P.S.


엊그제 스토리 크리에이터에 선정되었다는 알람을 받았어요!

여행 분야 크리에이터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는 순간이 오다니.

어떤 기준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받은 뱃지는 잃지 않도록 애써보겠습니다.


포르투 포토 여행에세이 펀딩이 끝난 후에도,

어떤 여행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지 즐거운 마음으로 고민해 볼게요!

오래, 꾸준히 글을 써가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해봅니다 ෆ⸒⸒


긴 글 매번 꼼꼼히 봐주시는 여러분들께 온마음 다해 감사드립니다.

빠르게 찾아가지는 못하지만, 느리더라도 진심으로 소통하고 싶어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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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여행 분야 크리에이터,

지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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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순간으로 가득했던 포르투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

매주 금요일에 반갑게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