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 타이머로 일하는 카페에서든 중학교 수업에서든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나는 카페에서 파트 타이머로 일한다. 이 카페에서 일한 지 일 년이 넘어가니 손님들이 종종 나한테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묻는다. 이 질문에는 두 가지 의도로 나뉜다. 첫 번째, 내가 진짜 궁금한 사람. 두 번째, 나한테 훈수 두고 싶은 사람.
첫 번째 유형 사람들에게는 간결하면서 솔직하게 대답한다. “저는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가끔 학교에 나가 수업하기도 해요.” 그럼, 보통 “아, 그러시구나.” 로 깔끔하게 대화가 종결된다.
두 번째 유형은 질문할 때부터 어떻게 나한테 훈수를 둘지 시동 거는 게 보인다. (나는 그들이 뭐 하는 사람인지 안 궁금하다.) 대화는 두 사람이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말을 주고받는 것이다.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주입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말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아무렇게나 대답한다.
“자몽 짜는 사람이요.” (자몽이 베이스가 되는 음료는 자몽을 직접 씻어 씨를 고르고 과즙기로 짠다.)
그 외 “설거지하는 사람이요.” “커피 내리는 사람이요.” “와플 기계 청소하는 사람이요.”가 있다.
거짓말은 아니다. 나는 정말로 자몽을 짜고 설거지하고 와플 코팅 기계가 벗겨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청소하니까. 노동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있다. 나이가 서른인데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보다 걱정을 많이 한다. 가끔 나를 무시하는 사람을 만날 때면 카페 일 외에도 대학원을 다니고 있고 중학교에서 수업도 하고 있다고 말한다. ’ 대학원‘과 ’ 중학교 수업‘은 마치 지금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내가 전부가 아니고 더 나은 모습도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상대방이 현재 내 모습을 무시하는 걸 떠나 내가 현재 내 모습을 무시하고 있다. 내 자격지심을 가리기 위해 있는 척하는 내 모습이 가장 별로고 부끄럽다.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오지랖퍼)은 내가 정말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궁금하기보다 오늘의 오지랖 할당량을 채우지 못해 안달 난 사람들 같다. 그래서 어떤 대답을 하든 그들은 그들만의 오지랖으로 내 기분을 좋게 표현하면 나쁘게 솔직하게 표현하면 잡치게 만든다. 그래서 나도 더욱 아무렇게나 대답하기 위해 고민한다. 마치, 누가 더 아무렇게나 말해 벙찌게 만드나 대회 같기도 하고 누가 더 참신한 대답을 하는지 경연 같기도 하다.
나는 카페에서 주문도 받고 음료도 만들고 청소, 설거지도 하고, 오지랖퍼들에게 지지 않는 대답을 만드는 창작자이기도 하다.
이번 봄, 중학교 1학년 학생들과 독서 수업을 했다. 최진영 작가님의 <첫눈>이라는 작품으로 자신의 진로와 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어른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마음과 잘하는 것은 상관없다고 말하는 어른. 좋아하는 게 없거나 좋아하는 걸 몰라도 잘 살 수 있다고 말하는 어른.
- p.173 <첫눈>, 최진영
책에는 주말마다 클럽에서 베이스 기타를 치는 영어 선생님, 방학마다 철새 사진 촬영하러 가는 국어 선생님, 낚시가 취미인 지민 아버지, 가드닝이 취미인 설아의 엄마, 자전거 하이킹이 취미인 영소 친척 언니가 나온다.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기 위해 본업과 상관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
책 속에 나오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학생들은 ”선생님은 뭐 하는 사람이에요? “라고, 질문했다. 카페에서 일할 때도 사람들은 나에게 뭐 하는 사람이냐 물었는데 학교에서도 역시 뭐 하는 사람이냐고 질문을 받다니. 서른이 되면 잘하는 것 하나쯤은 있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어설프다. 그냥 할 수 있는 걸 하고 있다. 나는 학생들에게 되물었다. “제가 뭐 하는 사람처럼 보여요? “
다양한 대답이 나왔다. ”선생님도 하면서 해녀, 요가 강사, 역도 선수, 농부, 작가, 서점 직원, 메이드 등을 할 것 같아요. “ 어쨌든 나는 한 가지 일만 하며 살 것처럼 보이지 않았나 보다. 학생들의 반응은 역시 한 가지 일만 하지 않을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뭐 하는 사람이에요? “라고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가 대답을 시원하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날씨와 내 기분, 건강 상태에 따라 내 정체성이 수시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날씨가 좋고 탄수화물을 많이 먹고 잠을 잘 잔 날에는 이것저것 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든다. 날씨가 흐리고 밤늦게까지 몸에 해로운 음식을 많이 먹고 잠을 못 잔 나에는 모든 게 다 엉망인 기분이다. 달라진 건 내 기분인데 내 존재가 희미해졌다 뚜렷해졌다 한다. 나는 “뭐 하는 사람이에요?”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만족스러울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