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신 Oct 14. 2023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꿈을 포기하기로 했다.

『마음의 구석』, 서밤·블블·봄봄, 문학동네


  4년 전 이맘때 대학원에 가야겠다 결심했다. 학문에 대한 갈증이나 연구하고 싶은 주제가 있었던 건 아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다 내가 그동안 꾸준히 해온 '독서'가 생각났다.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독서와 무관한 사람이었다. 독서에 대해 공부하고 이걸로 밥벌이를 하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에 대학원을 지원하고 입학했다.

입학하고 3주 정도 됐을 때 '어.. 이게 대학원 생활 맞나?' 회의감이 들었다. 한 학기만 다니다 자퇴하려다 한 학기만 다녀보고는 이게 똥인지 된장이 분간이 안 갔다. 그렇게 한 학기를 더 다니고 다음 학기에 휴학을 빙자한 자퇴를 결정했다.


  휴학 원서를 들고 지도 교수님과 상담했다. 지도 교수님은 역시 언어연금술사이자 의지연금술사이셨다. 나는 휴학 원서를 버리고 3학기를 등록했다. 3학기 때부터 나는 중학교 수업에 나갔다. 수업 나가는 내내 '이게 맞나?'라는 의문과 수업이 끝나고 나면 수업 못했다는 자괴감에 괴로웠다. 실력도 자신감도 없는 나와 수업한 학생들에게 늘 미안했다. 이번 계약이 끝나면 안 해야지 다짐했다. 나는 또, '한 번만 해보고 내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판단하기는 이르지 않나?' 해서 중학교 독서 프로그램 계약서에 서명했다.


  두 번째면 조금 수월할 줄 알았는데 여전히 수업이 끝나고 나면 괴로웠다. '아, 독서교육은 내 길이 아니구나.'

 이번 상반기에 나는 졸업 학기였다. 계획 대로였다면 올여름에 졸업했어야 했다. 나는 졸업 요건으로 논문 대신 연구 보고서를 선택했다. 쓰지 못했다. 내가 정한 연구 주제는 불안 감소를 위한 독서프로그램 연구였다. 내가 정한 주제에 회의가 들었다. 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연구를 누구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이 연구 주제를 고민하고 있을 때 나는 2주에 한 번 정신의학과에 약 처방을 받으러 다녔다. 내가 약을 먹은 건 올해 처음이 아니다. 나는 내 불안과 우울로 처음 상담받은 건 10년 전 스무 살 때였다. 나는 그때 심리 상담이 종결되는 순간 불안과 우울도 종결될 줄 알았다. 아니었다. 나는 그 이후로도 불안과 우울로 괴로워 잠 못 드는 수많은 밤을 보냈다. 그리고 27살 때 받아들였다. '아, 불안과 우울은 완치라는 개념이 없구나. 당뇨병처럼 평생 관리해야 하는 거구나.'


  내 상태가 어찌 되었든 시간은 성실하게 흘러갔다. 나는 이번 봄부터 대학원 스터디에 참여하게 되었다. 스터디는 이론서와 논문을 읽고 토론하는 세미나 형식이었다. 스터디에 참여한 선생님들이 스터디 어떠냐고 물으면 혼자서 하는 것보다 나은 것 같다고 답했다. 혼자서는 절대 안 하니 모임에 참여해 부담감과 책임감으로 매번 참여했다. 박사 선생님께서 교육청 사업을 따와 여름 동안 독서 프로그램 만드는 일을 했다. 동시에 또 다른 독서 프로그램을 함께 고안하기도 했다. 함께 만든 프로그램으로 적극적인 선생님 두 분이 교내에서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다. 그리고 독서 프로그램 이끄는 방법을 익히기 위해 박사 선생님께서 하시는 프로그램에 참관하기도 했다.


 참관하면서 '아, 나도 이렇게 해봐야겠다.'가 아니라 '아, 나는 이렇게 못할 것 같은데.' 하기도 전에 마인드가 구리다. 제일 큰 난관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려고 하면 심장이 터질 듯 뛰고 볼 쪽에 마비가 온 듯한 느낌이다. 신체적으로도 불편하지만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 흘러나오는 대로 말한다.


 오늘도 참관에 다녀왔다. 오늘 모임에 빠질까 말까 수십 번 고민하다 참석하기로 했다. 오늘 모임에 빠지고 싶었던 이유는 오늘 주제 도서에 대해 할 말이 없었다. 책을 꼼꼼하게 두 번 완독하고 생각을 정리했지만 뭔가 어수선했다.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길 내내 어떻게 책에 대한 감상과 사람들과 함께 나눌 질문을 말할지 고민했다. 결국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쳐 다시 지하철 환승을 했다.


  도서관 카페에 도착해 최종적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모임 시간이 되었다. 나는 역시나 횡설수설했다. 사람들이 나에게 주목하니 목소리는 작아지고 자신감이 없어졌다. 책 주제가 무거워서 그런지 모임 중에도 모임이 끝나고 나서도 마음이 안 좋았다.

 

  집에 도착해서 밥을 먹었다. 탄수화물을 먹고 나면 기분이 나아지고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날 거라 기대했다. 밥을 먹고 설거지를 끝내고 부엌 창가를 바라봤다. 나는 스스로 물었다.


너 독서교육 하고 싶어?

아니

만약에 오늘 로또 1등이 됐어. 그럼, 경제적으로 안정적일 건데 너 독서교육 할 거야?

아니

너 독서가 싫어졌어?

아니. 나는 독서를 취미 영역으로 남기고 싶어.


 그리고 나는 엉엉 울었다. G랑 통화하면서도 울고 샤워하는 내내 울었다. 샤워할 때 통곡하듯이 울어 이 소리가 수챗구멍 사이로 흘러 밑에 층 사람이 귀신으로 오해할까 봐 신경 쓰였다. 오랫동안 울고 화장실을 나오니 몸에서 열기로 가득했다. 머리를 말리고 몸도 마음도 허기져 브이콘을 먹었다. 몸에 탄수화물이 들어가니 힘이 생겼다. 또 한바탕 울었다.


  취미와 취향은 같은데 그 외에 모든 것이 안 맞는 연인과 헤어지기로 결심한 것처럼 울었다. 누군가는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했는데 포기냐고 안타까워할 수가 있다. 하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극복이 힘들 것 같고 기대보다는 벌써 피하고 싶은 마음이 큰 관계는 그만하는 게 맞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매번 나를 빡치게 만드는 그는 어쩜 천사가 아닐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