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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신 May 17. 2024

아콩이의 마지막 산책

15년을 함께한 아콩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1. 가출음 참치 않는 아콩이

 아콩이는 3.5kg 잘 참는 하얀 말티즈다. 아콩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산책과 간식’이다. 먹는 것을 너무 좋아해 묵돌이 아콩이라고 불렀다. 묵돌이 아콩이는 신기하게 배가 차면 과식하지 않는 똑똑 강아지다. 평생 살면서 3kg~3.5kg 몸무게를 벗어난 적이 없다. 성격은 소심한데 소리 없이 사고를 쳤다. 그래서 아콩이는 여러 번 파양을 당했다. 첫 번째 집에서는 아콩이가 불을 냈었고 두 번째 집에서는 물난리(아콩이는 목이 말라 화장실에서 물을 마시려다 수도꼭지를 열었지만 닫지는 못했던 것 같다)를 냈다. 세 번째 집에서는 견주가 그냥 못 키우겠다고 해서 우리집에 오게 되었다.  그렇게 2011년 겨울 아콩이는 우리집에 정착하게 되었다.


 아콩이는 총 3번 가출을 했고 3번 다 찾았다. 두 번째 가출 후 얼마 안되서 세 번째 가출했을 땐 우리집이랑 인연이 아닌가보다하고 체념했었다. 아콩이가 없는 적적한 저녁에 지역 뉴스를 보고 있는데 우리 지역 근처 유기견 보호센터에 아콩이가 있었다. 수많은 말티즈들 사이에서 아콩이를 찾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때 아콩이와 나는 초록색으로 커플 염색을 했다. 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했었던 나의 탈색은 초록색이었고 아콩이는 탈색을 하지 않아도 대파처럼 싱싱하게 염색이 되었다. 방송에 3초 정도 아콩이가 나왔고 다음 날 엄마는 기자에게 연락하여 아콩이가 있는 유기견 보호센터에 갔다. 그 사이 아콩이는 입양이 되었다. 입양 가족 구성원인 어린이가 아콩이에게 정이 많이 들어 보내주기 싫어 했다고 했다. 엄마는 “우리집에도 아콩이 없으면 안 되는 어린이가 있어요.” 라고 어린이의 보호자에게 말했다고 했다. 그때 내 나이 22살이었다.  

                                                               대파시절 아콩이 사진는 순무 같기도 했다. 


 아콩이는 우리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바깥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유기견보호센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집에 도착하고나서 보름 정도는 또아리를 틀며 지냈다. 언제나 깨발랄 했던 아콩이였는데 간식과 산책에도 관심이 없어 어색하고 걱정되었다. 보름 후, 아콩이는 내가 알고 있는 깨발랄한 묵돌이 아콩이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는 보름이었지 아콩이 시간으로는 1년이라는 시간이 아니였을까. 아콩이는 마지막 가출 이후 더 이상 집을 떠나지 않았다.





2. 행복의 역치가 낮은 아콩이

 아콩이는 ‘산책과 간식’ 이 두 단어만으로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강아지가 된다. 아콩이는 내향적이고 내성적이라 에너지가 바깥으로 마구 넘치는 성향은 아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집안을 어슬렁거리거나 잠을 잔다. 얌전히 누워있다가 “아콩이 간식!” 이라고 외치는 순간 벌떡 일어나 네 발로 도도도도- 발자국 소리를 내며 달려 온다. 아콩이에게 간식을 주기 전 항상 “손, 앉아” 개인기를 요구하면 어쩔 수 없다는 듯 손을 주고 앉는다. 이게 반복되다 보니 나중엔 내 앞에 오자마자 자기 손을 먼저 주고 앉게 되는 똑똑 아콩이.


 아콩이가 간식만큼 좋아하는 산책 역시 반응이 웃기다. “아콩이 산책!”하는 순간 저 멀리서 “와랄랄랄라라라” 짖으며 얼른 목줄을 채워 달라고 보챈다. 너무 신나서 달려오다가 넘어지기도 한다. 아콩이의 신난 모습에 나도 덩달아 신난다. 이 모습을 사계절이 열 번이 지나도록 보았지만 볼 때마다 웃기고 신난다.


 신나게 산책 후 사료와 간식을 먹고 기분 좋게 잠든 아콩이를 보며 생각했다. 더 잘해주고 싶은데 내가 너무 인간이라서 아콩이가 무엇을 좋아할지 고민하기 보다 내가 좋아보이는 것 위주로 했던 것 같아 미안했다. 하루 딱 3분만이라도 좋으니 아콩이가 인간의 말을 구사할 줄 알거나 반대로 내가 강아지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아 대화를 할 수 있었으면 했다. 그럼 아콩이가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것과 불편한 것에 대해 파악하기 쉬울텐데.


 풍족하게 해주지 못하는데도 아콩이는 언제나 “간식과 산책”이라는 두 단어만으로 가장 행복한 강아지가 된다. 행복의 역치가 낮은 아콩이라서 미안하고 귀엽고 고맙다.





3. 꽃길 산책

 작년에는 3월말 쯤 벚꽃이 만개했는데 올해는 비가 자주 오고 날씨가 따뜻했다 추웠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4월 첫 째 주말 갓 튀긴 팝콘처럼 벚꽃들이 따끈하게 피어올랐다.
 

 나는 몇 년전부터 봄이 되면 약을 먹어야 할만큼 불안과 우울이 심했다. 그래서 나는 벚꽃을 보면 예쁘기 보다 슬펐다. 올해는 겨울부터 몸과 마음 건강에 신경 쓴 덕분인지 벚꽃을 봐도 우울하지 않았다. 벚꽃 터널을 지나가며 내 짝꿍 G에게 “이제 벚꽃을 봐도 안슬픈 것 보니 나 많이 좋아졌나봐!” 하고 벚꽃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만끽할 수 있었다. 옷차림도 가볍고 공기도 포근하고 벚꽃도 예쁘고 무해한 시간이라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엄마한테 카톡이 왔다. 무소식이 희소식인데 일요일 낮 시간에 문자가 왔다는 건 무슨 문제가 있다는 의미이고 그 문제는 아콩이일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이런 예감은 대체로 빗나가지 않는다.

‘아콩이가 오늘 밤 못 버틸 것 같아.’

 

 G랑 계곡과 벚꽃이 있는 곳에서 준비한 샌드위치를 먹었다. 아콩이 소식은 집에 갈 때 전하고 싶었다. 오랜만에 함께 나온거라 이 분위기를 최대한 지키고 싶었다. 결국 내 표정과 기분은 내 의지대로 지켜지지 않아 G에게 말했다. “사실, 나 할 말이 있는데” 그전까지 장난치다 G는 자세를 고쳐 앉고 무슨 일이냐 물었다.


 “아콩이가..” 라고 말하자마자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그리고 우리는 급하게 엄마 집으로 갔다. 집으로 가자마자 엄마는 무지개 다리를 건넌 아콩이를 안으며 아콩이가 무지개 다리 건넜다고 펑펑 울었다. 아직은 체온이 남아 있는 아콩이를 안았다. 따뜻했고 아콩이 몸이 조금씩 굳어갔다.

 

 엄마가 미리 알아본 장례식장으로 우리는 갔다. 장례식 가는 내내 벚꽃들이 만개했다. 아콩이 표정도 편안해 보였다. 아콩이는 꽃길을 걸으며 장례식에 도착했다. 장례지도사님도 아콩이를 보시더니 “아콩이가 편안해보이네요.”라고 말씀하셨다. 아콩이는 산책을 신나게 하고 좋아하는 간식을 먹고 잠든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콩이를 항상 나를 기다렸다. 나에게는 몇 시간이 아콩이 시간에서는 몇 일이나 되는 시간이었을거다. 이제 내가 아콩이를 기다릴 차례다. 강아지별에서 하루는 인간이 체감하기에 10년이라 했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콩이가 강아지별에서 적응하고 강아지 친구들이랑 신나게 놀고 있을 쯤 다시 만날 수 있을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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