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무엇보다 선명한 것
최근에 작은 전시회를 하나 보고 왔다. 아무 생각 없이 SNS를 내리다가 발견 한 그림들이 너무나도 내 마음에 들었던지라, 차마 무시하지 못한 채 저장을 해 놨던 전시회였다.
한국에 가면 기간이 지나기 전에 꼭 가봐야지,
수많은 설레는 마음의 이유에 전시회를 포함시킨 뒤 비행기에 올랐었다.
오랜만에 가 본 전시회는 실로 즐거웠다. 싱가포르에 있을 때는 일과 과제를 쳐내기에 바빠, 차마 느긋하게 전시회를 방문해 그림을 뜯어볼 일이 많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에 구애 없이 내가 원하는 만큼 공들여 작품들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온 것이다.
여긴 붓자국으로 파도를 나타냈구나,
반대로 이 부분은 붓자국을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번진듯한 느낌이라 엄청 부드럽구나,
투명한 게 비친 빛이 그림자랑 비교돼서 묘하게 이질적인데 시선이 가 버리는구나,
이런저런 생각들을 거치며 그림들 사이를 지나치다 딱 한 그림에 눈이 잡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림에 나있는 옅고 작은 얼룩에 시선이 뺏겨 버렸다.
그림은 꽤나 크기가 큰 편이었다. 전체적을 숲이 그려진 배경에, 따스한 노란빛으로 둘러싼 문이 숲길의 오른쪽 끝에 굳건하게 서 있는 것이 부드러움과 동시에 신비함을 보여주는, 작가님의 세심한 붓터치와 색감이 매우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그림은 전체적으로 바라보았을 때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적합한 그림이었으나, 앞서 말했듯, 내 시선은 문 밑에 나 있는 작은 얼룩에 멈췄다.
왜 멈췄는가 하면, 글쎄다, 그건 시간이 지난 아직까지도 확실히 이유를 말할 수가 없다. 그냥 이유도 없이 좋았다. 녹색으로 가득한 그림에 새침하게 찍혀있는 그 붉은색 얼룩이, 그림에서 여리지만 무엇보다 정확하게 자기주장을 하고 있는 그 얼룩이 나는 좋았다. 고작 그 얼룩 하나가, 웃기게도 내가 그 그림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 글에서 나는 해당 자국을 "얼룩"으로 표현하고 있으나, 사실 나는 그것이 얼룩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확하게는 부정적인 의미로 얼룩이라는 단어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얼룩'이라 하면 지워할 할 흔적, 지저분한 부분을 떠올린다. 하지만 사전엔 다른 의미도 같이 존재한다. "본바탕에 다른 빛깔의 점이나 줄 따위가 섞인 자국". 나에게 얼룩은 지워할 존재가 아닌, 그저 배경과 섞인 이 그림을 완성하는 하나의 자국이었을 뿐이다.
얼룩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가 이때까지 얼룩이라며 싫어했던 것은, 어쩌면 그저 새로운 매력점이 아니었을까. 그림에 물감이 튀면 어떤 사람은 그림이 더러워졌다며 싫어하겠지만, 반대로 어떤 사람은 되려 그림이 한층 더 매력적이게 바뀌었다며 좋아할 수도 있다. 내가 싫어하는 부분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필 포인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어떻게 느낄지는 우리의 마음에 달린 것 아닐까.
그 작은 얼룩 하나 덕분에, 그 그림은 내 기억 속에 남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원인이 되었다. 어쩌면 나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 그렇게 남아있을까. 내가 지워야 한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다른 사람들은 오히려 나를 만드는 요소라고 생각을 해줬을까. 내 얼룩이 누군가에겐 나를 기억하게 만드는 요소였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