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스몰 픽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신지 Jun 10. 2019

평일도 인생이니까

"빨리 토요일 되면 좋겠다" 하는 순간 인생에서 지워지던 숱한 평일들

황금 같은 주말에 최악의 선택을 하다니 


3월의 어느 주말, 수목원에 다녀왔다. 친구가 1년 전에 선물로 준 수목원 입장권이 3월 31일로 만료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건네받을 때만 해도 언제 가면 좋을까, 봄꽃을 보러 갈까, 단풍을 보러 갈까 기분 좋은 고민을 했지만 그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또 까먹고서 한 고민이었다. 모든 공짜 티켓은 기한 만료 직전이나 기한이 지나고 나서야 그 존재를 알아차리게 된다. 그 전엔 부러 눈에 띄게 하려고 지갑에 넣어두거나 책상 앞 코르크 보드에 꽂아놔도 투명 티켓처럼 도무지 보이지가 않는다. 


이번엔 모처럼 때를 놓치지 않을 참이었다. 도로는 주말답게 붐볐다. 집을 나선 지 2시간이 지났건만, 거북이 운전으로 반도 못 온 상황이었다. 꽃도 안 폈는데 이 많은 사람들은 대체 뭘 보러 집을 나선 걸까. 애꿎은 나들이객 탓을 하며 보조석에 앉아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이렇게 막힐 줄 알았으면 그냥 하루 연차 쓰고 평일에 갈걸. 아니 그냥 집에서 쉴걸. 공짜 티켓이 뭐라고. 집에 있었으면 지금쯤 몸도 마음도 아주 편했을 텐데. 


오랜만에 놀러 나선 길이 꽉 막히니 사소한 모든 것이 후회스럽고, 눈앞에 보이는 웬만한 것은 다 원망스러웠다. 막히는 차들 사이사이를 누비며 뻥튀기를 흔드는 손길도, 앞차에서 흘러나오는 쩌렁쩌렁한 노랫소리도, 찌뿌듯하게 흐려지는 게 곧 비를 쏟을 것 같은 하늘도. 망했다. 다 망했어. 나는 되는 게 없어.



어딘가로 가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


이럴 땐 후회를 입 밖으로 내뱉어 옆에 있는 사람도 함께 후회하게 만드는 게 내 특기다. “괜히 나왔다, 그치.” “다 나 때문이야, 내가 진작 가자고만 했었어도….” “그냥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3시간 걸리는 것보다 지금 돌아가는 게 나을 수도 있어!” 황금 같은 토요일 오후의 2시간을 길바닥에 버리고 있는 내 자아는 작아지고 작아져서 다시방에라도 욱여넣을 수 있는 크기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던 K가 말했다. 


“그냥 ‘가는 길’인 거야. 차가 막혀도 안 막혀도 우린 지금 수목원에 가고 있는 중이잖아. 그 시간을 그냥 좀 즐겨도 돼.” 


K는 가끔 아무렇지 않게 그런 말을 한다. 수시로 기우뚱거리는 나를 대신해 시소 위에서 그때그때 앞으로 두 칸, 뒤로 한 칸씩 옮기며 삶의 균형을 잡아주는 말을. 듣고 나면 늘 이 상황이 별거 아닌 것처럼 여기게 하는 말을. 1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서울을 출발해 막히는 도로 위에서 보낸 시간이 3시간을 넘어서고 있었다.


K의 말을 곱씹는 동안 생각했다. 이 3시간을 ‘버렸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고. 지금 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도 나의 주말, 나의 토요일이었다. 엄연히 내 인생의 3시간이고. 그런데 나는 왜 자꾸 이런 시간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걸까? 


언제부턴가 버스 안에서, 기차 안에서, 비행기 안에서 보내는 시간을 힘들어하게 되었다. 그건 아마 견디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서일 거다. 예전의 나는 여기에서 저기로 가는 시간을 그 나름대로 보낼 줄 아는 사람이었는데 마음이 자꾸 비좁아진다. 어쩌면 이미 과정보다 도착이 중요한 어른이 되어버린 건지도 몰랐다. 



주말뿐만 아니라 평일도 인생이니까 


목적지에만 진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인생을 중요한 이벤트가 있는 순간과 그렇지 않은 순간으로 구분하고, 나머지 날들을 ‘아무것도 아닌’ 시간들이라 치부하지 않는 것. 내게 필요한 건 그것뿐인지도 몰랐다. 생각해보면 삶의 시간이 다 그렇다. 대학에 합격하기 전, 취업하기 전, 이런 식으로 시간을 나누어 놓고 그전의 시간을 다 ‘진짜가 아닌’ 시간으로 여기면 우리 앞에 촘촘히 놓여 있는 시간이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출퇴근하며 입버릇처럼 “빨리 토요일 되면 좋겠다.”라고 하는 순간 평일은 인생에서 지워지는 것처럼. 그건 참 이상한 말이다. 그럴 때 우린 월·화·수·목·금요일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주말에 도착하기 위해 버리는 날들?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싶은 벌칙 같은 시간? 


행복한 순간 앞에서 우리는 종종 시간이 흐르는 것을 아까워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식으로밖에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그 외의 시간들을 하찮게 대할 때, 우리가 버리고 있는 건 시간이 아니라 인생인데도. 그동안 숱한 평일들을 인생에서 지우며 살아오고 있었던 나처럼. 


물론 삶에는 그냥 흘러가는 시간도 있다. 기다려야 하는 시간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게 결코 버리는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깨닫는 일이다. 


잎을 다 떨군 나무에게 겨울은 버리는 시간일까? 벚나무는 꽃이 지고 난 뒤 사람들이 무슨 나무인지도 몰라주는 나머지 세 계절을 버리며 살까? 그렇지 않다. 나무는 나무의 시간을 살 뿐이다. 벚나무는 한 철만 살아있는 게 아니라는, 인생은 수많은 월화수목금토일로 이루어져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기 위해 그 주말 나는 꽉 막힌 도로에서 봄의 한나절을 지켜보았는지도 모르겠다.


[대학내일 885호] ILLUSTRATOR 강한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에서 본전을 뽑는다니, 본전이 뭐길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