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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협 Feb 29. 2024

저항의 역사, 그곳엔 여성이 있었다.

3월 8일은 116번째 세계 여성의 날

빵과 장미

오랜 역사 속에서 여성은 늘 차별받는 존재였다.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저서인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계급의 등장과 함께 여성차별 또한 시작되었다고 밝혔듯, 인류 역사의 대부분이 되어버린 계급투쟁만큼이나, 여성에 대한 억압 역시 기나긴 역사를 갖고 있다.   


억압의 역사를 지나오는 동안, 18세기 이후 여성주의 이론은 넓은 스펙트럼을 보이며 발전해왔다. 갖가지 사상이 들불처럼 생겨났지만, 그 모든 사상에 이론 체계가 부여된 것은 아니었다. 해방의 사상은 해방의 이론을 필요로 하기 마련이다. 누가, 무엇으로부터, 어떻게 해방되고 싶은지를 모르면 현상에 대한 불만이나 분노의 에너지는 방향을 잃어버린다. 계급과 여성차별의 상호침투적 관계만큼이나, 해방이론에 있어서 여성주의는 마르크스주의와 강하게 결부될 수밖에 없었다. 마르크스주의만이 거의 유일하게 (근대) 산업사회에서의 억압을 해명하며, 그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 노동자’의 존재는 여성해방의 주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논리에 따라, 자본주의와 견고히 결합된 가부장제를 극복하고 완전한 여성해방을 추구하기 위하여, 여성 노동자들과 그 운동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유의미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여성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 사회에 집단적인 목소리를 내세우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이다. 물론 이전에도 노동자들이 활발하게 노동운동에 참여하면서 한국 사회의 노동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왔지만, 이들의 투쟁을 ‘여성주의적’ 특성을 드러낸 투쟁이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들의 투쟁은 남성 노동자들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해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특수한 문제들, 즉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차별임금의 문제, 모성보호 미비, 성폭행 등의 문제를 부각시키지 못했고, 단지 남성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볼 수 있듯이 일반 노동자들의 공통 의제를 중심으로 운동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 노동운동에서 내세운 가치는 무엇인가? 민주(자주)노조, 노동기본권, 법 앞에 평등한 개인, 최저생존권 등일 것이다. 당시 재야운동은 ‘정치적 민주화’를 중심으로 자신의 담론을 전개했고 민주노조의 요구는 노동기본권, 다시 말하자면 ‘법을 지켜라’는 수준이었다. 이후 1980년대 초반에는 투쟁에 정치적 성격이 더해져, 국가권력을 중심으로 정치의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였다. 여성 노동자들 역시 반도상사, 서통, 콘트롤데이타, 원풍모방 노동조합에 대한 정치적 탄압과 기업의 철저한 와해공작을 폭로하고 적극적인 투쟁을 벌였지만, 여전히 자신들의 현실과 특수성에 기반한 문제들을 제기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변화는 1984년 초에서 85년 여름경부터 이뤄졌다. 이 시기는 운동공간이 상대적으로 확대되어 이전의 단위사업장 범위의 소그룹운동을 지양하고 연대운동의 틀을 찾아가던 때였다. 여성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일반 남성 노동자들과는 다른 조건에 있으며, 이러한 ‘차이점’들이 노동운동에도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인식이 형성된 이후 비로소 ‘여성 노동자’로서 겪는 특수한 문제들을 제기하기 시작했고, 다른 여성운동단체들과의 연대운동을 형성하여 여성 노동자의 독자조직을 건설하려는 노력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여성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운동, 즉 ‘여성노동운동’이라는 흐름이 생겨나게 된다.      


이후 10여년 간 여성 노동자들과 여성노동단체, 여성노동조합들은 여성 노동자로서의 권리 확보와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 적극적인 투쟁을 전개해왔다. 1980년대 후반 여성의 저임금 철폐와 생존권 확보를 위한 임금투쟁, 동일노동동일임금투쟁, 평생고용권 확보를 위한 조기정년제·결혼퇴직제 폐지운동, 1990년대 모집, 채용, 임금, 배치, 직업훈련, 승진, 복지혜택 등에서 고용평등화를 이루기 위한 운동, 모성보호조치 쟁취운동, 직장내 성폭력 근절 운동, 90년대 후반 IMF 시기에 여성의 고용권 확보를 위한 투쟁에 이르기까지 여성노동운동은 줄기차게 여성 노동자의 고용상의 차별 철폐와 지위 개선을 위한 투쟁을 전개해왔다. 이런 노력 속에서 점차 여성 노동자의 권리주장과 요구들이 사회적 인정을 받기 시작했고, 여성 노동자의 차별적 노동조건과 열악한 지위들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권위주의적이고 전제적인 정권이 들어서며 오히려 역사가 퇴보한 지점 역시 존재한다. 부르주아 계급 지배의 헤게모니는 여전히 관철되고 있고, 많은 대중이 사회적 의제로서 동의하는 ‘능력주의’가 이전의 여성노동운동이 보편적으로 성취한 가치들을 유보하도록 만들고 있다. 자본은 성별분업구조를 활용하여, 여성에게 가사와 돌봄 등의 무급 재생산노동을 전가시키고, 임노동영역에서의 여성의 저임금노동을 활용하여 여성노동을 고용조정의 완충지로 삼아 이윤을 쌓고있다. 이처럼 사회적 맥락을 잃어버린, 무분별하고 자의적인 ‘능력주의’의 추구로 인한 여성에 대한 가학적 억압은 여전히 공고하다.      


자본주의와 긴밀히 결합한 가부장제는 여전히 계급지배성지배라는 이중의 억압을 여성에게 부여하고 있다. 여성해방이론은 계급철폐이론에 종속된 것이 아니기에, 계급관계의 철폐로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또한 자유주의적 여성해방사상이 그러하듯, 이론의 맥락을 상실한 채 교조화되어서도 곤란하다. 전 영역에 걸친 완전한 여성해방을 추구하기 위하여 계급관계 폐지라는 사회주의의 전망 위에 여성해방투쟁을 결합해야 한다. 즉 이중의 억압에 조응하는 이중의 투쟁을 펼쳐야한다.      


한국의 노동운동과 노동계급의 형성에 있어서 여성노동을 빼놓고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또 노조 파괴 이후 사회적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은 개인들이 사회적 소수자인 여성 노동자였던 것도 기억해야 한다. 다시금 역사가 퇴보하여 회색 빛으로 물든 지금, 3월 8일 여성의 날을 기념하며 지난 여성노동운동의 의미를 다시 새기고 여성해방으로 나아가자.     


여성과 남성의 진정한 동등권이 하나의 진리가 되는 것은, 내가 확신하는 바에 따르면, 남녀 쌍방에 대한 자본의 착취가 폐지되고 사적인 가사 노동이 공적인 산업으로 전환될 때입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     


❦ 참고한 책들의 서지사항은 다음과 같다.     


오장미경 지음 「여성노동운동과 시민권의 정치」 아르케, 2003

김원 지음 「여공 1970, 그녀들의 反역사」 이매진, 2006

우에노 지즈코 지음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녹두,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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