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ses.I.Finley에 대해
《고대 노예제도와 모던 이데올로기》, 《서양고대경제》를 읽고
모시스 핀리는 미국 출신의 영국인 고전학자이다. 그는 맑스주의를 전유하여 고대 경제제도에 대해 탁월한 분석을 이뤄냈다. 저서 《고대 노예제도와 모던 이데올로기》에서 핀리는 노예제 사회를 분석한다. 핀리가 지적으로 빚을 지고 있는 학자(학파)는 프랑크푸르트 학파, 칼 폴라니, 막스 베버이다. 핀리는 대학에서 고대 그리스의 사회 경제사를 연구하며 프랑크푸르트 학파와 교류하였다.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을 보면 알 수 있듯, 그들은 '이성의 도구화'를 경계하며 이를 부정하는 비판 이론을 펼친다. 이것은 인간을 일원화 시키는 경향을 비판하는 시도이다. 핀리가 프랑크푸르트 학파로부터 배운 것은 1) 부정의 방법과 2) 총체적 이해이다. 핀리 이전 고대 로마사의 연구 경향은 테오도르 몸젠으로 대표되는 노예제를 근대적 현상으로 파악하는 관점, 즉 근대성 입장과 원시적으로 보는 관점으로 나뉜다. 핀리는 노예제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근대에 나타난 '흑인 노예제'를 기준으로 파악하는 경향을 하나의 편견이라고 비판한다. '부정의 방법'으로 근대성-원시성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으로 나아간 것이다.
1949년 중국 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후 미국엔 매카시즘의 광풍이 일었다. 핀리 역시 이를 피하지 못하여 영국으로 망명하게 되는데, 이때 칼 폴라니와의 만남이 이뤄지게 된다. 칼 폴라니의 대표적 저서인 《거대한 전환》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악마의 맷돌"로 표현된다. 화폐, 노동력, 토지 3요소를 상품화시키며 끝없이 사회를 분쇄시키는 작용인 것이다. 칼 폴라니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사회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작용한다고 한다. 다만 이 '사회의 자기보호'는 옳은 방향으로 귀결된다는 보장이 없다. 나치의 파시즘과 소련의 국가사회주의 역시 자본주의라는 "악마의 맷돌"로부터 "사회의 자기보호"가 이뤄진 결과였다. 여기서 우리는 칼 폴라니가 인간의 주체적 의지를 강조했음을 알 수 있다. 역사의 발전은 기계론적으로, 또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주체적이고 실천적인 의지가 필요한 것이다. 이번엔 칼 폴라니의 다른 저서 《인간의 살림살이》를 보자. 칼 폴라니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가 전부가 아님을 여러 실증적 연구를 통해 밝혀낸 바 있다. 현대의 경제학 등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는 처음부터 그런 형태였고 영속적이라고 전제하지만, 칼 폴라니의 연구는 인류사에 걸쳐 여러 방식의 경제 형태가 존재했음을 말한다. 핀리는 이러한 관점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 핀리가 보기에 폴라니는 시장경제가 사회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관점에 묶여있는 한계를 지녔다. 그러나 그것은 경제가 우위를 차지하는 근대 사회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편견'인 것이다. 고대 사회에서의 사회구성체는 자본제 사회처럼 생산과 유통에 의해 장악되는 것이 아니었다. 강력한 국가의 폭력으로 주변부를 포섭해 사회구성체가 만들어지는 사회였다. 다시말해 고대사회는 정치가 우위를 차지하는 사회였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핀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장 경제 분석이 완벽하지 않은 이유로 상업적 이익(경제적 문제)자체가 고대 질서(정치적 공동체) 해체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에 완전한 분석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고대사회에서 정치가 경제의 우위에 있었다는 관점은 막스 베버와 이어지는 부분이 있다. 베버에게 영향을 받은 핀리의 서술은 그의 저서 《서양고대경제》에서 드러난다. 핀리는 베버가 그러했듯, 경제사를 분석하는 틀로 "계급"을 사용하는 것을 거부한다. "계급"이라는 틀은 근대 사회를 바라보는 경제적 관점으로서는 유효하나, 그것으로 역사 전체를 바라보는 것에선 '근대적 편견'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이해관계는 조금 더 다원적인 분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핀리가 생각하는 노예제 사회는 무엇일까? 핀리가 규정하는 노예는 "동산 노예"이다. 다시말해 재산으로써 '상품화된 존재'란 뜻이다. 그리고 핀리가 규정하는 노예제 사회의 실례는 (1) 고대 그리스 아테네와 (2) 기원 전 3c부터 기원 후 3c까지 이어진, 이탈리아 반도와 시칠리아 섬을 중심으로 하는 로마 제국 두 가지이다. 핀리는 노예제를 '동산 노예를 경영함으로써 발생하는 수입에 엘리트들이 의존하는 사회'라고 정의하는데, 이러한 노예제도가 관철되는 것은 제국의 극히 일부인 이탈리아 반도와 시칠리아 섬 일대였지만 앞서 말했듯 고대 국가의 특성인 '정치적 우위'로 인해 국가의 폭력을 통한 의지 관철이 제국 전체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따라서 핀리는 (2)의 로마 제국을 "노예제 사회"로 규정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노예제의 전제로는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로 대규모의 사적 토지 소유의 존재가 필요하다. 대규모의 노예 노동력을 흡수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상품 생산과 시장 경제가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상품화된 존재, 즉 노예를 사고 팔 수 있어야 하며, 노예의 노동력으로 생산한 상품을 교환할 수 있어야한다. 셋째로 노예 노동력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적 노동이 없어야한다. 이러한 노예제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노예 공급에 있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노동력이 자유롭게 이동하여 매 순간 매매가 이뤄지는 자본제 사회와 달리 노예제 사회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핀리의 통찰은 빛나는 지점이 있지만 동시에 한계도 지니고 있다. 핀리의 규정으로는 노예제의 여러 유형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적 용어로 핀리의 규정을 말해보자면 동산 노예의 형태는 '노예제 대경영'의 유형으로만 관철될 수 있다. 노예제는 주로 상이한 문명권이 만나는 지점에서 발달되었다. 앞서 말했듯 일정 정도의 노예 공급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이 지점에서 노예제의 유형을 타인을 예속 시키느냐, 타인에게 예속되느냐로 파악한다. 어떠한 개인이 자립하는 과정속에서 타인을 예속시키며 자립한다면 '노예제 소경영'의 노예주로서 자립하게된다. 반면 타인에게 예속을 당하며 자립하는 유형으로 나간다면 '소경영적 노예'(토지 점유 노예)의 형태로 나아간다. '노예제 소경영'은 그것의 생산력이 늘어감에 따라 '노예제 대경영'의 형태로 발전하는데 이를 마르크스는 노예제의 '본래적 형태'라 칭한다. 이 과정에서 노예주는 경영의 비중이 줄어들고 소유만을 유지한채 '기생적'인 존재로 化한다. 이런 과도기정 과정을 지나 노예 공급의 한계와 함께 생산력 발전을 방해하는 '기생적' 노예주가 제거되어, 비로소 '소경영적 노예'로의 전화가 이루어진다. 토지를 경영하고 점유하는, 의지의 관철이 이뤄질 수 있는 '농노제'로의 이행이 이뤄진 것이다.
*책을 읽고 손민석 선생님이 개진한 이론을 따라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