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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지 Sep 30. 2015

사랑한다면

당신에게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그저 추상의 세계의 일이라 단정 짓는다면

사랑을 그토록 외치는 일을 그만하라.

가령, 퇴근길 아내를 위해 꽃을 사들고 들어가는 남편의 발걸음.

그가 씻고 있을 때에 그의 속옷을 슬며시 욕실 앞에 놓아두는 아내의 습관.

집 앞 공원을 함께 산책하는 시간.

제각기 방황에 밖으로나 안으로나 시끄러운 자식들이 기꺼이 부모의 친구가 되어주는 것.

속상해 그러나 울지를 못 하는 친구의 술잔을 채워주는 것.

싸워 먼저 사과의 말을 건네는 손.

옷 가게서 녀석이 골라 입은 옷을 봐주는 것.

명절 때마다 잊지 않고 친구의 부모님께 드리는 인사.

서로가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기쁨을 만끽하는 것.

더불어 봄이 오면 연인과 함께 벚꽃 길을 걷고,

여름에는 나란히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

가을의 쓸쓸함이 비집고 들어올 공간을 내어주지 않는 포옹과

겨울에는 추운 날씨에 반항하듯 서로의 온기를 더욱 나누는 것.

오늘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십억의 구체적인 움직임들이

바로 사랑이리라, 사랑한다면.

그리고 나는 마땅히 이런 식으로 나의 마음을 전하는 날이 많을 터인데.

사랑한다는 말 대신,

당신에게 우산을 씌어줄 때에는 내 어깨가 조금 더 젖도록 할게라거나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노래를 발견했을 때에는

가장 먼저 당신에게 들려주기 위함으로 어디서든 구겨진 메모장을 꺼내 들게,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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