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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구 Apr 12. 2021

들불 독서모임 회고 : 『기억의 전쟁』 01 기획


   『기억의 전쟁』 은 영화 제작이 끝난 뒤 감독, 두 명의 프로듀서, 촬영 감독 네 명의 저자가 제작 당시 마주했던 감정들을 기록하고, 제대로 풀지 못했던 문제를 끄집어내어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후 이를 엮어낸 책이다.


   <여성의 눈으로 읽는 역사> 프로그램의 초기 기획 당시, '위안부' 사건을 토대로 서술된 소설 『한 명』 과 이 책을 같은 프로그램으로 묶어도 좋을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두 책 모두 '역사'라는 큰 범주로 설명이 가능했지만, 두 책을 같은 범주로 묶는 일은 사과가 선행되어야 비로소 사과 받을 자격이 생긴다는, 이상하고 잘못된 인과가 내포된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길보라 감독님 역시 탄 아주머니와 런 아저씨가 한국에서 수요시위에 참석한 장면을 영화 속에 삽입하는 문제에 대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셨던 것 같다.


이날의 시위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 생존자의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크게 기사화됐다. 두 피해자들의 만남. 이것이 한국 사람에게는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이라는 사안을 이해하는 가장 쉬운 도식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이를 보고 "일본에게 사과받기 위해서는 한국이 먼저 베트남에 사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가? 그럼 일본군의 만행이 없었더라면 한국은 먼저 사과하지 않을 것인가? 사과받기 위해서 사과해야 하는 것인가? 사과에 그런 목적과 대가가 존재할 수 있는가?
『기억의 전쟁』, p.117


   한참을 고민한 끝에, 나는 두 책을 한 프로그램으로 엮어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독서모임은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자리다. 독서모임에 참여한다는 것은 모임에서 발화되는 목소리의 모순을 직시하는 일이기도 하고, 수용이 어려운 목소리에 대항하거나 질문을 던지는 일이기도, 목소리들의 충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만약 참여자 중 누군가가 "일본에게 사과받아야 하니 베트남에게 먼저 사과해야한다"는 논리를 펼친다면 나는 이에 어떻게 답변할지, 다른 참여자들은 또 어떻게 답변할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설령 그 목소리와 불화하더라도 끈질기게 나의 목소리를 내야할 것이다. 우리끼리 이야기한다고 해소되지 않을 문제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 모임이 개운치 않게 마무리 되더라도 그 목소리를 나를 향한 질문으로 바꾸어 마음 속에 남기는 것. 나는 이것이 이 자리의 존재 이유라고 여겼다.


   그리고 나는 이 부조리한 자격의 문제에 대해 이 책 부록에 실린 정희진(여성학 연구자, 문학박사)의 글, '영화 <기억의 전쟁>이 촉발한 사회운동의 윤리 : 한국 사회의 '저항'과 '양심' 담론을 생각한다'가 모임의 토론을 이끌어가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했고, 이 글을 통해 모임 내 논의가 여러 갈래로 확장되길 희망했다.



대개의 인간은 필요에 따라 행동한다. 그 필요에 윤리는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기억 투쟁이 어려운 이유다. 타자를 향한 양심적인 행위라기보다, 나(한국 사회)의 필요에 의한 것이어야 가능하다. 한국 사회는 베트남 참전과 만행에 대해 스스로 사과할 필요성과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가.

호미 바바의 말을 빌자면, 기억(re-member)은 사지가 재조합되는 환골탈태의 과정이다. 기억과 용서는 이토록 힘든 일이다. 베트남에 대한 사과.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다른 사회로 변해야 할 절실한 이유가 있는가.
『기억의 전쟁』, p.308


   한편, 모임 운영자로서 전쟁의 역사를 다루는 일에 대한 부담과 모객의 어려움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들불의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면 언제나 내면에서 작은 충돌이 생기는데, 다루기 쉬우면서 동시에 인기가 좋은 주제라서 별다른 홍보 없이도 모객이 쉬운 프로그램으로 진행할 것인지, 내가 지금 필요하다고 여기는 책을 고집스럽게 밀고 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서 생기는 충돌이 바로 그것이다.


   모객이 쉬운 프로그램에는 요즘 트렌드에 맞는 경제서나 인터뷰집, 가볍게 읽기 좋은 에세이집이 있다. 반면, 모객이 어려운 프로그램에는 여성운동의 역사나 페미니즘 이론을 다룬 책, 여성 노동 문제 특히 비정규직 여성이나 중년•노년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 있다.


   들불의 주 타겟층인 밀레니얼 세대가 '나(우리)의 이야기'라고 느끼지 않는 책일수록 모객이 어렵다. 대체로 독서모임 신청은 현재의 '필요'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 당장 필요한 기술이나 내가 현재 갖고 있는 고민들과 닿아 있지 않은 책은 굳이 선택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다루기로 한 데에는 나의 고집만 작용한 것은 아니었다.


   이 책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러니까 제목이나 표지 사진, 홍보 카피만 대충 보고는 여느 역사서처럼 '전쟁에 대한 사실'만 다루는 책처럼 보일지 모른다.  이를테면 전쟁이 언제 발발했고, 몇 명의 한국군이 참전했으며, 그들로 인해 몇 명이 희생당했는지 같은 사실을 나열하는 것에 그치는 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책을 조금만 읽어봐도, 이 책이 서술하는 영역이 '역사 문제'나 '영화 비하인드'에만 국한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그들이 해 온 일을 정리하는 회고집이기도, 카메라 뒤에 선 여성의 몸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며, 생존자와의 만남을 인식하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제언이기도 하다. 책에는 역사적 서술과 피해자들의 증언, 그리고 타인의 고통에 다가설 때 필요한 태도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담겨있고, 또 이 일을 많은 어려움 속에서 진행해야했던 그들의 소명도 배어있다.


촬영자와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들과 영화 속 주인공과 우리는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이미지 작업자를 쉽게 안정시키는 눈에 보이는 확실한 것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내 몸에 맞지 않는 장비로 인한 목과 어깨의 만성적인 통증에 대해, 나의 불안에 대해, 내가 모르는 다른 촬영자들이 가진 다양한 고민에 대해, '촬영자'라는 고정된 역할을 넘어 카메라 뒤의 몸을 함께 노출시키는 이 촬영이 가지고 있을 가능성에 대해 보다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고, 또 그만큼 듣고 싶다. 나는 내가 새로운 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아직 새로운 시선이 되지 못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기억의 전쟁』, p.275


청자가 화자의 삶에 자신을 포갤 수 있다면 증언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공동의 시간과 공간이 된다. 이 공유되는 시간에 대한 책임감과 공동의식을 가지고 있어야아만 생존자를 단순히 살아 있는 증거로, 고정된 사건의 재현으로 반복적으로 소모하는 방식을 피할 수 있다. 그것은 말하자면, 내가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그의 이야기가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 동시에 그의 이야기를 듣는 나의 시간 역시 그의 삶 속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만이 우리가 함께 공유한 시간에 대한 구체적인 책임을 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말하고 듣는 시간 속에서 생존자의 증언은 우리가 공유한 현재가 된다.
『기억의 전쟁』, p.80


   이렇듯 이 책이 하나의 이야기에만 머무르지 않고 여러 영역을 넘나들며 질문을 던지는 '질문의 책'이라는 점이 나를 사로잡았다. 동시대 여성이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느끼는 감각과 문제의식, 그리고 일에 대한 고민과 그 치열함이 한데 얽혀 눅진하게 녹아있는 이 책이야말로 지금 우리와 분명하게 닿아있는 책임에 틀림없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이 책으로 모임을 진행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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