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돈까스
조금 이상하다 생각했다.
외할머니와 친할머니는 두 분다 부산에 사셨는데, 하는 말씀이나 행동 특히 음식이 전혀 달랐다. 어린이 입맛으로는 친할머니의 음식보다는 외할머니의 밥상을 더 좋아했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외할머니의 음식은 항상 맛있었다. 게다가 할머니는 뭔가 먹고 싶다고 말하는 손녀들에게 뚝딱뚝딱 만들어주는 엄청난 솜씨를 가지고 계셨다. 나는 초등학교 진학 전 까지 거의 밥알은 먹지 않고 살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먹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은데다 씹는 것 자체를 귀찮은 것이라 생각했고,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꼭꼭 싶어 맛있게 먹는다는 것은 대단하다고 할 일이었다.
한참을 커서야 친할머니는 전라도에서 나고 자란 어린 아가씨가 부산으로 시집을 오셨기 때문에 음식이 전라도 절반 경상도 절반 섞여있다는 것을 알았다. 할머니는 이제 직접 만들어 주시진 못하지만_사실을 말하자면 할머니와 딱히 그만한 정이 들지 못해서 늘 조금은 서먹한 관계라 할머니도 선뜻 무엇인가를 해주시겠다고 했던 적이없고, 나 또한 왠지 모르게 말하는 것 자체가 불편하여 둘만의 식사시간을 피하기도 했었다. 이젠 그나마도 할머니는 손맛과 입맛을 잃으셨다_그래도 할머니는 만능이시다. 어떤 음식을 만드는 방법, 특히 재료를 손질하는 법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시는 것이 없다. 예를 들면 "내가 어렸을 적에 우리동네에서는 콩잎같은 건 안 먹었는데 그래도 콩잎은 깨끗하게 손질해서 된장에 박아두면 밥반찬하기 참 좋지" 같은 말씀을 하신다.
외할머니의 음식은 달달하고 삼삼하였다. 뭔가 어린 내가 느끼기엔 시골스럽지 않고 세련된 모습이었다. 특히 할머니는 간장에 달달하게 조린 음식을 많이 해주셨었는데, 곤약이나 생선, 우엉과 연근 등을 같이 '얼궈' 주신 반찬은 지금도 좋아하는 반찬 중 하나이다. 지금도 가끔 외할머니 댁에 가면 이 반찬은 항상 빠지지않고 챙겨주신다. 별 맛 없는 곤약을 물컹하지만 금방 씹혀 없어지지 않고 씹을수록 달큰짭조름한 맛이 자꾸만 어른스럽지못하게 편식을 하게 만든다.
몇 년전 어느 날, 오랜만에 외할머니를 뵙기위해 엄마와 동생과 함께 부산으로 가게 되었다. 열시 반 정도에 출발했으니 부산에 도착하면 열 두시 정도가 될 것 같다고 외할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전화를 받으신 할머니는 20대 중반인 큰 손녀에게 초등학생에게 묻듯이
"그래, 점심은 뭐 먹을래? 뭐 먹고 싶노?" 하셨다.
뭘 만드시려고 하시냐고 그냥 나와서 맛있는 거 잡숫자고 하는 나에게 할머니는 빨리 먹고 싶은 것을 말하라고 채근하셨다. 할머니가 손녀들 오는 데 밥은 먹여 보내야 하는 거라고 하시면서 동생을 바꾸라고 하셔서 동생에게 전화를 넘겼다. 동생은 전화를 받자마자
"나 할머니가 해 준 돈까스가 먹고 싶어요" 말했다.
돈까스라니,
할머니가 우리가 생각하는 그 바삭한 돈까스를 아실리도 없지만, 할머니의 작은 부엌에서 하기엔 기름에 지지거나 튀기는 음식은 왠지 고생스러운 느낌이라 전화를 바로 뺏어
"됐어요. 할머니. 어디 우리가 밥 먹으러 가나? 할머니 얼굴보러가지" 라고 말하고는 끊어버렸다.
드디어 도착한 할머니 집 앞은 왠지 기름냄새가 나는 듯 하였다. 실은 나도 동생이 돈까스를 말한 다음부터는 내내 돈까스 생각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할머니의 부엌 식탁 위에는 돼지고기 등심이 밀가루와 계란물을 한 번 씩 입고 마지막 빵가루 옷을 입는 중이었다.
내내 운전을 하며 오신 엄마는 할머니에게 다그치듯이 별일을 다한다고 타박했다. 차에선 할머니가 돈까스를 만들었을까 만들지 않았을까 우리랑 내기까지 했으면서..
제법 뜨거워진 기름에 소금을 몇 알 넣으시고는 파사삭 소리를 내면서 올라오자 돈가스 한 덩어리를 기름에 넣고는 엄마에게,
"잘 봐래이, 젓가락으로 잘 뒤집으면서. 색깔나면 꺼내고 두 번씩 튀겨야 된데이 알쟤" 하시고는 냉장고에서 양배추 한 덩이를 꺼내서 도마 위에 올리고는 곱게 채를 썰기 시작하셨다.
그날의 식사는 각자 큰 접시에 돈까스 한 덩어리와 밥 한 주먹, 그리고 곱게 채 썰린 양배추 산에 케챱드레싱이었다.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그 바삭함과 고소함 그리고 양배추와 케챱의 맛이 아직도 생생하다. 밥을 다 먹고 커피도 마시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차에 다시 탈 때 할머니는 아까 남은 돈까스를 한 장씩 포장하여 통에 담아 주셨다. 서울가서 튀겨 먹으라고, 사서 먹는 것은 몸에 좋지 않다고.
할머니는 처녀시절 일본에서 사신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NHK를 보시면서 혼자 일본말을 하시기도 하고, 음식이 조금 일본스럽다. 할머니의 초밥도 정말 예술인데_야심한 시각에 글로 요리를 만나니 상태가 배가 고프다 정도로는 표현이 모자라다_밥과 고추냉이, 도톰하게 썬 회의 비율이 왠만한 초밥집은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다. 기름 적당히 두른 팬에 구워나오는 얇은 돈까스가 아닌 손가락 한 마디 두께의 등심을 두들겨 바삭하게 튀긴 돈까스.
오늘은 낮에 갑자기 그 할머니의 돈까스가 먹고 싶어 신촌에 나름 맛집이라고 소문난 돈까스 집을 찾아갔다. 물론 돈까스와 생선까스의 맛은 훌륭했다. 하지만 만족하진 못하고 나왔다. 아마도 나는 돈까스가 아니라 손가락에 묻은 빵가루와 능숙하게 양배추를 썰던 할머니가 보고싶었던 모양이다. 요즘은 잔소리쟁이에 뭔가 불안과 불만이 많으셔서 전화도 자주 안하게 되는 그 할머니가.
몸에 나쁜 것 먹지 말고 좋은 것 먹으라고 넉넉하게 만들어 포장까지 예쁘게 해주신 돈까스는 그대로 서울로 가지고와서 맥주안주로 잘 먹었다. 시원한 맥주에 바삭하게 튀긴 돈까스는 참 잘 어울리는구나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