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만들어낸 또 다른 평균
‘Vibe coding’으로 만들어진 웹사이트들을 보다 보면
어딘가에서 본 적 있는 듯한 묘한 기시감을 느끼게 된다.
Inter 폰트, 보라색 계열의 그라데이션, 다크 모드 위에 정갈하게 정렬된 컴포넌트들..
누가 만들었는지, 어떤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는지와 상관없이 결과물들이 닮아 있다.
처음엔 ‘요즘 이런 게 유행인가?’라고 넘겼는데,
비슷비슷한 화면을 몇 번이고 마주하다 보니
이건 취향이나 감각의 문제가 아니라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이제는 전문가가 아니어도, 코드를 몰라도, 디자인을 배운 적이 없어도
누구나 그럴듯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말 그대로 ‘무한한 창의성의 시대’처럼 보인다.
문제는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들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딱히 새롭지도 않다는 점이다.
분명 많은 사람에게 도구의 기회가 열렸지만, 오히려 결과는 한쪽으로 쏠리듯
민주화가 획일화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졌다.
AI 생상형 콘텐츠가 늘어나면서 그중에는 질이 낮고,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결과물도 빠르게 쌓였다.
이런 콘텐츠를 가리켜 ‘AI Slop(AI슬롭)’이라는 표현이 있기도 하다.
(slop은 음식물 찌꺼기·오물·돼지 사료 같은 의미로, AI가 만드는 쓸모없고 값싼 콘텐츠를 설명하는 데 차용)
그렇다면 왜 이런 결과들이 반복해서 만들어지는 걸까.
Distributional Convergence(분포 수렴) 현상
어렵게 들리지만, 이 현상은 AI의 한계라기보다 AI의 작동방식에 가깝다.
AI 모델은 자신이 학습한 방대한 데이터 분포 안에서
가장 확률이 높은 패턴으로 수렴하려는 성질을 가진다.
다시 말해,
가장 많이 등장했고
가장 성공 사례가 많았고
가장 안전했던 조합
쪽으로 답이 추려진다.
예를 들어 ‘모던한 SaaS 웹사이트를 만들어줘' 하면
AI는 수백만 개의 웹사이트 데이터 중 가장 평균적인 조합을 꺼내온다.
그러다 보니 결과가
보라색 그라데이션이 되고, Inter 폰트가 되고, 우리가 이미 여러 번 본 화면이 된다.
AI가 보라색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보라색이 가장 실패하지 않는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AI의 장점은 아마도 압도적인 속도일 것이다.
그런 속도를 내기 위해서 빠르게 답을 찾는 게 필요한데, 그게 바로 '평균'.
가장 많은 사례가 증명했고, 가장 안전하며, 가장 설명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AI를 많이 사용할수록
결과는 점점 더 둥글어지고, 표현은 점점 더 무난해진다.
이건 기획이나 디자인, 아이디어 전반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제는 “AI를 써야 할까?”가 아니라
“AI가 제안한 이 기본값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될까?”를 질문해야 한다.
AI가 만든 초안을 이해하고, 왜 이런 형태가 나왔는지 파악하고,
어디서부터는 의도적으로 어긋나는 선택을 하는 것.
이 판단이 AI 시대 요구되는 디자이너의 역량이 될듯하다.
AI가 만들어낸 보라색의 세상은
완성된 결과라기보다 가장 빠르게 도달할 수 있는 지점에 가깝다.
그 위에서 무엇을 유지할지, 무엇을 지울지,
어디서 일부러 어긋날지는 여전히 사람의 몫으로 남아있다.
어쩌면 AI는 우리에게 창의성을 빼앗은 게 아니라,
판단의 책임을 더 또렷하게 돌려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참고
"AI Slop",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2] David Min, "Why Do AI-Generated Websites All Look Identical?", Medium, Nov 25, 2025.
[3] eric, "획일화되가는 UI디자인. 디자이너에게 위기일까?", Brunch, Jul 29,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