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의 변명

게으름

by 설 jade


나는 달팽이다. 아니, 달팽이보다 못하다. 적어도 달팽이는 목적지를 향해 꾸준히 움직인다. 나는 껍데기에 숨어서 세상이 지나가기만 기다린다.


'나중에'라는 단어가 내 입에서 가장 자주 튀어나온다. 마치 '나중에'라는 시간이 실제로 존재하는 양, '나중의 나'가 지금의 나보다 더 용감할 거라고 믿는 양. 웃긴 건 '나중의 나'도 결국 지금의 나와 똑같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나는 매일 '나중의 나'에게 편지를 쓴다. "안녕, 미래의 나야. 오늘 할 일을 너에게 맡길게. 너는 분명 지금의 나보다 성실하고 용감할 테니까."


기회들이 내 앞을 지나간다. 나는 창문 너머로 그것들을 바라본다. "아, 저거 괜찮네. 근데 지금은 때가 아니야." 언제가 때일까? 별이 일렬로 정렬하고 달이 초승달이 되고 내 통장에 천만 원이 생기고 몸무게가 5킬로 빠지고 영어가 유창해지는 그때?


친구가 묻는다. "요즘 뭐 해?" 나는 대답한다. "음... 이것저것." 이것저것의 정체는 침대에서 천장 응시하기, 냉장고 문 열고 닫기 37회, 유튜브 알고리즘에게 내 시간 헌납하기다.


완벽한 계획을 세운다. A4 용지에 빼곡히 적힌 to-do list. 색깔별로 분류하고, 우선순위를 매기고, 시간까지 배분한다. 그리고 그 종이는 책상 구석에서 다른 종이들과 함께 무덤을 이룬다. 계획은 완벽했다. 실행이 문제였을 뿐.


거울 속 나를 보며 연설한다. "내일부터는 달라질 거야!" 박수까지 쳐준다. 그런데 내일이 되면 어김없이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으니 모레부터"가 된다. 모레는 또 다른 핑계를 준비하고 있다.


실패에 대한 공포가 내 발목을 잡는다. 아니, 발목을 잡는 정도가 아니다. 목까지 조른다.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실패할 일도 없다는 논리. 경주에 참가하지 않으면 꼴찌 할 일도 없다는 안전한 계산. 하지만 1등 할 기회도 없다는 건 계산에 넣지 않았다.


자책이라는 이름의 도구로 나를 때린다. "너는 왜 이렇게 게으르니?" "다른 사람들 봐, 얼마나 부지런한데!" 마치 자책하면 뭔가 달라질 것처럼. 자책은 변화의 연료가 아니라 더 깊은 늪으로 빠뜨리는 추일뿐이다.


동기부여 영상을 본다. "성공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시작하라!" 영상을 보는 순간에는 정말 뭔가 할 것 같다. 가슴이 뛴다. 그런데 영상이 끝나면? 다른 영상을 찾아본다. "진짜 성공하고 싶다면 이것부터 하라!" 결국 동기부여 영상 마니아가 된다. 실천하지는 않고.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머릿속 지식 창고는 가득하다. 동기부여 영상도 수십 개 봤고, 자기 계발서도 몇 권 읽었다. 문제는 지식과 행동 사이에 태평양만 한 간극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변명을 만든다. 창의적이고 정교한 변명을. 변명 만드는 재능만큼은 세계 수준이다. 노벨 변명상이 있다면 수상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그 시상식에도 아마 안 갈 것이다. "그날 일정이 있어서"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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