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by 산책

처음 가진 휴대폰은 이모의 하늘색 휴대폰이다. 80 바이트 화면에, 문자는 다섯 줄 정도 쓸 수 있었나. 지금 쓰는 인터넷 전화기 정도의 크기, 전화를 받으려면 수화기 쪽 폴더를 펼치면 됐다. 그 전화가 갖고 싶었다. 그때 이모는 다발성골수종을 앓고 있었다. 3기였고, 의사가 말한 남은 시간 일 년 육 개월 중, 일 년 3개월을 보내고 있었다. 만약 이모가 죽는다면, 저 전화기는 내가 가질 수 있나,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모는 죽어 가는데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 내가 부끄러워 참을 수 없었지만, 휴대폰은 갖고 싶었다. 그때쯤 삐삐가 사라지고 친구들이 하나 둘 휴대폰, 피씨에스 폰이라고 하는 것을 들고 다닐 때였다. 이모는 정말, 딱 의사의 말 대로 일 년 육 개월을 살고 마흔넷의 삶을 마쳤다. 그리고 휴대폰은 내 것이 되었다. 그게 내가 가진 첫 휴대폰의 기억이다.

그리고 몇 대의 휴대폰을 더 거쳐 지금의 전화기를 쓰고 있다. 스마트폰의 범주이나 브랜드 명으로 통용되는 것, 아이폰을 쓴 지는 8년여 되어 간다. 그간 아이폰 기종을 세 번 바꿨다. 지금 전화기는 세 번째 아이폰이다.

가끔이지만 기계에도 영혼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아침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횡단보도로 걸어가며 머릿속으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어제 듣다 만 노래.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 가 반복되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가 머릿속에서 반복되었는데, 이어폰을 꽂고 음악 어플을 플레이 하자 딱, 그 부분이 흘러나왔다. 뭐야, 이런 인공지능까지 바라지 않았는데, 시리 내 마음까지 읽고 있는 거니. 그러니까 우리의 교감, 아이폰과의 교감이 이렇게 일어나는 순간, 어쩌면 물건도 영혼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 진다.

하루 종일 주머니에, 가방에, 손안에 어딘가 나의 일부처럼 붙어서 함께 하는 이 전화에 영혼이 없다는 것이 더 이상할 수도 있겠다. 나는 이 전화기를 들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말을 한다. 손바닥만 한 이 휴대폰은 나보다 나를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보이고 들려주고 싶어 전화기를 펼쳐 글을 쓰지만, 썼다 지웠다 반복되는 속에서 그 내밀함을 다 들여다보는 아이폰. 내 감정의 굴곡과 이야기를 온전히 받아 끌어안고 있는 전화기. 너는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문득 궁금하다. 내가 널 끌어안고 울던 날, 썼다 지웠던 이야기, 망설이다 끊은 전화, 키득거리며 보낸 메시지. 네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를 안다면, 나 역시 나를 볼 수 있겠다. 네가 보는 나는 내가 보는 나일 테니.

그러나 아이폰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나에게 하지 않는 말과도 같다. 너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말하지 못하는지, 너의 부끄러움은 무엇이고 너의 욕망은 무엇인지.

나는 아이폰을 빌려 말한다. 나는 두렵다. 늙어가는 것이 나이 들어가는 것이. 입 밖으로 뱉지 못하는 말은 그것이 사실이 될까 봐서라고, 젊은 이모의 죽음, 그 나이에 다가가는 나, 내가 두려운 것은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욕망, 갖고 싶은 것들, 질투,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스럽게 굴려는 것, 아닌 척하려는 것. 내가 부단히 나은 사람이라는 공허한 증명.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련과 후회.

이런 것을 아이폰에게 토해낸다. 누군가의 판단이 없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것에.

아이폰에 영혼이 있다면,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다.


아... 이쯤에서 고민이 된다. 이게 내 친구, 영혼의 친구 중 한 명이라고 인정한다면 사춘기 접어드는 십 대 청소년에게 이걸 사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말아야지. 말아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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