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일

by 산책

'그게 울 일이야?'라는 말을 자라면서 많이 듣기도 했고, 반대로 애들 키우면서 많이 하기도 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랬다. 나는 아이들의 울음을 잘 참아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정작 아이의 울음이 나의 신경을 건드리는 지점과 일치할 때 더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게 울 일이야? 너 왜 우는 거야? 뭘 잘했다고?’


어릴 적에 우는 것은 바보 같은 일, 나약한 행동이라고 배웠다. 눈물을 꾹 참고. 캔디 노래 가사를 흥얼거리며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쏟아지는 눈물을 꿀꺽 삼켰다.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어쩌다 한 두 방울 새어 나오는 눈물을 들킬세라 손등으로 재빨리 닦는 민첩함도 함께 키웠다.

그러다 목 놓아 울어도 되는 순간들을 만났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다 울 때. 그때는 나 역시 꺽꺽거리며 울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1학년, 성수대교 사고로 같은 학교 아이들 십여 명을 잃고 학교에서 열린 추모식 때. 그리고 이모의 장례식장. 화장터에서.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울었다. 상실의 시간.

그리고 좌절의 시간, 수능 시험 치고 다음 날 아침 신문을 펼쳐 두고 채점할 때도 울었다. 완벽한 좌절.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을 때임을 직감한 이의 좌절, 인생의 실패. 그때도 울었다.

조금 더 크고 나서는 아름다움 앞에서도 울었다. 언젠가, 파리의 오랑쥬리 미술관에 간 적이 있다. 모네의 수련이 둥글게 펼쳐진 공간에 들어섰을 때 나를 압도하는 아름다움에 숨 죽여 울었다. 여기 서서, 이 그림과 이 공기를 느끼려고 열 시간을 날아왔구나.

죽음과 상실, 좌절의 시간과 아름다움 앞에서 울음을 쏟아 내고 나니 이제 다시 어느 때 울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기우였다.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 인생의 알 수 없음에서 나는 울었다.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몇 년 전 시어머님께서 뇌출혈로 쓰러지셨을 때, 올 초에 친정아버지가 호흡 곤란으로 쓰러졌을 때, 나는 상실이 아닌 두려움에 울었다. 여전히 남아 있는 어려움, 운명의 일격, 되받아치지도 피하지도 못하는 나약한 인간. 그 모든 것을 온전히 받아내야 하는 인간의 모습 앞에서, 많은 것이 두려웠다. 앞으로도 내 생이 계속된다면 마주해야 할 이런 일들이 무서웠다. 금요일에 있을 점심 약속 얘기를 나눈 지 불과 서너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몇 시간 뒤 시어머님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아득한 무의식의 세계로 눈을 감은 채 일 년 반을 누워 계시다 돌아가셨다. 심장 초음파를 마치고 대기 의자에 나란히 앉아 ‘아빠, 힘들어요?’라는 내 물음에 대답 대신 가슴을 잡고 자줏빛의 얼굴로 쓰러진 아버지를 보며 나는 무서웠다. 얼마나 많은 사건이 남았단 말인가. 이 두려움은 왜 내 몫인가. 오직 혼자 이 모든 것을 목도하고 감내해야 하는 나의 운명이 무서웠다. 나는 엉엉 울면서 왼쪽 엄지손톱과 오른쪽 엄지손톱을 번갈아가며, 손등을 깊게 찍었다. 아픔으로 두려움을 잊고 싶었다. 그러나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눈물도 줄지 않았다. 온몸의 물기를 다 쏟아낸다 해도 멈출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왜 울어, 이 까짓게 울 일이야?' 속에는 슬플 것도 억울할 것도 없는 일에 울어야겠니, 같은 마음에서 아이들에게 화를 냈다. 그러나 이제 알겠다. 그들은 두렵고 무서운 것이다. 삶의 낯섦이, 마치 하루아침에 등을 돌린 애인의 그것 같아서 눈물이 나는 것이다. 아무리 매달려도 마음을 잡을 수는 없는 돌아선 애인 같아서, 사랑이 끝났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알 수 없는 잘못을 되짚어 보고,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안타까워서. 그 모든 사실을 다 알지 못하지만, 그저 본능적으로 느끼는 두려움에 눈물이 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슬프고 억울하고 마음아파서만 우는 것은 아니다. 그러고 보면 사는 일은 우는 일과 다름없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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