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어려움

by 산책

며칠 전에도 모여서 쓰기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글이 좀처럼 써지지 않는다. 머리에 기름칠하고 손가락에 모터 달린 것처럼 마구 쓰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렇지만 혼자 앉아 노트북을 펼치면 깜박이는 커서만 한참 바라본다. 노래를 듣다가 유튜브에서 짤막한 영상 들여다보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넘어간다. 그래서 결국 쓰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한 자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노트북을 덮는다.

얼마 전에 소설을 쓰고 싶다면, 이란 제임스 설터의 책을 읽었다. 노작가도 고백하긴 했다. 매일 잘 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체로 대부분이 형편없는 작업물이라고. 아, 그렇지만 그 매일이 내 발목을 잡는다.

요즘의 어려움은 그런 것들이다. 쓰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소설인데 그걸 못 쓰고 있다. 목소리, 상실, 사라진 것에 대한 이야기. 지지부진하다. 한없는 설명만이 이어지는 이 이야기를 계속하다 보니 읽다 지친다. 결국 내가 지쳐 못 쓰고 있다. 그리고 한계. 자꾸만 보게 되는 부족함들. 뭔가를 쓰다 보면 알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알고 있는 게 없다. 그러니까 이야기를 상상만으로 꾸민다는 것은 정말이지 불가능한 일이다. 나에게는. 그런데 금방 고파가 이야기해줬다. 고파의 딸 역시 소설을 쓰는데 그게 그렇게 재미있다고 했단다. 와, 놀라워. 찌들고 찌든 어른이 된 것일까. 나사에 찌든 때가 잔뜩 낀 태엽일까. 그래도 이야기를 상상하면 즐겁다. 그러나 한없이 즐겁게 이야기를 상상하다가 막상 타자를 치려고 앉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괴롭다. 아까도 친구와의 약속을 한 시간 여 앞두고 나와 뭔가를 써보려고 했으나 생각나는 단어의 나열로 그치고 말았다.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는가, 아니면 어려움이 스스로 지치게 내버려두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했다. 극복의 대상이라면 노력하면 될 테고, 어려움이 저 혼자 나가떨어지게 만들려면, 그렇다면 무관심하면 될까. 무관심하겠단 말은 아예 상대를 안 하겠다는 것이 될 테고, 그럼 그냥 시도 자체, 어려울 상황으로의 진입을 하지 않으면 되겠다. 아, 그렇지만 쓰겠다고 했으면 써야지. 의지라는 것이 또 발목을 잡는다. 그러면 이 긴긴 인생 뭐하고 살 건데.


어려워서 그만둔 것들이 있다. 글쓰기가 그랬고 공부가 그랬다. 때가 있는 법이란 말도 믿는다. 그때 어려웠던 것들이 지금은 쉬울 수도 있다. 어느 순간, 임계점에 다다르면 그 상태를 유지하다 도약. 경험으로 알고 있다. 반복하다 보면 얻어지는 것이 분명 있다. 성장이라는 것, 어느 순간 훌쩍 자라 있는 그런 것. 그러고 보니까 어려움은 극복의 대상도 무관심할 대상도 아니고, 그냥 다독여야 할 마음 같다. 자자, 잘 가보자. 철들 때까지. 그렇게 같이 가다 보면 어느새 나도 크고 어려움도 줄어들고, 그런 것이 아닐까.

요즘의 어려움을 어떻게 다독여야 할지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별 수 없다. 쓰는 것. 읽는 것. 부족한 것을 채우는 것. 그렇게 해야 어디로든 향할 수 있다. 막연하고 막막하지만 북극성 하나 보고 바닷길을 가르는 배처럼. 까맣고 까맣기 만한 망망대해를 건넌다.

지금은 그래도 훨씬 낫다. 같이 노래 불러주는 친구들이 있다. 내 앞에서 타자를 두드리는 글쓰기 동료들이 있다.

요즘 하는 일 중 하나가 고등학교 수학책을 푸는 것인데 사전 읽기를 추가해야겠다. 글은 언제 쓰지. 산책은 언제 하고, 책은 또 언제 읽고, 커피는 언제 마셔! 하루가 너무 촘촘하다!

어려움에게 빈자리를 조금만 내어주기 위해 바삐 움직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 다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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