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꺼내야 할 것, 젊음

by 산책

비누를 선물 받은 그녀는 언젠가 좋은 날이 오면, 빚더미와 끝없는 하향세의 인생에서 좋은 운을 만나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게 되는 날이 오면, 그 비누를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서랍을 열었을 때 비누는 산산이 바스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알았다. 자신은 그 비누를 영영 쓸 수 없을 운명이라고. 자신에게 그런 행운은 오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오지 않을 거라고.


존 치버의 단편 '황금 단지'에서 주인공을 스쳐 지나가는 한 여인의 이야기다. 여인의 절규에 가까운 외침에서 나는 나를 발견했다. 인생의 좋은 날, 화양연화를 기다리며 모든 것을 묵혀두고 있는 지금의 나를 말이다.

오늘보다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거라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아직 젊기 때문이리라. 오늘도 내일도 꽃 같을 거라 믿을 수 있는 것은 오늘도 내일도 파릇할 수 있는 젊음이 있고, 그것은 공기만큼 당연하게 존재하는 것이므로 사라진다는 건 상상 조차 해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주름의 흔적을 거울에서 발견한다고 해도, 새치의 잔영을 보았다고 해도 여전히 인정하지 못하는 나이 듦은 아직 내 안의 어딘가에 젊음이 존재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일은 오늘 보다 잘 나갈 수 있어, 라는 다짐이 가능한 것도 물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경력이 단절된 어느 때에 여자는 문득 알게 된다. 이제 나에게 있어 (어떤 면에서는) 그때보다 잘 나갈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순차에 따라 승진을 하다가 구조조정과 퇴사 후 자영업으로 전환한 친구 소식을 연달아 듣게 되는 어느 날 남자는 문득 느낄지도 모른다. (어떤 면으로) 더 나아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지금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차다고.

인생의 화양연화, 호시절은 우리가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지나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지금이 가장 꽃 같은 때라는 것. 내일보다 오늘 더 젊은 날이라는 것.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때라는 것.

서랍 속에서 세월에 바스러져 버리고 있는 비누를 꺼내야 할 때다. 아껴둘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늘 쓰지 않으면, 오늘 꺼내 입지 않으면 모두 묵은 것이 될 뿐이다. 아이의 기저귀를 대여섯 번씩 갈아주고 상사에게 깨져도 오늘이 호시절이니까. 더 젊고 더 잘 나가는 날은 오지 않는다. 젊음은 그렇게 시시각각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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