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youth'를 보면 작곡가인 프레드의 딸이 자신의 아버지와 친구인 영화감독 믹의 관계에서 '이상한 점'을 묻는 장면이 나온다. 30년이 넘게 친구였으면서 대체 왜 인생의 깊은 것을 공유하지 않는지. 프레드는 대답한다. '서로 좋은 것만 이야기해야 좋은 우정'이라고.
얼마 전, 친구의 고민에 이런저런 충고와 조언을 건넸다. 나는 이미 말을 뱉었고 받아들일지 아닐지는 모두 그의 몫이란 걸 알면서도 내심 그가 나의 충고에 따르기를 바랐다. 그러나 대체로 대부분의 경우가 그러하듯 그 친구 마음속에는 이미 답이 정해져 있었고, 친구는 자신이 생각한 대로 일을 처리했다. 결과는, 그 친구를 보며 '고거 쌤통 이다. 거봐, 내 말 안 들으니까 그렇게 됐지?' 까지 바라는 건 아니지만, 뭐 비슷하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진심이 통하는 거리는 어디까지 일까? 그리고 그것이 진심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지표는 뭘까?
'진짜야, 진심이야'라는 말이 순도 100%의 것인지 알아내는 지시약을 나는 모른다. 나의 어쭙잖은 충고는 그저 오지랖의 결과 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오지랖은 어쩌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고 싶은, 그에게 까지 권력을 뻗고 싶은 욕심일지 모른다.
대부분 사람들은 타인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충고나 조언 이전에 마음속으로 생각한 대로 일을 처리하게 된다. 이건 굳이 묻는 이가 잘못한 건 아니다. 그는 단지 자신의 마음에 확신을 좀 더 얻고 싶었을 뿐이니까. 생각은 갈래가 여러 길이고 어떤 것이 그나마 나은지는 일어나 봐야 아는 것이니까. 그리고 겪어봐야 더 절감하는 것이므로 아무리 진심을 담아 충고와 조언을 해도 상대는 절대 알 수 없다. 깨닫기 전까지는 말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해서는 안 될 말이 하나 있다면 그건 '잔소리'라고 한다. 잔소리를 하면 할수록 사이는 점점 멀어지는 법이라고 했다. '하나부터 열 까지 다 널 위한 소리'라는 건 잔소리를 하는 사람의 부재 시에만 알아차릴 수 있다. 그가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그가 나에게 했던 충고와 조언과 잔소리와 거기에 더한 진심들이다. 그러니 관계가 좋은 쪽으로 유지되길 원한다면 생각한 것은 생각한 대로 하게 두고, 충고라고 여겨지는 것들은 그저 마음에만 담아두고 딱, 거기까지의 적정 거리를 지키는 게 낫지 않을까. 내 충고를 듣지 않아서 생긴 불행에 쌤통이다 고소해하지 않아도 되고, 그의 말을 들을 걸 하는 후회를 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오래 친구하고 싶다면 그렇게 선을 지키는 것, 그게 어쩌면 진심의 거리일 지도 모르겠다. 어떤 충고도 하지 않고 어떤 충고도 원치 않는 것, 당신을 오래 알아가고 싶다는 진심의 거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