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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라 Nov 01. 2022

내 이름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청소년 문학 <유원>을 읽고 필사와 사색 - 이름

태어나보니 나는 김미라였다. 내 이름에 대한 선택권은 없었다. 딱딱하고 정감 없는 이름. 소리 내어 발음해보아도 데구루루 굴러갈 거 같은 동그란 느낌이 아니라 네모 반듯한 사각의 느낌이다. 왜 내 이름에는 동그라미가 없을까? 그래서 더 딱딱하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 명확하고 분명한, 융통성 없는 내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아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이름과 성격이 비슷한 느낌이라서. 


‘김미라’라는 이름에 좋은 의미를 담겨 있길 바랐다. 어릴 적 엄마에게 '미라'라는 이름의 의미를 물어보면 엄마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라고 말을 돌렸다. 엄마도 정확한 뜻은 몰랐나 보다. 한자를 알게 된 후에는 “미라”에 담긴 뜻을 찾아보았다. 아름다울 미. 벌일 라. 한자로도 도통 정확한 의미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때때로 나 혼자만의 해석을 했다. 아름다움을 널리 펼쳐라! 무엇이든 아름다움을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예정이가 너 오랫동안 기다렸거든. 유치원 때부터, 한자로 원할 원에다가 영어로도 원트는 바라다는 뜻이라면서 꼭 유원이어야 한다고 했어.”   - 소설 <유원> 202쪽


아파트 화재 속에서 언니 덕분에 살아남은 아이, 유원은 언니 예정의 그늘 속에서 살아간다. 마치 언니의 목숨을 대신 이어가는 것처럼. 또한 유원은 ‘아파트 11층에서 떨어졌는데 멀쩡한 이불 아기’ 혹은 ‘은정동 참사 유일한 생존자’이다. 사람들은 유원에게 언니처럼 공부도 잘하고 착한 사람이 되기를, 언니 희생 덕에 살았으니 마땅한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가길 바란다. 차곡차곡 유원의 마음속에 쌓이고 있는 언니에 대한 원망. 언니 예정이 원해서 태어난 아이 유원은 자신을 구한 언니가 미웠다.     


하지만 유원은 이제 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언니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언니에게도 사나운 면이 있고 자신 안에 숨겨진 포악함과 과격함 또한 언니에게도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언니는 자신을 사랑해왔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은 언니 예정이 아니라, 유원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제 그녀는 용기를 내어 높은 곳에 올라설 수 있다.     


“수현아, 나 할 말이 있어. 내 이름의 뜻이 뭔지 알아?” 

“뭔데?”

“원하다 할 때 원이야. 원하다. 희망하다. 그런 뜻이야. 원(願)” 

“그래서?”

“언니가 나를 원했대. 엄청 기다렸대. 그래서 원이라고 지은 거래.” 

“대단하네.”     - 소설 <유원> 277쪽




유원이 자신의 이름을 사랑하게 된 순간, 나는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제 나 또한 '김미라'라는 이름을 사랑한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나, 약속을 지키려 노력하는 나, 우리의 울타리를 지켜가려는 반듯한 나를 사랑한다. 


반듯한 ‘김미라’ 앞에 동그란 수식어를 붙여주어 네모와 동그라미를 넘나 들 수 있는 홍연한 김미라. ‘홍연한’은 나 자신에게 붙여준 수식어다. 넓고 깊다는 뜻의 ‘홍연하다’에서 가져왔다. 앞으로도 나의 이름 앞에는 나를 빛나게 해 줄 많은 수식어가 붙을 것이다. 김미라. 내 이름을 사랑한 순간 나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이제 나는 사랑하는 “김미라”라는 책을 한 장씩 채워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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