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미라 Nov 10. 2022

언제나 'somebody'

청소년 문학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 필사와 사색-somebody

존재감 없으면 어때? noboby면 어때? 그게 나야. 뭐 어쩌라고!

나는 ‘nobody’이기도 하지만 ‘somebody’가 될 수도 있다. 내가 왜 존중받지 못하고 살아야 하지? 싫다. 

-소설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 171쪽     




남들에게도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디서든 누구나 찾는 사람, 인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존재감 없는 내가 싫었고 나의 색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싶었다. 어릴 적  나는 열렬한 somebody가 되고 싶었다.    

 

그런 반면 쉽게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진 못했다. 때때로 다른 사람과의 교류가 불편했다. 혼자만의 세상에서 안전하게 머물고 싶었다. 다른 사람과 주고받는 것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내 마음을 답답하게 했다. 그럴 때면 속으로 ‘존재감 없으면 어때? noboby면 어때? 그게 나야. 뭐 어쩌라고!’ 소설 속 다현이처럼 외치며 스스로 위안했다. 



학창 시절을 생각해보면 깊게 사귄 단짝 친구가 없다. 등하교를 함께 하는 친구, 밥을 함께 먹는 친구는 있었지만, 주말에 약속을 정하고 따로 만나는 친구는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한 그룹으로 어울리며 친구의 시골 할머니 댁에 여행을 가고 생일이면 축하해주던 친구들은 있었지만, 졸업 후에도 연락이 이어지진 않았다. 초, 중, 고 시절의 나는 참 외로웠다. 쓸쓸했다. 부풀리고 과장해서 나를 설명하고 나의 생각을 거침없이 말했다. 

     



5학년 때 그 사건 이후에도 몇 번 더 은따 분위기를 겪었다.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나에 관한 말, 그것은 내가 잘난 체하며 따지기를 좋아한다는 거였다.

나는 그때그때 내가 하는 생각을 말하고 싶다. 내가 잘한 것도 드러내고 자랑하고 싶다. 잘 모르겠다. 왜 인간이 겸손해야 하는지. 그건 위선 아닌가?

하지만 그 이후 나는 절대 나대지 않고 어떻게든 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따지고 싶은 일이 생겨도 말로 내뱉기 전에 꿀꺽 생각을 삼켰다. 

-소설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 32쪽     




소설 속 다현이는 마치 나의 학창 시절 같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학교 본관 건물 뒤에 조그마한 창고가 있었다. 어느 날인가 친구들이 점심시간에 그 창고로 나를 불렀다. 그러고는 쭉 둘러앉아 그동안 내가 했던 말에 기분이 나빴던 점을 한 명씩 돌아가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친구들이 어떤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진 않지만 그날의 분위기, 감정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때의 난 친구들에게 내 생각을 거침없이 말했을 것이다. 아마 잘난 체하며 따지지 않았을까?   

 

같은 해의 일이다.  하루는 담임 선생님께서 전날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학교에 출근하셨다. 선생님은 힘들다며 교사 휴게실에 누워계셨고 내가 교실에서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며 수업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하교 무렵에 선생님이 교실에 오셨을 때, 나는 선생님께 “선생님이면 이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며 쏘아붙였다. 그때 나의 말을 듣고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 고개를 푹 숙이던 선생님이 생각난다. 나의 행동 때문에 교실 분위기는 침묵, 불안의 상태였다. 다른 아이들은 가만히 있는데 나는 왜 그랬을까? 아이들은 원망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초등 6학년을 보낸 후 나의 친구 관계는 조심스러워졌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친구들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었던 것도 온전히 나를 드러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나무들처럼 혼자야. 좋은 친구라면 서로에게 햇살이 되어 주고 바람이 되어 주면 돼. 독립된 나무로 자라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 그러다 보면 과제할 때 너희처럼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봉사활동이나 마을 밥집 가면 거기서 또 멋진 친구들을 만나. 그럼 됐지 뭐.” 

-소설: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 157쪽     

 

몇 번의 은따를 겪은 다현이는 다시 또 친구를 잃을까 봐 전전긍긍한다. 선물을 나눠 주고, 눈치를 보고, 힘든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자신을 무시하는 친구들의 태도도 묵인한다. 그런 다현에게 나타난 새로운 친구 은유. 은유는 친구라면 햇살과 바람처럼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 독립된 나무로 잘 자랄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은유 덕분에 다현이는 스스로 나무로 우뚝 서고자 마음먹는다. 때론 바람이 불어 흔들릴 테지만 그럴수록 나무의 이파리는 더 파래지고 뿌리도 단단해지리라 믿으면서. 온전히 자신에게 집증 하기로 한 것이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나에게 집중하기' '나를 존중하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그렇게 나의 나무가 튼튼히 자라 이제는 누군가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고 기대어 쉴 수 있는 기둥이 되었다. 덕분에 나의 곁에는 하나 둘 나무가 모여 자라났고 이제는 조그마한 숲을 꿈꾼다. 나는 내 곁에 있는 나무들에게 언제나 'somebody'다. 그리고 내 곁에 있는 나무들 또한 나의 소중한 'somebody'다.  



작가의 이전글 '초보 엄마' 딱지를 떼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