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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선화 May 20. 2018

6.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

<관계의 물리학>

‘시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관계라는 우주의 법칙’이라니, 참으로 설레는 책 설명이 아닐 수 없다.

림태주 시인의 <관계의 물리학>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흐르는 감정, 나와 나 자신의 간극에 집중한 하나의 ‘관계학개론’ 책이다. 인간이라면 그 뜻에 이미 ‘사이(間)’가 내포되어 있듯 누구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대놓고 ‘어떻게 하면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까?’처럼 고민하진 않더라도, 일상 속에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면서 지나가듯 그 관계에 대해 조금이라도 고민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차마 들여다보지 못했던 관계의 섬세한 솜털 하나하나를 감성적이고 흥미롭게 풀어낸 감성 에세이다.     

나는 최근에 특히 인간관계와 행복에 대한 고찰을 하는 데 시간을 쏟았던 터라 이 책의 1부 ‘관계의 날씨’와 3부 ‘행복의 질량’을 더 신경 써서 읽어보았다.     


‘말의 화살은 쏜 사람에게는 흔적이 없지만 과녁에 선명한 자국을 남긴다. 때로 어떤 말은 하는 자가 아니라 듣는 자의 소유가 된다.’

‘당신도 나도 살아가면서 이것 하나만은 잊지 않아야 한다. 어떤 사람의 심장에 보관된 말은 소멸시효가 없다. 심장에 박힌 상처의 말은 화살의 주인과 상관없이 한 존재의 일생을 잔인하게 갉아먹는다. 당신이 유채 꽃밭이나 라벤더 꽃밭을 구경하고 싶다면 씨앗 한 낱이면 충분하다. 당신의 행성에 무슨 씨앗을 퍼트릴지는 당신이 입 안에 넣고 다니는 혀에 달렸다.’     


비가 참 많이 왔던 토요일, 나는 그날 엄마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비가 와서 예민해졌다는 상황을 핑계 삼아 해선 안 되는 말을 한 것이다. 아직도 그때 보았던 엄마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제대로 된 사과도 못한 채 다음날이 되었고, 나는 이 책을 읽다가 심히 가슴에 찔리는 문장들을 발견하고 말았다. 그렇다, 나는 엄마에게 날카로운 말의 화살을 쏘았던 것이다. 화살을 쏜 순간, 화살은 내 손에서 떠난다. 하지만 그 화살은 고스란히 과녁, 즉 상대방에게 꽂힌다. 뽑아낸다고 해도 그 흔적은 절대 지울 수 없다. 그리고 눈물을 자극한 한 마디. ‘심장에 박힌 상처의 말은 화살의 주인과 상관없이 한 존재의 일생을 잔인하게 갉아먹는다’. 나는 곧바로 사진을 찍어 엄마에게 보냈다. 엄마가 느꼈을 고통을 제대로 느끼게 해준 <관계의 물리학>이었다. 간신히 이성을 되찾고 엄마에게 사과도 드렸다. 아, 난 대체 언제쯤 제대로 된 효도를 할 수 있을까?     


‘오랜 친구란 단순하게 긴 발효의 시간을 견딘 것만으로 붙여지는 이름은 아닐 것이다. 그 관계 안에는 갖가지 불순한 효모들과 잡균들이 섞여든다. 향기로운 빵을 얻을 때처럼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껴안으며 나 자신 또한 기꺼이 발효되기를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된장뚝배기 같은 우정은 그렇게 얻어지는 것이다.’    


된장뚝배기 같은 우정! 표현이 신선하고 좋아서 당장 떠오르는 한 친구에게 보내주었다. 그러자 친구는 “된뚝우정인가”라며 재치 있게 답해주었다. 이 친구는 중학교에서 처음 만난 친구이며, 요즘에도 만나면 기본으로 수다 두 세 시간은 거뜬히 나눌 수 있는 ‘베스트프렌드’이다.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하기는커녕 세상에서 제일 반가울 정도로 친하다. 이 친구와 함께했던 길을 떠올려보면 참으로 파란만장했다. 철없던 중학생 시절, 사소한 일로도 서로 삐지는 일이 많았고 괜히 괴롭히기도 하면서 사이좋게 ‘흑역사’를 나누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불안정한 그 시기를 함께 보낸 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큰 위로가 된다. 또한 각자 성장해가고 변화하는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참 잘 컸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이이다. 정말 우리야 말로 된장뚝배기 같은 우정을 지닌 사이가 아닌가 싶다. 앞으로도 그 친구가 어떤 모습이든 친구로서 아껴줄 것이다. 그 친구도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감정 관리는 자기 자신과 당당하게 마주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끊임없는 걱정과 고민들, 고통과 상처의 기억들로부터 도망치지 않아야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 삶에서 가장 큰 용기를 필요로 할 때는 자신의 내면을 정면으로 응시해야 하는 때이다.’     


나는 도피에는 선수이다. 무언가 걱정되거나 고통스러운 일과 마주할 때, 가장 먼저 하는 게 일단 도망가는 것이다. 좋아하는 연예인이라든지 재미있는 영상을 보며 나를 비우려 애쓴다. 하지만 나를 괴롭히는 것들은 이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다. 도피를 마친 후 돌아오면 다시 좌절한다. 사실 나는 내가 제일 무섭다. 분명히 나는 나인데, 어쩔 땐 그 누구보다도 낯설 게 느껴진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일도 나를 거치면 엄청난 무게를 가지게 된다. 가끔은 지겨웠다.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힘겹게 살고 있는 것 같은 스스로에게 지쳤다.

책을 읽다가 감정 관리와 행복이 이어진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내가 가장 자신 없는 감정 관리! 책에서 ‘자기 자신과 사귀는 법을 모르고 사는 어른’이 바로 나인 것 같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만 전전긍긍하고 정작 나를 방치한 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면 어차피 쉽게 사라지지 않을 나의 감정인데, 처음부터 정정당당하게 마주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피해봤자 그 감정과의 만남을 미루는 것에 불과하다. 이를 인식하고부터는 내 마음에 불청객이 찾아왔을 때 바로 외면하지 않고 글로 써보고 있다. 써보고 나니 생각보다 두렵지 않았고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이 외에도 주옥같은 문장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책을 넘기던 손을 멈추게 하고 생각에 잠기도록 해주는 페이지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보고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면 글귀를 찍어 보내주며 마음을 표현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나 자신의 소중함도 꼭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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