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하는 우리는 아름답다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
이것은 공감의 사전적 정의입니다.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으면서 느꼈듯 누군가와의 공통분모는 곧 대화로 이어지며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합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어도 겪고 있는 상황, 어떠한 주제에 대한 의견 등이 통했을 때 더 친밀하게 느껴지고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커뮤니티나 SNS에서 흔히 보이는 '솔로 탈출 매뉴얼'에도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상대방의 말에 호응을 잘 해주는, 즉 공감하는 태도입니다. 잘되고 싶은 사람과 만났을 때, 공감을 통해 대화를 열심히 이어나갔던 기억이 있으실 것입니다. 물론 인위적이고 전략적으로 공감하려는 태도를 취할 수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자신도 상대방과 같은 걸 느낀다고 말하는 순간 소통의 스파크가 생깁니다. 공감은 대단한 위력을 지닙니다. 우리는 공감을 통해 친구도 사귀고, 애인도 사귀고, 더 나아가 낯선 사람들과도 인연을 맺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공감을 통해 위로도 느낄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즐거우면서도 참 힘든 일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매뉴얼이 없습니다. 특히 성인이 되고나서부터는 우리가 직접 스테이지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더욱 넓은 선택지가 존재하며 우리는 스스로 선택하며 삶이라는 게임을 진행해야 합니다. 대학이 아닌 다른 길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대부분 대학교 진학만을 목표로 삼아 열심히 달려 기껏 대학에 왔건만, 취업은 기본이요 연애, 경제적 문제, 더 넓은 인간관계, 쌓아야 하는 스펙 등등이 우릴 기다리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게 마냥 쉬울 리가 없습니다. 쉽게 지치는 몸과 마음에 비해, 기댈 곳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공감은 당장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마음의 해소는 가능합니다. 누군가 나와 같은 걸 느끼고 겪고 있다는 사실에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에 위안을 느끼기도 하고, 내 마음을 헤아려주는 듯한 기분이 들어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 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제 작가명인 '수선화'는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라는 시에서 따온 것입니다. 저는 평소에 외로움을 많이 느낍니다. 분명 이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닌데, 나는 혼자입니다. 가끔은 소중한 사람들이 나를 전부 떠날 것만 같은 생각에 불안해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가끔 제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외로움이 마치 와서는 안 될 불청객처럼 느껴지는 게 다반사였습니다. 하지만 이 시를 알게 되고, 저는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시의 시작부터 제 마음을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처음에 읽고 바로 공감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곱씹어 생각해보니, 외로움이란 사람으로서 느낄 수밖에 없는 감정이라는 걸 새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라는 행은 연락에 집착하여 마음 졸였던 제 모습을 떠올리게 하였습니다. 참 신기하게도 저는 이 시를 읽으면서 그동안 제가 생각해왔던 것들이 무너짐을 느끼는 동시에 '강력한 공감'을 얻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인이 이런 시를 썼다는 것은 외로움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시인에게 직접 위로를 받는 느낌을 얻었습니다. 정호승 시인에 대해 관심을 가져 검색해 알게 되었던 사실인데, 정호승 시인은 네이버 인터뷰에서 사람들의 마음에 어떠한 위안과 평화가 있길 바라는 마음에 시를 쓴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더더욱 감동을 받았습니다.
정호승 시인에 영감을 얻어, 저는 고등학생 때부터 시를 쓰는 취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하고 풍부한 감정을 느끼진 못하는 탓에, 만족스럽다고 느껴지는 시는 거의 없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고등학교 때 문예부였고 현재 국어국문학과 학생이니 주위 사람들이 제게 가지는 재밌는 선입견 -글을 잘 쓸 것 같다든지 감성이 풍부할 것 같다든지- 이 있기에 꾸준히 어디엔가 글을 남기고는 있습니다. 가끔 마음이 맞는 친구들에게는 선뜻 제 시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저는 감동을 받습니다. 제 시를 통해 공감을 느꼈다는 반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약속
힘겹게 봉합된 눈을 뜨고
오랜만에 멀리 나가
친구 두 녀석과 오늘을 나누었다.
반가워 살랑살랑 만났어도
결국은 흔들흔들, 가려진 날들을 주제로
각자 악필로 쓴 생각들을 돌려가며 읽어주다 헤어졌다.
그래도 우리는
반드시 다가올 기념일을 기다리는 천진난만한 아이가 되기로
웃으며 약속하였다.
최근에 제가 썼던 시 '약속'은 오랜만에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을 만난 후 느낀 점을 토대로 쓴 시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오늘 급식은 무엇인가', '내일까지 해야 하는 숙제는 무엇인가'와 같은 주제로 재잘거리던 저와 친구들은 이제 성인이 되어 새롭게 떠안게 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까', '내 목표가 과연 이루어질까', '애인을 만날 수나 있을까' 등등 지금으로서는 전혀 알 수 없는 주제들 투성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반가워 추억여행을 떠났지만. 곧 암울하다며 다들 한탄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쓸쓸한 마음으로 헤어졌지만 그래도 우리는 모두 비슷한 처지임에 공감하며 위로해주며 서로의 꿈을 응원해주었습니다. 반드시 이루어질 거라고 말이죠. 제가 쓴 마지막 연이 말하는 바가 바로 희망입니다. 달력에 쓰여있는 각종 기념일들은 매년 반드시 우리를 찾아옵니다. 그리고 우리는 커갈수록 이에 대해 점점 무감각해지지만, 순수한 아이들은 여러 이유들로 기념일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곤 합니다. 이렇듯 우리가 바라는 미래도 꼭 올 것이니,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며 열심히 살자는 바람을 제 마지막 연에 담았습니다. 이 시를 제 고등학교 친구에게 보여준 적이 있는데, 그 친구가 공감을 받았고 감동받았다며 말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의 공감을 통해 저 또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로 인해 공감을 느낀 사람을 보며 내가 위로를 받을 수 있다'를 느꼈던 것입니다. 제 시를 통해 공감을 얻은 친구로부터 제가 위로를 받아, 이를 시작으로 또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더욱 보듬어주게 되었습니다.
지금 공감에 대한 제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도 공감을 느끼셨을지도 모릅니다. 그 공감이 위로로 이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공감이라는 따뜻함으로, 살아가며 느끼는 추위를 녹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생각보다 공감은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