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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이재 Dec 31. 2020

"괜찮아. 그럴 수도 있어"라는 말이 필요할 때

[문선종 사회복지사의 실존육아] “그래 지금은 그럴 수 있어. 괜찮아”

15년간 현장에서 상담을 하며 ‘인지정서행동치료기법’을 많이 활용했다. 대게 아이들은 독특한 신념에 따라 지식을 배우고, 일정한 가치를 만들어내는데 간혹 잘못된 신념을 가진 아이들을 만난다.


예를 들어 “난 뭘 해도 안 돼”라던가 “난 잘하는 게 하나도 없어”, “나는 쓸모없는 아이야”라는 것이다. 비단 아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2021년을 하루 앞둔 상황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부정적인 신념을 가진 아이들에게 “괜찮아. 그럴 수도 있어”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서다.


◇ 인간의 신념은 정서와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코로나 19 상황이 계속되며 자기 패배적 신념이 깊어진다.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pexels

합리적 정서적 치료의 핵심은 ‘인간의 신념이 정서와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앨버트 엘리스(Albert Ellis)가 이론을 정립했으며 '합리적'이라는 것은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는 감정과 행동을 만든다는 뜻이다. 그는 사실을 왜곡하고 정서적 혼란을 일으키는 인간의 경향성에 주목했다. 나는 실제로 현장에서 자기 패배적 신념으로 고통을 겪는 아이들을 만난 적이 있다. ‘나는 반드시 ~을 해야 한다’, ‘반드시 나는 ~이어야 한다’라는 신념은 아이들이 원하는 소망을 이루지 못했을 때 생기는 불쾌감, 걱정, 불안을 막기 위한 것으로 어떻게 보면 타인과의 관계를 위한 적절한 정서가 될 수 있다.


새 학기가 됐을 때 소외될까 두려워 나와 맞는 친구를 찾고, 무리 속에 들어가기 위해 교실 정치를 하기도 한다.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많다. 외모와 성적, 선생님과의 관계 등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면 차라리 되돌아가지 않는 편이 더 나아 보인다. 이런 관계 속에서 좌절을 겪을 때 자기 패배적 신념을 갖게 된다. ‘나는 ~ 때문에 쓸모가 없어’, ‘~을 참고 견딜 수 없어’, ‘~은 끔찍하고 두려운 일이야’라는 생각으로 현시점을 부정하거나 회피하며 자신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정서가 자라게 된다.


올해는 교실 정치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바이러스로 개학이 연기되고,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면서 학습 부진이 심각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런 우려가 현재 학년 수준에 맞아야 한다는 이야기로 이어지고,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조바심들이 아이들에게 자기 패배적 생각을 심어주게 된다. ‘정서적으로 건강한 아이들이 공부도 잘한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합리적인 신념을 갖고 있어야 어떤 문제 상황에서도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신념이다.



◇ 신념은 관계에서 싹 틔워 내게서 자라는 것

인간은 사실 ‘관계’가 전부다. 인생은 관계로 시작해서 관계로 끝난다. 단 한 번의 삶이 자기의 뜻과 같이 잘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자기 자신과 타인, 세상을 맹렬히 비난한다.


내가 상담했던 A는 또래 관계에서 수많은 좌절을 겪었다. 그래서 ‘나는 못생기고, 뚱뚱하고,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굳어져 버린 아이였다. 그 누구와도 관계를 맺으려고 하지 않은 탓에 A는 자신에게 호의를 베푸는 친구들의 선의도 믿지 못했다. 자존감 증진 프로그램에 참여시켰지만, 그때뿐이었다. A는 프로그램이 끝나면 스스로 설정한 비합리적 신념의 값으로 다시 돌아갔다. 상담하면서 알게 됐지만 그런 신념의 원천은 부모에게 있었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A에게는 자기 패배적 신념이 계속해서 자라고 있었다.


학습격차도 그렇다. 현재 수준에 맞아야 한다는 부모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처음에는 노력하겠지만 계속해서 좌절되고,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는다면 A와 같이 관계 속에서 좌절의 악순환이 되풀이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신념은 무엇일까? 지금 아이들에게 학습격차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아이들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코로나 19 바이러스라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환경 속에 있기 때문이다. 완벽한 사람은 없고, 완벽해지려 해서도 안 된다. 아이들을 정말로 사랑한다면 “지금은 그럴 수도 있다”라고 말해 비합리적인 신념을 지워야 한다. 절대로, “너는 ~ 해야만 해”라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가 수용 가능하다면 방학을 활용해 지난 학기를 함께 복습하는 인내력도 필요하다. 결국, 지금은 그럴 수도 있지만, 영원히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려줘야 하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더 앞서갈 수 있다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도 알려줘야 한다. 격차가 생겨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꾸준히 그런 일상의 문제들과 함께하면서 끝까지 해내는 멘탈을 가르치는 소중한 시간을 만들 수도 있다. 더 장기적으로 보고 조바심을 느낄 필요 없다.


학습 부진한 아이들이 많으니 이참에 우리 아이가 앞서 나갈 기회라며 공부를 시키는 사례도 있다. 그 또한 비합리적인 신념을 만들 수 있다. “나는 다른 친구들보다 더 잘해야만 해”라는 신념을 가진 아이들은 어떤 운명으로 살아가게 될까?  



◇ 지금 아이들에게, 우리에게 필요한 말 "그럴 수 있어, 괜찮아"

비합리적인 신념을 걷어내는 말 "지금은 그럴 수 있어. 하지만 영원히 이렇진 않을 거야". ⓒpexels

만약 우리 스스로 비합리적인 신념을 갖고 있다면 이렇게 스스로 질문해보자. 인지정서행동치료에서 사용하는 논박하기 기법이다.


“나를 괴롭히는 비합리적인 생각은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잘못됐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나의 생각과 정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은 무엇인가?”, “내가 정말 견딜 수 없는 일은 무엇인가”와 같이 부적절한 정서와 행동은 무엇인지? 궁극적인 나의 신념은 무엇인지? 그런 신념을 만든 배경은 무엇인지를 질문하며 비논리적인 핵심문장에 접근하는 것이다.


내가 상담했던 A는 결국 자신의 강점을 찾고, 비합리적 신념을 걷어냈다. 비결? 우선, 논박하기 기법으로 글을 써오게 했다. 한 달에 한 번 써온 글을 통해 깊은 대화를 나눴고, 10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자기 긍정의 신념을 만들었으며 숨겨졌던 자신의 강점을 발견했다. A에게 늘 이렇게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 지금은 그럴 수 있어. 괜찮아”라고 말이다. 사실 이 말은 나 또한 누군가에게 듣고 싶은 사무치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의 아이들에게 이 말을 해준다면 언젠가 나에게도 해주지 않을까? 2021년 부디 모든 아이가 새해의 빛이 가득한 신념으로 천천히 걸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칼럼니스트 문선종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와 결혼해 두 딸아이의 바보가 됐다. 아이들을 좋아해 대학생 시절 비영리 민간단체를 이끌었고, 구룡포 어촌마을에서 9년간 아이들이 행복한 공동체 마을 만들기 사업을 수행했다. 지금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홍보실에서 어린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moons84@naver.com


※위 글은 N0.1 육아신문 베이비뉴스에 연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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