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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이재 Mar 20. 2021

첫째 애찬론, 첫째라는 직업

[문선종의실존육아]'꼰대아빠'탈출하기

나의 어머니는 속이 검게 탔을 것이다. 고등학생 때까지 동생을 낳아달라고 닦달했으니 말이다. 어른이 되고 이야기해보니 어머니도 나의 바람과 같이 둘째를 갖고 싶었단다. 하지만 맏이로 자란 아버지는 형제들에 치인 까닭에 나 혼자로 충분하다며 끝내 거절했다고 한다. 어릴 적 친구들과 놀기보다는 한참이나 어린 동생들과 노는 나를 보며 얼마나 속상했을까? 초등학교 3학년 때는 옆집에 새로 이사 온 5살의 귀여운 동생을 보려고 아침부터 숟가락을 놓자마자 그 집 앞에 진을 치며 목이 빠져라 기다리기도 했다. 그래서 유독 아이들을 좋아한다. 어른이 되면 5명은 낳아야지 다짐했지만 딸 둘에 그치고 말았다.


첫째는 초등학교 2학년이다. 저학년이지만 제법 머리가 컸다. 둘째로 기울어진 애정에 대해 또박또박 반박하며 화를 내고, 방문이 부서져라 닫으며 문을 걸어 잠그기도 한다. 둘째에게 손이 많이 가는 탓에 첫째의 마음은 좋지 않다. 잠을 잘 때 늘 곤욕이다. 둘째만 옆에서 재워주고, 자기는 재워주지 않는다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잠들 때가 많다. 혼자였을 때는 무한한 사랑을 받았지만 둘째가 태어나자 왕관을 내려놔야 했다. 첫째들이 갖고 있는 심리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태도로 이어지지 않는다. 머리와 가슴의 거리는 멀기만 하다. 오늘은 깊은숨을 쉬며 첫째에 대한 사랑을 끌어올려보려 한다. 첫째에게 궁극적으로 무엇을 바라야 하는지 말이다.


◇ 첫째라는 직업

어느덧 사진의 초점은 늘 둘째에게 가 있고, 첫째의 사진은 별로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문선종

사람마다 저마다의 무늬가 있지만 첫째들만의 독특한 결이 있다. 아이들이 가진 타고난 기질들이 첫째라는 무늬에 새로운 경향을 만들면서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상담을 하면서 만난 첫째의 대부분은 강한 ‘책임감’을 갖고 있다. 이런 책임감을 적절히 사용하며 자존감을 높이는 아이들도 있지만 ‘무조건 잘해야만 해’라는 부정적 신념으로 자신을 옥죄는 아이도 있다. 뛰어난 강점을 지닌 친구들이 그런 강박에 스스로 자책하며 더 높은 과업을 수월하게 달성해야 한다는 짐을 가지고 있다. 반복적인 좌절을 경험하는 아이들은 스스로 낮은 자존감을 보인다. 첫째가 보인 열정과 노력은 당연시되고, 더 높은 기대를 요구하면서 유독 칭찬에 인색해진다.


A씨도 그랬다. 첫째로서의 기대와 책임감을 한 몸에 받고 자랐다. 동생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따금 동생을 경쟁자로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동생은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결혼을 했다는 생각이 그를 괴롭혔다. 첫째로서의 자격지심을 지우지 못했다. 언젠가는 동생이 입고 있는 옷마저도 자신의 것보다 좋아 보이기까지 했다. A 씨와 상담하며 부정적 신념을 찾는 작업을 했다. 거기서 잡아 낸 언어가 바로 ‘패배자’였다. 그런 생각을 가진 A 씨와 동생의 사이는 좋을 리 없었다. 누구나 자신의 삶이 특별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첫째들이 생각하는 특별함에는 약간의 뒤틀림이 있다. 동생들에 비해 ‘특별’해져야 한다는 강박이다. 5남 4녀의 장녀인 B 씨는 형제들 모두 등을 돌린 상황이다. ‘그렇게 하면 안 돼’라며 사사건건 동생들에게 시비를 가리는 것이 어릴 적부터 입에 배인 탓에 명절이나 모임 때면 늘 불편하고, 가시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다 십시일반 돈을 모아 부모님께 선물을 하자는 동생들의 의견에 의견 충돌이 일어나면서 외톨이가 되어버렸다. 자신을 빼놓고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점, 동생들보다 더 많은 돈을 내지 못한다는 것이 못마땅했다. A나 B 씨와 같이 첫째라는 무늬에는 꼰대 같은 기절이 스며드는 것은 그래야만 한다는 잘해야만 한다는 모범이 돼야 한다는 직업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 ‘애정’이라는 열정과 ‘소유’라는 냉정 사이

서율이는 우뇌형이다. 무엇을 하든지 아빠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보인다. ⓒ문선종

과거 재산분할에 있어서 맏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가부장적 모습이 있었다. 맏이에게 더 많은 재산을 상속하는 것이 통념이었다. 그 생각의 바탕에는 부모 부양과 제사에 대한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소유를 둘러싸고 싸우는 가족사들은 무수히 많다.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형제자매간의 갈등과 암투를 애정으로 봤다. 이를 좀 더 냉정하게 본다면 ‘소유’라는 본질로 이어진다. 첫째에게 애정보다는 소유에 대한 권한을 줌으로써 더 큰 책임과 의무를 부여한다. 첫째에게는 좋은 옷, 좋은 학용품 등 물질적 소유가 풍부하다. 둘째는 그것을 물려받음으로써 새로운 갈등이 생긴다. 나의 두 딸도 싸우는 주요 포인트가 이런 소유의 개념에서 오는 것들이다. 이렇게 부모의 양육태도로 형성된 분위기는 크면서 독특한 경향을 만들어낸다. 둘째는 이런 논리를 펼 수 있다. “언니가 더 많이 받았기 때문에 언니가 해”라는 식이다. 소유와 애정이라는 냉탕과 열탕을 오가면서 똑같은 물건을 2번 사야 하는 번거로움은 평화를 위한 나름의 전략이다.


◇ 첫째는 직업이 아니다

남자 셋을 키우는 나의 지인은 아이들을 부를 때 번호로 부른다. 1번을 부를 때는 겨울날 서리 낀 고드름처럼 날카롭지만 3번을 부를 때는 콧등에 스치는 봄바람과 같다고 고백했다. 첫째라는 언어에 우리 스스로 갇히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육아전문가들은 첫째를 둘째처럼 키우면 좋다고 조언한다. 순서를 섞으라는 의미로 들리겠지만 본질적으로 접근하자면 첫째라는 언어를 지우라는 것이다. 첫째라는 언어에서 ‘먼저 나아가는 이’라는 순서가 정해져 있다. 


첫째라는 언어에서 ‘퇴행’이 규정되기도 한다. 동생이 태어나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퇴행과 질투, 분노의 감정이 첫째라서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퇴행은 어른들에게도 나타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절대 야단쳐서는 안 된다. 겸허한 수용이 필요하다. 만약 수용하지 못한다면 분노의 골은 깊어질 것이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속담이 있지만 먼저 맞을 때의 두려움이 얼마나 큰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유독 첫째들은 어떤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어렵고 도전적인 과제를 선호하며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가져야 하지만 부모의 기대감에 지친 나머지 쉽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편향된다. 도전적 과제에 대한 진입장벽이 높은 이유는 실패에 대한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째라는 자리의 언어를 지워야 한다. 


첫째라는 언어를 지운다는 것은 우리의 뇌에 자리 잡은 스키마(scheme)를 뒤집어엎는 일이다. 스키마란 위계적으로 구조화해 저장돼 있는 지식의 구조다. 우리가 경험적으로 판단한 것이 자동반사적으로 나오는 것이다. 첫째에게 내리는 판단이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이유다. 첫째라는 자리는 ‘이래야 해’라는 것은 명백한 직업관이다. 익숙한 스키마를 고집한다면 꼰대 소리를 들을 것이 뻔하다. 오늘부터 ‘첫째’라던가 ‘언니’와 같은 언어는 뒤 안에 둘 것이다. 이제 그만 첫째라는 직업관을 내려놓아야겠다.


*칼럼니스트 문선종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와 결혼해 두 딸아이의 바보가 됐다. 아이들을 좋아해 대학생 시절 비영리 민간단체를 시작으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이르기까지 지난 16년 동안 아동상담 및 교육가로 활동하고 있다. moonsj84@naver.com


※위 글은 N0.1 육아신문 베이비뉴스에 연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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