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점멘토 레오의 실존육아] 아이들은 '집중'의 밥을 먹는다
민준(가명.남.7)이가 체험수업을 하기 위해 나를 찾아왔다. 유치원에서 타이타닉을 만들었다며 자신 있게 보여줬다. 배 위에 우뚝 솟은 4개의 기둥은 실물과 흡사했다. 몇 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배를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타이타닉호가 항해할 수 있는 바다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필요한 재료를 이것저것 챙기다 돌을 발견하고 써보라고 건넸다. 민준이는 “선생님이 모르는 게 한 가지가 있는데요. 타이타닉호는 빙산과 충돌해서 침몰했어요”라고 말했다. 배에 대한 상당한 지식도 갖추고 있었다. 처음 써보는 재료들을 이용해 만들기를 하면서 “집에서는 이런 거 못하는데 여기 너무 좋아요”라고 말했다.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며 필요한 재료를 가져다 달라고 주문했다. 미리 준비한 수업이 있었지만 잠시 뒤로 미루고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도록 도왔다. 가져다준 재료를 오리고 붙이더니 거북선을 만들었다. 민준이는 선생님과 함께한 시간이 너무나 즐거웠다며 매일 만나고 싶다고 엄마에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민준이의 활동을 관찰만 했을 뿐 내가 딱히 한 것은 없었다.
아이들은 ‘집중’의 밥을 먹는다.
집중에도 ‘급’이 있다. 저급한 집중은 남이 시켜서 혹은 자극적인 환경에 감각이 지배당하는 순간이다. 학습지는 스마트 기기로 대체되고 있다. 종이를 넘기며 문자를 읽던 아날로그적 감성은 어쩌면 ‘라때’의 추억으로 기억될지 모른다. 디지털 시대에서는 이미지와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이 우리의 감각을 머무르게 한다. 아니 지배하고 있다. 물질문명의 혜택은 인간을 늘 수동적 존재로 전락하게 만든다. 여기서 인간의 주체성, 능동성과 같은 커다란 결핍이 생긴다. 물질풍요의 시대가 디지털 혁명을 만나면서 인간은 더욱 왜소해지고 있다. 무기력해진다는 말이다. 나는 오히려 수동적인 집중 상태에서 딴 짓을 하고, 어느 한편에 낙서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좋아하고, 격려한다. 무기력에 저항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능동적 집중’은 고급스럽다. 바닥에 종이와 연필이 뒹굴고 있다. 좋아하는 것을 그리고 오리고 붙이고 집중한다. 재활용하려고 놓아둔 박스가 어느새 자동차가 됐다. 어른들은 어지럽힌다고, 짜증 내며 아이들을 다그친다. “쓸데없는 짓하지 말고 빨리 청소해”라며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이런 능동적 집중이 쓸데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최근 코로나19로 온라인 수업이 가속화되면서 사실상 모든 활동에서 수동적인 집중이 만연해있다. 능동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능동적인 집중은 아이들이 스스로 차린 밥상과 같다. 그 과정이 없다면 내면의 깊은 세계로 빠질 수 있는 몰입은 만들 수 없다. 그러니 밥상을 걷어차는 어른이 되지 말아야 한다.
‘집중’은 절대 침범하지 말아야 하는 영적인 영역이다.
지윤이(가명.여.10)는 나를 만나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3살 때의 일도 곧잘 기억하는 지윤이는 어릴 적부터 영어유치원을 다녔다.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쉴 틈 없이 학원가를 전전했다. 부모님의 교육열이 높아 매일 숙제의 늪에 허덕이며 살아온 것이다. 유년시절을 생각하면 깊은 한숨이 밀려오는 아이다. 한 주간 유일하게 자신이 마음껏 무언가를 해볼 수 있는 시간이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삶 속에 능동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면 정말 불행한 것이다.
나의 두 딸들은 7시에 기상해 학교와 유치원을 가기 전까지 자기만의 시간을 가진다. 그때는 어김없이 간밤에 꾸었던 꿈을 그리기도 하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인형의 옷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본인들도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알지만 아주 집중해서 그 시간을 사용한다. 시간은 쓴다는 표현보다 그 시간을 살아간다는 표현이 옳겠다. 이 순간은 절대 방해하지 말아야 하는 침범 해서는 안 될 순간이다. 자신의 내면세계에 깊숙이 닿을 수 있는 신실한 시간이며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순간이다. 이런 경험은 학교에서도 배울 수 없고, 학원에서도 배울 수 없으며 심지어 가정에서도 경험할 수 없다. 옛말에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이 있다. 음식을 먹고 있을 때는 절대 꾸짖지 말라는 경고가 담긴 말이다. 음식이 아이들의 신체를 살찌우듯 능동적인 집중은 내면세계의 영혼을 튼실하게 만드는 시간이다. 절대 아이들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
*위 칼럼은 베이니뉴스에 연재하고 있는 칼럼입니다.
*강점멘토 레오(본명 문선종)은 아이들을 좋아해 대학시절 비영리민간단체(NPO)를 시작으로 사회복지법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이르기까지 지난 18년 동안 아동상담 및 교육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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