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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이재 Dec 07. 2022

"골을 넣으면 반드시 세리머니를 하라"

졸업식에 가기 싫다는 제자에게 하고 싶은 말

세월이 빠릅니다. 이번 글은 90번째 글입니다. 지금까지 90편의 칼럼들은 실존주의 철학으로 자녀를 양육하며 마주했던 삶의 단상들을 의미 있게 기록해온 이야기들입니다. 실용적이지 않지만 실존적인 인사이트를 나눠왔습니다. 제 글을 사랑해 주시는 독자님들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첫째. 트리를 장식하고, 선물을 받기 위한 양말을 걸어두는 것도 하나의 의식이다. ⓒ문선종

2022 카타르 월드컵의 열기가 뜨겁다. 단연 화제가 되는 것은 골장면과 그 뒤를 따라는 세리머니다. 골을 넣은 선수들 중에 세리머니를 하지 않는 선수는 없을 것이다. 저마다 상징적인 세리머니를 관중들에게 선보인다. 골을 넣었다면 세리머니를 하는 것이 당연한 통과의례다. 하지 않는다면 평생을 두고 후회할지 모른다. 꼭 해야 하는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다.


세리머니(Ceremony)는 Cere(곡식)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Harmony의 Mony(상태)에서 어원을 가져와 결합한 단어다. 한 해 농사가 잘 돼 수확한 식량이 많아 풍요로운 상태를 뜻한다. 풍성한 수확을 허락한 신에게 감사드리는 제의를 올렸는데 이것이 종교적 의식을 말하는 세리머니가 된 것이다.


졸업식에 가기 싫어요!​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의식(ceremony)을 거친다. 탄생을 시작으로 출생등록, 번영을 축원하는 돌잔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시작으로 입학식, 졸업식 등 치러야 할 의식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하다못해 아침밥을 마주하며 읊조리는 기도같이 하루의 관문을 통과하며 치르는 소소한 의식들은 우리 삶에 가득하다. 그러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도대체 이런 거 왜 하는 건데요?”


나의 제자가 그랬다. 내년 1월에 초등학교 졸업식을 한단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졸업식 그런 거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가기 싫어요.”


이유를 물어봤다. 그날 분명 눈물을 흘리는 친구들이 있을 것이고, 덩달아 눈물을 흘릴 것 같다고 한다. 요즘 들어 자신을 자주 괴롭히는 남자아이가 놀릴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상황을 생각했을 때 썩 내키지 않는다고 했다. 제자의 말에 졸업식과 같은 의식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말하며 나의 군입대 이야기를 들려줬다.


강한 척을 강요한 삶​

2004년 추운 겨울 입대했다. 그까짓 게 뭐라고 우르르 몰려 갈 필요가 있냐는 생각이 컸다. 서로 눈물 콧물 질질 짜면서 뒷모습을 내주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청승 떨지 않으려 혼자 의정부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나를 따라와 주겠다는 동기도 후배도 친구도 물리쳤다. 심지어 부모님 마중도 거절했다. 부모님은 무슨 생각이었던 건지 진짜 배웅하러 오지 않았다. 부대찌개에 소주 반 병을 걸치고 바짝 깎은 머리가 어색한 장정들과 함께 연병장에 서 있었다. 단상에 선 나이 많은 군인은 절도 있는 목소리로 ‘뒤로 돌아! 사랑하는 부모님께 경례!’를 외쳤다. 모두가 뒤를 돌며 눈시울을 붉힐 때 묵묵히 앞을 보며 멋을 부렸다.


엄숙하게 거행되는 장례식 때도 그렇다. 삼일장에서는 처절하게 가슴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허락한다. 하지만 나는 눈물을 깊은 곳으로 숨겼다. “당신이 없어도 잘 살아갈 겁니다”라며 강한 척을 했다. 의식이라는 장난에 놀아나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말이다. 해외봉사에서 한 달간 지낸 아이들과 헤어질 때는 나를 제외한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강한 척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바보처럼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혼자 울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게 바로 청승을 떠는 것이었다. 차라리 그대들과 함께 한 날을 잊지 않을 것이라며 눈물 흘렸다면 나의 삶은 더욱 아름다웠을 것이다. 운명의 장단에 춤추지 않겠다며 반항기 가득한 청춘을 보냈다. 나에게는 스스로 강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그런 삶이 멋지다고 바보 같은 모습을 스스로에게 강요하며 살았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아모르파티 ‘운명을 사랑하라’​

아모르파티(Amor fati)는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니체의 핵심 사상이다.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삶의 모든 것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태도다.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은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것이다. 어차피 피할 수 없이 부딪혀야 하는 졸업식이라면 그 시간을 아름답게 보내야 한다. 차라리 울어도 좋다. 그 울음에 냉소를 보내는 시답잖은 남자아이들은 신경 쓰지 말라고 제자에게 조언했다. 삶을 살다 보면 나를 비난하고, 눈치 주는 타자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자신의 운명을 사랑한다면 그런 추한 것과 싸우지 말고, 의미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가수 김연자의 아모르파티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 돼. 이제는 더 이상 슬픔이여 안녕. 왔다 갈 한 번의 인생아.’


​이번 생은 단 한 번의 유일한 삶이다. 만약 똑같은 삶이 다시 온다면 그때도 같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면 좋겠다. 중학교 진학으로 친한 친구와 헤어진다면 아쉬움의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하고, 함께 같은 학교로 간다면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한다. 먼저 울어도 좋고, 친구가 운다면 꼭 안아주며 함께 울어도 좋다. 그물을 출렁이며 골대라는 관문을 통과했다면 추동하는 힘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세리머니를 남기길 바란다.


​※위 칼럼은 베이비뉴스에 연재된 글입니다.



*강점멘토 레오(본명 문선종)은 아이들을 좋아해 대학시절 비영리민간단체(NPO)를 시작으로 사회복지법인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이르기까지 아동상담 및 교육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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