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주말 오후, 유리창 너머 햇살이 거실 마루를 금세 온실로 만든다.
봄이가 여름이의 얼굴을 그루밍한다.
여름이는 눈을 지그시 감고 그 순간을 만끽한다.
이마를 핥고, 코를 한 번 핥고, 수염을 정성스레 꼭꼭 씹듯 뜯어낸다.
새싹처럼 겨우 조금 자라 올라온 수염은 퉤, 뱉어내는 봄이의 입술에서 허공으로 사라진다.
여름이는 그루밍 자체만을 즐긴다.
침을 발라도, 수염이 뜯겨 나가도 그루밍에 취해 도무지 눈을 뜨지 못한다.
사람이 지나가며 한마디 건넨다.
너 좋아해서 그런 거 아니야. 정신 차려.
여름이는 전혀 듣고 싶지 않다.
그저 이 달콤한 순간에 빠지고 싶을 뿐이다.
수염 없는 고양이 여름이.
살아 보니 수염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어진 걸까.
어느 날이었다.
여름이가 봄이의 머리에 앞발을 올렸을 때, 봄이는 바짝 엎드린 채 눈치를 살폈다.
몇 해가 흘렀다.
봄이는 달콤한 반격에 나섰다.
네가 가진 멋을 다 없애버리겠어.
수염이 없으면 넌 겁쟁이가 될 거야.
야금야금, 봄이는 다정한 그루밍을 핑계로 여름이의 수염을 모조리 뜯어냈다.
봄이는 매일 그루밍을 하고, 여름이는 매일 눈을 감는다.
가만히 있으면 세수를 시켜주니까.
뭐, 이런 고양이가 있나 싶지만 수염을 내주고 받는 나름의 전략이었을지도.
어쩌면, 내 마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