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많이 읽었다. 평소에 좀 더 읽어야지 하면서도 이런저런 시간에 쫓기고, 또 블로그 이웃님들을 방문하다 보면 글 한 편 적어보려 선뜻 나선 마음이 금세 커다란 일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럼에도 시간이 날 때면 다시 글을 읽는다. 너무 좋은 글, 가슴 아픈 글, 그리고 읽으며 가슴에 새기거나 반성하는 마음으로 정신이 번쩍 드는 글도 있다.
겨울이 깊어지면 몸은 계절의 속도에 맞춰 조금씩 느려진다. 손가락 통증 탓에 매주 화요일마다 가던 그림 수업도 잠시 멈췄다. 무언가 의욕을 내기보다 나를 돌아보고 있는 요즘이다.
모두가 등에 주어진 짐을 짊어지고 있겠지만, ‘왜 나는 이토록 고단한 몸으로 태어났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다 보면 이내 서러운 마음이 고개를 든다. 병원에서 더 깊은 병마와 싸우는 사람들을 마주하고 나서야, 그토록 짧은 원망은 미안함이 되어 절벽 아래로 툭, 떨어진다.
때론 마음을 다잡는 날도 있다. 고통의 무게란 타인과 비교한다고 절대 가벼워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밀착된 상태로 나를 휘두르기도 하고, 때로는 나도 그 고통에 기생해서 산다.
고통이라 느끼는 감각은 무엇일까. 내가 ‘고통’이라 이름 붙이는 순간 그 감각은 나를 지배하고, 나는 그 무게에 짓눌리는 척한다.
몸이 무거우면 무거움을 핑계로 마음은 마치 그 방의 주인이 되어, 문을 닫아걸고 이불속으로 숨어버린다.
어쩌면 도돌이표 같은 노래처럼, 사색을 핑계 삼은 고뇌가 꼬리를 물어와 똬리를 틀었다.
하지만 알고 있다. 무거운 마음을 밀어내고 문을 열기만 하면,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빛이 내 얼굴에도 닿으리라는 것을.
사람의 마음은 가끔 무거운 바위 같아서 스스로 움직이지 못할 때가 있다. 오늘 닫힌 창문을 빼꼼 열었다. 바위 같은 마음 위로 빛이 내려앉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싱그러운 바람이라도 불어 들어오길 바라면서.
창문을 여니 문득 잊고 지냈던 정겨운 말 한마디가 떠올랐다. 얼마 전 동창모임에서 친구들을 배꼽 잡게 했던 말, ‘지저구리다’.
시골에서 어른들이 아이들의 조잘대는 모습을 보며 하시던 그 투박한 사투리가 친구 입에서 흘러나왔을 때, 친구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성격도 조용한 교수라는 사람이 그 오래된 향토색 짙은 말을 어찌 잊지도 않고 천연덕스럽게 하냐고, 사라져 가는 말들에 대한 아쉬움과 어릴 적 소꿉놀이 시절의 향수를 더듬어, 오늘 살짝 포근했던 바람에 그 마음 실어 동시 한 편을 적어본다.
[지저구리다]
감나무 오소소
꽃잎 떨어지면
동네 아이들
올망졸망 모여든다
까르르
지저구는 웃음소리
참새들도 제 소린가
총총 내려오고
요놈들
고놈들
참, 정겹게도
지저구린다
** 지저구리다: 재잘재잘 쉴 새 없이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