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코로나19 상황이라, 어기적거리며 다가서는 나를 보곤 의료진이 먼저 뛰어왔다.
열부터 쟀다. 다행히, 바로 전날 받은 코로나 검사 결과가 음성이어서 더 오래 붙들리진 않았다.
나는 간신히 허리를 접으며 말했다.
“위가... 너무 아파요.”
그 말을 끝내기도 전에 CT와 MRI부터 찍자고 했다.
‘약도 안 주고, 주사도 없이... 왜 촬영부터야.’
속으로는 울먹였지만, 말이란 것이 입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통증은, 그 정도였다.
황달인 줄도 몰랐어요
검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외과로 바로 옮겨졌다.
과장님은 말 없이 차트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잠시 뒤, 깊은 한숨과 함께 말을 꺼냈다.
“하... 담낭염이 아주 심하네요. 담낭 크기도 크고요. 수술하셔야 합니다.”
차트에서 눈을 떼더니 내 얼굴을 본다.
“이렇게 될 때까지... 어떻게 참으셨어요? 병원엔 한 번도 안 가셨어요?”
“아...”
그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내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선생님은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다시 살폈다.
그리고 두 눈이 휙, 커졌다.
“얼굴에 황달도 아주 심하세요.”
목소리도 한 톤 높아졌다.
황달이라니.
간이 안 좋으면 온몸이 샛노래진다, 그 정도로만 알고 있던 병이었다.
그때는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예전에 공익캠페인 촬영 중 들었던 말이, 지금에 와서야 수긍이 됐다. (1회차 참고)
“당장 입원하세요. 담낭은 터지기 직전이고, 간과 위까지 너무 부어서 수술도 못 해요. 염증부터 가라앉혀야 합니다.”
“지금이요?”
과장님의 표정은,
한심함과 안쓰러움 사이.
딱 그 중간 어딘가였다.
회사 가야 하는데요
“가족분들께 수술 후 필요한 것들 챙겨 달라고 하시고, 바로 입원하세요.”
“입원은… 며칠 정도요?”
“빠른 분들은 일주일. 보통 열흘에서 보름 정도 봐야 해요.”
“…안 되는데요. 회사 그렇게 오래 쉴 수 없어요.”
사실, 그 누구도 나더러
수술하고 다음 날 출근하라는 사람은 없었다.
연차도, 차고 넘쳤다.
“안 돼요. 이러다 죽어요.”
그제야 겨우 “알겠습니다” 하고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날 세 번째로 과장님의 진심을 기막히게 만들었다.
“…근데, 제가 집에 가서 수술 준비할 짐 좀 가져와도 될까요?”
나름의 항변은 있었다.
코로나19 시국이었다.
나는 늦둥이고, 부모님은 팔순을 넘기셨다.
노모를 지방에서 불러 내 짐을 싸서 병원까지 오게 할 순 없었다.
난감한 표정의 과장님은 아무 말 없이 주사 한 대를 놓아주었다.
간병인도 없이
소위, 우주의 기운이 돕나 싶을 정도로 집에 다녀오는 길과 병원에 다시 도착하는 순간까지는 통증이 견딜 만했다.
원무팀 입원 창구에서
1인실과 4인실만 남아 있다는 말에
본능적으로 돈 걱정부터 들었고, 나는 아무 고민 없이 4인실을 택했다.
실수였다.
그 순간은 의료실비 따위는 기억나지 않았다.
입원실에 올라가기 직전, 다시 응급 코로나 검사를 받고
병실에 도착하니, 간호사 선생님들이 간병인 이야기를 꺼냈다.
코로나 검사도 받아야 하고, 요즘은 간병인 구하기가 쉽지 않단다.
병원에 간병인을 요청했지만, 연결은 어렵다고 했다.
외부 간병인도 마찬가지였다.
그 시기, 간병인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결국 혼자 수술을 받기로 했다.
간호사 선생님들은 연신
“저희가 돌아가며 잘 챙겨드릴게요. 걱정 마세요.”
라고 말해주었고, 그 말이 이상하게도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까지도
수술이라는 것이 도대체 얼마나 아프겠냐는
무지에 가까운 낙관을 품고 있었다.
트롯이 흐르는 병실
배정받은 병실엔, 60대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계셨다.
내 자리는 창가 쪽, 침대에는 큼지막한 ‘금식’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침대에 눕자마자, 할머니 한 분이 들어오셨다.
딸을 데리고 오셨는데, 두 분 다 목소리가 엄청 컸다.
할머니는 입맛이 없다며 귤, 뉴케어 등등을 쉬지 않고 드셨고,
맞은편 아주머니는 간병인 아주머니와 한과를 나눠 먹었다.
“금식이에요?”
“네.”
“배고프겠다.”
드시는데 방해될까 싶어, 나는 조용히 커튼을 치고 누웠다.
멀리서 트로트가 들렸다.
“아이고, 미스터트롯 할 시간이다!”
“빨리 틀어봐, 빨리!”
생각해보니, 이 병원 전 층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같은 채널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 방에서도, 트로트 오디션이 피 튀기게 펼쳐졌다.
개복은 안돼요
이틀 후, 염증 수치가 안정되자 수술실로 들어섰다.
차디찬 수술대에 피부가 닿자 두려움이 엄습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한숨 주무세요.”
간호사 선생님의 다정한 말에도, 나는 마지막으로 한마디 남겼다.
“될 수 있으면 개복은 하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필름이 끊겼다.
누군가 “더 주무시면 안 돼요.”라며 깨웠다.
눈을 뜨자마자 복부에서 찌릿한 통증이 밀려왔다.
“으윽.”
“아프세요? 무통주사 넣어드릴게요. 과장님도 곧 오실 거예요.”
간호사 선생님은 링거대에 놓인 무통주사 스위치를 재빠르게 눌렀다.
과장님이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장기들이 많이 부어있고 담석도 컸어요. 개복 수술을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확자분께서 개복만큼은 절대 안 된다고 하셔서 복강경으로 했습니다. 대신 구멍을 하나 더 내서 총 네 군데를 뚫었죠.”
통증 때문에 어디가 뚫렸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감사한 마음에 연신 “고맙습니다”를 되뇌었다.
“무통주사 스위치는 아플 때마다 눌러주세요. 그러면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
과장님도 여러 번 스위치를 눌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통증은 줄지 않고, 속이 울렁거리기까지 했다.
“담석이 아주 컸어요.”
과장님이 하얀 통 하나를 건네주고 나갔다.
통을 열어보니, 메추리알 하나가 들어있었다.
크기며 모양, 색깔, 문양까지도 똑.같.았.다.
이런게 담도를 막고 있었으니 그리 아팠지...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나의 통증은 줄어들지 않고 점점 더 심하게 울렁거리기 시작했다.